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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25일 '법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같은 부끄러운 말이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상용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식의 불공정은 안 통한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5월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말이다. 재벌들이 해외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를 세운 게 드러난 이후 재벌에게 강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최경환 원내대표의 말이 아니더라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은 이미 재벌들에게는 촌스러운 말이 됐다. 재벌들은 이미 "유전유죄 무전무죄"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돈 있는 자는 스스럼 없이 죄를 짓고, 돈 없는 자는 겁이 나서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음 사례를 보자.

[사례①] 2007년,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은 자신의 아들과 몸싸움을 벌인 술집 종업원을 청계산으로 끌고 가 폭행을 가했다. - 징역1년 6월 집행유예 3년

[사례②] 2010년, SK 일가이며 M&M 그룹의 회장인 최철원은 SK 본사 앞에서 시위를 해오던 탱크로리 운전 기사를 야구 방망이 등으로 폭행하고 맷값 2000만 원을 줬다. -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

[사례③] 2013년, 신세계그룹 부회장인 정용진은 국정감사와 청문회 출석 통보를 받고도 세 차례 모두 불출석했다. - 벌금 1500만 원

재벌이 벌이는 불법행위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위 세 건의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재벌가 사람이 명백한 불법행위임을 알면서도 스스럼 없이 범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또 그 일로 인해 그 누구도 징역형을 살지 않았다.

남들 몰래, 숨어서 혼자 일을 벌인 것도 아니다. 김승연 회장은 폭행 현장에 경호원 17명을 대동했고, 최철원 회장은 자신의 사무실로 피해자를 불러 폭행했다. 정용진 부회장의 경우도 이미 언론에 출석통보를 했다는 내용이 보도됐기 때문에, '불출석'이란 범법행위를 하는지 여부가 관심사인 상태였다. 이런 상황들만 봐도, 재벌들이 더 이상 법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은 그깟 벌금이야 내면 되고, 폭행을 해도 피해자와 합의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들은 폭행을 저질러도 피해자와 합의만 하면 집행유예로 바뀌니, 문제가 될 게 없다. 또 일이 복잡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대형 로펌에 돈다발만 쥐어주면 적당한 선에서 다 처리된다. 결국 그들은 법을 겁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돈 없는 사람들은 법이 무서워서 죄를 짓지도 못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유성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들의 영훈국제중학교 부정입학 사건을 보자.

2013년도 비경제적 사회적 배려 대상자 입학전형을 통해 영훈국제중학교에 입학한 학생 세 명이 입시비리를 통해 입학한 걸로 알려졌는데, 그 중 한 명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이다. 영훈국제중학교는 이들에게 주관적 채점영역에서 만점을 줬음에도 이들이 합격권에 들지 못하자 다른 지원자의 점수를 깎았다.

이는 명백한 입시부정이요, 범법행위다. 명색이 교육기관인 영훈국제중학교가 자격이 되지 않는 재벌가 자제를 '사회적 배려 대상자 입학전형'으로 분류한 것도 부족해서 부정을 저지르면서까지 입학시키려고 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번 입시부정에 어디까지 관여되어 있는지는 조사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그 결과와 상관없이 재벌의 돈 앞에서 사람들이 죄 짓는 걸 꺼리지 않게 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죄가 드러나지 않으면 남는 장사고, 죄가 드러나도 재벌이 뒤를 봐줄 것이기 때문에 거리낌없이 부정을 저지르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입시부정으로 인해 이재용 부회장이 법의 심판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고작 증여세 16억 원을 내고 삼성의 후계자가 된 이재용 부회장이 아니던가. 삼성의 범죄행위가 들어 있는 엑스파일을 폭로하면 폭로한 사람이 벌을 받는 세상 아니던가.

앞서 살펴 본 것과 같이 돈 있는 사람은 법이 더 이상 무섭지 않기 때문에 죄를 짓는데 거리낌이 없다. 게다가 돈 있는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이 대신 죄를 짓기도 한다. 이른바 "유전유죄"의 새 세상이다.

반대로 돈 없는 사람들은 법이 무서워서 죄를 짓지도 못한다. 최근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 뒤에는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막대한 액수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있다. 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노동쟁의를 하더라도 기업들은 손배소, 구상금 청구, 가압류 등 갖가지 방법으로 노동자들을 압박한다. 쟁의 과정에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인생을 걸어야 할 정도의법적 제재가 들어 온다.

재벌들은 폭행을 해도, 탈세를 해도, 국회를 우습게 봐도 벌금 아니면 집행유예지만, 노동자 서민이 그런 일을 했다면 곧바로 구속이고 징역살이다. 돈 없는 이들은 죄를 짓고 싶어도 겁이 나서 죄를 지을 수가 없다. "무전무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같은 부끄러운 말이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상용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대통령의 바람은 이미 현실이 되어 버렸다. 2013년, 우린 "유전무죄 무전유죄" 보다더 끔찍한 "유전유죄 무전무죄"의 세상을 살고 있다.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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