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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특허 소송
삼성 특허 소송 ⓒ 오마이뉴스 고정미

솔직히 기자가 더 걱정했다. 자칫 기사로 나갔을 때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말이다. 몇번이고 되물었다. "실제 이름으로 기사가 나가도 되느냐"고. 안 아무개 삼성전자 수석연구원이다. 올해 나이 49살이다. 언뜻 보기에도 평범한 40대 직장인이다. 그는 "괜찮다"고 했다. 이어 "우리 회사에 '안'씨 성(姓) 가진 사람 많아요"라며 웃어 넘긴다. (관련기사: 삼성 현직 연구원, 회사에 "305억 특허 보상해달라")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서 그를 만났다. 짙은 체크색 셔츠에 편한 옷차림이었다. 글로벌 기업으로 커버린 삼성전자에서 20여 년 가까이 일을 해 온 안 연구원. 그는 정말 쉴 새 없이 일했다고 했다. 어엿한 부장급 간부까지 올라왔지만 지난 3년여 시간은 그리 편치 않았다. 그가 일하는 동안 자신이 낸 발명특허의 보상을 두고 회사와 소송을 벌이고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부 회사 동료들도 잘 모른다고 했다.

- 법원에 소송을 낸 것은 작년 1월이던데요.
"그렇죠. 그 전에 2011년에 회사 안에서 협의를 해왔죠. 그리고 별로 진전이 없어서..."

- 법정 소송으로 가기 전에 회사와 보상문제를 협의했군요.
"그때 아마 5월에 처음으로 회사쪽에 제안서를 보냈죠. 제도를 보니까 발명특허에 대해 보상이 있던데, 우리 회사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물었죠. 그리고 그해 8, 9월 두번 정도 회의실에서 만났어요."

3년여 회사와 지루한 협상 그리고 법정 다툼

- 회사쪽에선 '보상이 어렵다'는 반응이었나요.
"(고개를 끄덕이며) 물론 대놓고 안된다, 이런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보상에 소극적이었죠. 저는 계속 협의를 해보자고 했는데, 그 다음부턴 아예 답변을 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결국 작년 1월에야 법원에 정식으로 보상청구 소송을 냈다는 것이다. 그가 낸 발명특허는 일명 '휴대폰 초성 검색'이다. 휴대폰에서 이름을 검색할 때 키패드에 한글 초성을 넣어 검색하는 방법이다. 아이폰을 뺀 삼성을 비롯한 안드로이드계열 휴대폰에는 거의 모두 적용된다. 기자가 '특허 내용이 궁금하다'고 했더니, 곧장 직접 시연해 보였다. 그의 말이다.

 휴대폰 초성 검색
휴대폰 초성 검색 ⓒ

"자, 보세요. 기자님 이름이 '김종철'이죠. (전화번호 검색 버튼을 누른 다음) 여기에서요, 'ㄱ'을 누르면 'ㄱ'으로 시작하는 이름들이 쭉 화면에 나오죠? 이게 첫번째구요. 다음에 'ㄱ, ㅈ, ㅊ'을 계속해서 누르면 '김종철'이 뜨잖아요? 이것이 두번째 특허예요."

이를 전문용어로 쓰면 '전화단말장치에서 다이얼키를 이용한 다이얼 정보검색방법'과 '전화단말장치에서 다이얼정보 그룹별 검색방법' 등이다. 안 연구원은 지난 1993년 5월에 이들 두가지 발명특허를 출원했고 96년 10월에 정식 등록됐다.

- 그걸 어떻게 생각해 내신 거예요.
"(웃으면서) 제가 90년에 회사에 들어왔는데, 맡은 곳이 정보통신 팩시밀리사업부였어요. 팩스를 보내려면 이름이나 회사를 매번 찾아서 적어두거나 해야 했지요. 번거로웠던 거죠."

- 그땐 팩스 안에 이름을 저장하는 기능이 없었나요.
"있었는데, 용량이 매우 적었죠. 저장은 됐지만 문제는 검색기능이 없었죠. 그래서 '이걸 좀 쉽게 찾아보자'고 생각했던 거고, 숫자 버튼에 한글 초성을 넣고, 이를 누르기만 하면 관련 이름들이 보여주는 방법을 고안했던 거죠."

인사 불만 탓에 회사와 소송? "선배의 허망한 명예퇴직을 보고..."

그가 낸 발명특허는 이후 휴대폰에 고스란히 적용됐다. 삼성이 내놓은 '애니콜' 뿐 아니라 요즘 인기좋은 스마트폰 '갤럭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회사 제품에서도 그의 검색 특허가 들어갔다. 물론 그 역시 회사 연구원으로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이렇다 할 보상을 받은 적은 없었다.

- 그런데 어떻게 직무발명에 대한 특허 보상을 생각하게 됐나요.
"(잠시 생각하다) 그럴 만한 일이 있었죠."

- 회사 안에서 어떤 일이…
"2009년인가, 그랬을 거예요. 회사 내부에서 조직개편이 있었어요. 우리 소프트웨어 사업부에 300여 명의 직원들이 있었고, 부문별로 파트가 나뉘어져 있는데요. 제가 한 그룹의 파트장을 맡고 있었죠. 그런데 (조직이) 개편되면서 제가 맡았던 부문이 사라진 거예요."

그는 조심스러워했다. 마치 인사불만 탓에 회사와 소송을 벌이는 것처럼 보일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사불만이 이번 소송의 계기가 됐나'고 물었다. 안 연구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100% 아니라고 말은 못 하지만, 조직개편은 늘 있어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적도 없다"고 설명했다.

- 인사상 불이익도 받지 않았는데, 왜 직무발명 보상을 생각하게 됐죠.
"그때(조직개편 당시) 저와 함께 일하고 있던 선배가 명예퇴직을 했어요. 그 선배 나이가 49살이었어죠. 나름 유능한 연구원이었는데, 정말 허망하게…. 그때 옆에서 참 고민이 많았어요."

- 내게도 언제든지 이런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미래를 대비하자는 생각?
"선배의 명예퇴직을 옆에서 보면서 누구든지 그런 생각이 들 거예요. 그리고 우연히 직무발명특허에 대한 보상제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그래서 혼자 인터넷 등을 찾아보고, 자료를 검색해보고, 알게됐죠. 그런 제도가 있다는 것을…."

- 회사쪽에선 직무발명에 대한 내부 보상을 해오고 있다고 하는데요. 작년에도 50억 원인가를 줬다는 보도도 있었고.
"(웃으면서) 글쎄요. 저도 인터넷에서 뒤늦게 보고 알았어요. 정말 우리 연구원들 누가 받았는지…. 연구원들은 아직도 이런 제도나 보상이 있는지 잘 몰라요. 더군다나 회사가 그렇게 내부 보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150조 매출 기여한 발명특허 보상에 인색한 회사

 서울 강남역 부근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서초사옥
서울 강남역 부근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서초사옥 ⓒ 권우성

- 법정 소송으로까지 가게 됐는데, 외부 도움을 받을 생각은 안 했는지요. 예를들면 노동조합이나 그런 조직 등에서.
"삼성 일반노조인가 있다고 듣긴 했지만, 노조에 기대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저희 재직 중 연구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이미 제도로도 보장이 돼 있었고요. 충분히 내부 협의를 통해서, 안 되더라도 법적으로 하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죠."

그는 현재 삼성전자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변에선 회사 다니면서 어떻게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느냐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이미 그와 같은 수석 연구원이 직무발명에 따른 보상을 청구한 예도 있었다. 물론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난 후였다. 안 연구원은 "물론 힘들긴 하다"면서 "그렇지만 내부에서 내 할일을 하면서, 내 주변 동료들에게도 이런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 법원에서 다툰 지 1년 3개월이나 됐어요. 이제 언론 앞에 공개적으로 나선 이유는.
"글쎄요. 그동안 회사를 믿었죠.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나홀로 회사와 싸우다가 이것도, 저것도 안될 것 같은 불안감,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지난달 법원에서 기술 설명회를 했는데, 회사쪽 대리 변호사의 말에 한마디로 충격을 받았죠."

- 회사쪽에서 어떻게 주장했길래 그런가요.
"이미 10년 넘게 휴대폰에 사용하고 있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아예 저의 특허가 무의미하고 무효라고 하더군요. 회사는 지난달에도 특허 유지를 위해 비용을 냈어요. 허탈하고, 자괴감이 들더군요."

그가 'ㄷ' 법무법인을 통해 낸 소송장을 보면 특허보상금으로 305억 원이 약간 넘는 금액을 청구했다. 지난 2001년부터 올해 5월까지 국내에서 생산된 삼성전자 휴대폰 10억2600만대에 평균단가(14만7038원)을 곱하면 150조 원이나 되는 매출액이 나온다. 법무법인쪽에서 "최대한 보수적으로 계산해서 보상금을 산정했다"고 했다. 150조 매출 가운데 회사쪽 공헌도를 86.5%로 보고, 안 연구원의 발명 기여도를 13.5%만 잡았다고 했다.

물론 법원에서 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모른다. 대신 작년에 같은 법원의 바로 옆 민사합의 12부에서 의미있는 판결이 하나 나왔다. 그와 같은 전직 삼성전자 연구원이 회사를 상대로 낸 직무보상 청구소송에서 발명자 기여도를 10%로 인정해, 60억3000만 원 지급 판결을 내린 것이다. 다시 그의 말이다.

"정부나 기업이나, 사람들이 요즘 '창조', '창의'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정말이지 현장에서 연구하는 사람들로선 공허하게 들릴 때가 많죠. 자신이 개발한 발명이나 연구 등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아직 제대로 안 되고 있기 때문이죠. 저도 마찬가지고. 이번 기회에 좀더 회사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제대로 관심을 가졌으면 할 뿐이죠."


#삼성전자#직무발명보상#갤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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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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