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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만큼 다양한 세상 보는 눈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스페인 말라가에서의 교환학생 분투기를 연재하는 기자가 '사람人말라가'를 함께 보내드립니다. 말라가에서 살고 있는 인상적인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말라가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 시각과 함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말라게뇨(Málagueño)'는 '말라가 사람'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입니다. <기자 말>

'추드로'로 통하는 추현우 형.  첫인상은, 인상좋고 편안한 동네 형 그 자체였다.
▲ '추드로'로 통하는 추현우 형. 첫인상은, 인상좋고 편안한 동네 형 그 자체였다.
ⓒ 임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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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낯선 사람에게는 다가가기가 힘들다던데, 이 사람만큼은 예외라고 힘주어 말하겠다. 뻬드로(Pedro)라는 스페인 이름에 성을 합한 '추드로' 형으로 익숙한 추현우(광주 A대, 29) 형 말이다. 수더분한 인상에 친근한 몸짓과 목소리. 자주 못 만났어도 나는 어찌나 편안했던지 2월에 한 번 본 후 꼭 다시 만나서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있는 학생들 중에 나이가 제일 많지만, 무게감이나 딱딱함 또한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형 주변의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 스페인에서 가장 행복감을 안고 사는 거 같은 부러움도 들었다.

그러나 인터뷰를 시작한 후, 행복감에 넘치는 인터뷰를 염두했던 내 생각은 산산이 깨졌다. 밝은 모습 뒤에는 온갖 산전수전을 겪은 이야기가 있었다. 형은 내게 말했다.

"후배들이 고생하지 않았으면, 힘든 이야기를 좀 털어놓았으면…."

인터뷰를 거의 자청하시다시피 말했다. 나의 시각과 생각만으론 모든 것을 올바로 느끼기 힘들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를 첫 인터뷰 대상자로 선택한 이유다.

 내가 던지는 질문에 형은 밝게만 웃었다. 현우 형의 집 테라스에서 인터뷰 중에.
 내가 던지는 질문에 형은 밝게만 웃었다. 현우 형의 집 테라스에서 인터뷰 중에.
ⓒ 임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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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유로를 날렸어, 그렇지만 후회 없다"

현우형은 말라가에서 언어연수생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다. 처음 형은 알람브라(Alhambra)  궁으로 한국에도 익숙한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반년을 지냈다. 적응하기도 힘든 외국 생활에서 터전을 바꾼다는 건 웬만큼 시도하기 힘든 도전이다. 그러나 형은 단지 말라가로 오기 위해 10번의 이사, 선불한 학원비를 포함 1000유로(150만 원)에 가까운 돈을 포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큰 실수였는데 당시에는 한국인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론다(Ronda)에서 공부하던 다른 선배에게 물었지. 그라나다를 추천해주시더라고. 한국인이 없고, 무엇보다 에께('es que'가 '에께'로 됨. 에쎄(s) 발음 빠진 그라나다 사투리) 발음을 들으니 (그라나다에) 빠져버렸어."

이곳에 온 여느 누구나 그렇듯, 처음에는 정말로 행복감에 젖은 생활을 했다. 유럽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외국인을 사귄다는 설렘으로 말이다. 형은 먼저 와 있던 한국친구 덕에 외국인들과 많은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스스로도 밝은 성격이고 '망가지는' 데 주저함이 없어서 더욱 도움이 됐다.

 그라나다에서 만난 친구들, 유로 2012 대회 당시
 그라나다에서 만난 친구들, 유로 2012 대회 당시
ⓒ 추현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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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게 사귄 친구들은 너무나도 빠르게 형의 곁을 떠났다. 좀 더 깊은 사귐을 원했지만 친구들은 방학에 한 달, 혹은 세 달 남짓 왔다가 가는 떠났다. 1년에서 2년을 생각해두고 어학원에 온 형과 달리, 유럽 사람들에겐 단지 방학이나 휴가를 즐기는 방법이었다. 1주일이나 한 달 남짓 휴가를 받으면 그라나다를 포함, 공기 좋고 날씨 좋은 스페인이나 남부 유럽을 선택해 단기코스로 언어를 공부하면서 휴양을 하다가 떠나가는 게 이곳 사람들의 전형적인 휴가 방식이라고 형은 말했다.

"점차 외로워졌어. 1주일마다 자기소개를 하는데, 처음에는 설레다가도 매주 그런 생활이 몇 달 반복되면 좀 (지겨워)…. 한번은 프랑스 남자애를 만났어. 정말 죽이 잘 맞아서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 '혹시 언제 돌아가니' 물으니, '내일 돌아간다'더라고. 허탈한 거지. 나는 그냥 편하고 진득하게 같이 놀 수 있는, 1주일마다 한 번 만나는 그런 단짝친구를 만들고 싶었어. 그런 일이 계속되니까 애들에게 인사도 하기 싫어지더라."

한편으로는 상실감도 느꼈다. 형은 그라나다에서 일본인에 비해, 한국인과 중국인은 '공기' 취급을 당한다고 말했다. 일본인들과 놀기 위해서 학원 앞에 차를 끌고 데리러 오는 스페인 학생들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한가득 들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도 일본어를 한다면 붙잡고 30분을 이야기하는데, 한국인이라면 어디 있는지, 무슨 문화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니 외로움은 한층 더 깊어갔다.

친구를 사귀려다가 실수로 조건만남 사이트까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실수였는데" 숨기고 싶은 이야기일 수 있는데도 막힘없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실수였는데" 숨기고 싶은 이야기일 수 있는데도 막힘없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 임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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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사귀려는 노력을 멈춘 건 아니다. 술자리에는 항상 참여했고, 싫어하는 클럽에도 갔다. 언어가 다른 외국인들끼리 모이는 언어교환 모임에도 빠짐없이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말로만 "다음에 만나자" 정도의 사이에 그쳤다. 작년 8월, 델레(DELE) 시험을 본 후에는 채팅사이트에 가입했다. 친구 중에는 그 사이트에서 여자친구도 만난 경우를 봤다고 했다.

"이 사이트에서는 동양인이라고 하면 중국인인 줄 알더라. 근데 중국인은 돈을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하더라고. 그래서 방 제목도 '물건 사줄 사람'과 같이 정해서라도 말을 걸어보려고 했지. 하지만 전혀 몰랐는데 놀랐어. 이곳이 알고 보니 조건만남 파트너를 찾는 사이트더라고. 즉시 발을 끊었지."

이렇게 온갖 방법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사귀지 못한 데 형은 한 가지 확신을 갖게 됐다. "이곳 사람들이 한국에 관심이 없는 이상, 나는 친구를 사귀기 힘들다"고. 일본인들과 사귀는 외국인들이 일본인들과 일본에 대해서 말을 나누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대화가 얼마 이어지지 않는 걸 보고 든 생각이다.

'교환학생 제도 없는' 지방대, 어학연수 1년 반으로 해갈?

교환학생이 많은 이곳 말라가나 마드리드, 혹은 꼬르도바(Cordoba)나 살라망카(Salamanca)로 갈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스페인어 전공을 위한 교환학생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현우 형은 "단지 비행기 값을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었다"고 했다. 현우 형이 다니는 대학 누리집을 확인해본 결과, 그 제도조차도 지금은 찾을 수 없었다.

현우 형은 "그조차도 도움이 안 돼 선배들도 전부 자비로 어학연수를 떠났다"고 말했다. 서울권 대학에 다니는 이들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상당수의 지방대에는 교환학생 제도가 없거나, 있더라도 영어권 대학인 미국, 호주, 필리핀 등이나 중국에 한정된 경우가 많다.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밝게 있었지만, 손을 굳게 맞잡으면서 말하는 현에게선 깊은 고민이 느껴졌다.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밝게 있었지만, 손을 굳게 맞잡으면서 말하는 현에게선 깊은 고민이 느껴졌다.
ⓒ 임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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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순환인거 같다. 누가 집에서 그런 거액을 선뜻 지원을 해줄 수 있을까. 못 가는 학생이 늘어나면 학교에서도 지원을 줄인다. 거기다 과에서 1-2등 달리는 친구들이나 스페인어 (관련 직종)에 뜻이 있는 친구들은 편입으로 빠져버린다. 작년에 학과 부회장 했던 친구가 다른 국립대 스페인어과로 편입했다. 거기는 꼬르도바에 교환학생을 갈 수 있다."

그럼에도 관세사에 뜻이 있어서 지독하게 공부했다. 스페인 방송을 시청하려고 이사를 다닐 때마다 중고 TV를 들고 다녔다. 친구들을 사귀기 힘들었더라도 언어를 배우는 데 친구 사귀기 만한 게 없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스페인에 온 지 6개월 만에 DELE B2 등급을 취득했다. 6개월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간 사람들 중에도 취득이 힘든 등위다. 하지만 형에게서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너무나 아쉬워. 여기 와서 알게 됐지만 너같이 교환학생으로 온 애들이 너무 부럽더라고. 학원수업만 들으면 매일 4시간 반복되는 쳇바퀴 같은 일상이야.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데도 학원수업만 듣는 거보다 고등교육을 받는 게 더 좋은 거 같아. 고등교육을 거친 친구들은 구사하는 단어 표현이 달라. 우리는 te gustar(그거 좋아해), querer(원하다), tomar(잡다) 같이 기초적인 표현만 쓰지. DELE 상위 등급인 C1, C2로 올라가면 수업에서 철학, 사회에 대한 토론이 들어가는데 이런 구사력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

 “너무나 아쉬워. 교환학생으로 온 애들이 너무 부럽더라고. 대학교 수업 들으면 훨씬 (스페인어) 공부하기 좋았을텐데"
 “너무나 아쉬워. 교환학생으로 온 애들이 너무 부럽더라고. 대학교 수업 들으면 훨씬 (스페인어) 공부하기 좋았을텐데"
ⓒ 임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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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형은 덧붙여 "나중에 성공한다면 반드시 학과 후배들을 위해 돈을 기부해 이런 악순환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정보 부족으로 겪은 초기의 '멘붕', 후배들은 안 그랬으면

형은 어쩌면 그래서, 그라나다를 떠나 말라가로 오는 모험을 감행했는지도 모른다. 작년 9월, 말라가 근처 또레몰리노스(Torremolinos)에 놀러갔다. 이미 4월에 말라가에 언어교환을 하러 온 적이 있던 터라, 그때 만난 친구들을 불렀다. 놀랍게도 모든 친구들이 전부 나와 그를 반겨줬다. 외로움이 극에 달했던 그때, 그만큼 부족함을 채워준 감동이 없었다.

그라나다로 돌아와서도 그 친구들이 아른거렸다. 학원 수업 3개월 치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학원 사장에게 간청해 말라가로 학원을 옮겼고, 집 피안자(Fianza, 보증금)까지 포기하고 짐을 옮기기 위해 4번의 버스 왕복까지 들였다. 도합 금액이 거의 1000유로.

 10번의 이사끝에 마지막으로 얻은 집 앞에서
 10번의 이사끝에 마지막으로 얻은 집 앞에서
ⓒ 임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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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후회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갈망하던 친구들을 얻었고, 이곳에서 수많은 한국인 교환학생을 만나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라나다 생활도 힘들었지만 재미는 있었다고 술회한다. 하지만 말라가에서 보다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형은 지난 5월 25일, 학원 수업을 마무리지었다. 말라가로 오기 위해 세 달의 수업을 포기했기 때문에 이별도 유독 빠르게 다가왔다. 지금은 말라가를 떠나 유럽을 여행하고 있다.

 말라가에서 만난 한국친구들. 형은 그라나다에서도, 말라가에서도 '고생은 많았지만 행복했다'고 마지막에 강조했다.
 말라가에서 만난 한국친구들. 형은 그라나다에서도, 말라가에서도 '고생은 많았지만 행복했다'고 마지막에 강조했다.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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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 모른 채로 여기 왔던 게 정말 아쉬워. 정말 재밌었고 행복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아쉽다. 그라나다에서는 외롭고, 마음 한 구석이 공허했어. 예를 들면 가족이라든가 한국에서 의지했던 친구라든가. 그런 마음이 있지만 여기선 자기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그런 사람을 찾기 힘들었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으면, 좀 더 알고 왔으면 어땠을까…."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2월부터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인 '말라가 교환학생 적응분투기'의 별도 꼭지입니다.
개인 블로그 '또바기미디어(ddobagimedia.tistory.com)'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말라가#말라게뇨IN#교환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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