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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 당국 회담이 무산되었다. 남북 모두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기는 하지만 당국 회담 앞에 험한 산이 몇 개 더 들어서 버렸다. 회담이 무산된 이유는 수석대표의 급의 문제이다. 지난 6일 북한의 대화제기에 호응하여 정부는 북한에 장관급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다가 북한과 실무협의 과정에서 책임 있는 당국자가 나와야 한다는 차원에서 북한 노동당의 김양건 비서 겸 통일전선부(통전부) 부장을 회담의 상대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위기를 겪은 지 엊그제인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다양한 민간교류 등 현안 문제들이 묻혀버렸다. 회담의 수석대표가 누가될 것인지가 최대의 쟁점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이 문제로 남북당국회담은 무산되었다. 지난 3월, 4월에 전쟁위기를 겪으면서 남북사이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분명해졌다. 그런데도 수석대표의 급을 결정하지 못해서 결국 회담을 무산시켰으니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구더기 무서워서 결국 장을 못 담그고 만 것이다.

남북 당국 회담 수석대표 논란을 겪으면서 유명해진 사람은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전부장과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이다. 정부는 김양건이 수석대표가 안될 것으로 간주하고 통일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명단을 북에 전달했다. 북은 강지영 조평통 서기국장을 수석대표로 제시했다. 북은 강지영이 장관급인데 우리가 차관을 수석대표로 한 것을 빌미로 해서 회담을 무산시켰다.

북한은 일당독재 국가라서 노동당에 서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김양건의 서열도 부총리보다 더 먼저 발표된다. 다당제 국가인 우리와 비교하자면 새누리당하고 민주당하고 합쳐놓고 거기에 두 당의 원로들이 고위급을 다 차지하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김정은 시대 세대교체로 부상한 강지영

지난 2007년 민주당 안민석(가운데) 의원이 개성을 방문해 만난 강지영(왼쪽)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 북한은 12일로 예정됐던 남북당국회담의 북쪽 수석대표로 강 국장을 내세웠다.
 지난 2007년 민주당 안민석(가운데) 의원이 개성을 방문해 만난 강지영(왼쪽)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 북한은 12일로 예정됐던 남북당국회담의 북쪽 수석대표로 강 국장을 내세웠다.
ⓒ 안민석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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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치 때문에 북한에는 무슨 감투 쓴 사람들이 많이 있다. 게다가 우리처럼 5년마다 정권교체가 되는 것도 아니니 원로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조평통에 부위원장이 많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그 수많은 부위원장보다 조평통 서기국장이 알짜배기이다. 강지영 이전 서기국장이던 안경호는 초강성 인물로서, 사실상 장관급 이상의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장관급들이 그 앞에서 쩔쩔 맸으며, 2000년 10월에는 민족통일기구 건설이라는 북한의 통일방안에 대해 평양시 기념행사에서 발표하기도 하였다. 강지영은 나이가 그보다젊지만 조평통 서기국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으니 우리 장관급이라고 해도 큰 탈이 없다.

강지영은 북한에서 그동안 민간이나 종교 관련 대남사업을 하다가 조평통 서기국장이 되었다. 벼락출세한 것이다. 조평통 서기국장이 장관급이기는한데, 그가 당국간 회담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당국회담 대표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류길재 장관도 당국회담 경험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강지영은 북한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서 조평통 서기국장까지 오른 사람이기 때문에 남북장관급 회담 상대역으로 부족하지 않다. 경험이 없으면 과거의 경험과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의 남북회담 문화를 만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를 상대하는 신선한 파트너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이 지금까지 장관급 회담에 '내각 책임참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다가 조평통 서기국장이 나온 것은 과거보다 오히려 급을 높여서 나온 측면이 있다. '내각 책임참사'가 비상설이기 때문에 우리의 책임 있는 당국자 참석 요구에 부응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일 시대 말기부터 대남사업 담당자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졌고,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에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강지영은 이런 배경에서 김정은 시대의 대남업무를 담당하는 주역 중의 한 명으로 조평통 서기국장에 임명된 것이다.

북한이 '내각 책임참사'를 둔 이유

회담을 하면서 상대방이 수석대표가 누가 나올 것인지를 지목하는 것은 결례이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 북한은 부총리급 남북대화를 제안하면서 사실상 한완상 통일부총리를 상대로 지명했다.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한국 내부에서 한완상 부총리의 입지는 현저하게 약화되고, 부총리급 회담은 성사되지도 못했다.

다른 경우지만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회담 상대로 지목한 것은 회담 성사를 위해서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북한의 노동당 비서 겸 통전부장은 북한에서 당 소속이다. 행정부가 아니므로 남북대화에 직접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북한의 내각에서는 대남통일 정책담당 부서가 없다. 북한은 남북 장관급 회담을 위해서 내각의 책임자인 총리 밑에 '내각 책임참사'라는 자리를 두고 장관급회담의 임무를 맡겼다. 그래서 2000년부터 전금진, 김령성, 권호웅 등 대남일꾼들이 내각 책임참사 직책을 가지고 지금까지 21차례의 남북장관급회담에 참석했다.

내각 책임참사의 직급이 우리의 장관급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2000년 당시에도 가벼운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전금진이 워낙 유명한 대남협상전문가였다. 그 후임이었던 김령성은 화려한 화술과 박식함, 친화력으로 남한 언론에도 많이 알려졌다. 그들의 내각 책임참사라는 직책은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

2004년 14차 장관급 회담에서 권호웅이 내각책임참사가 되었을 때는 전금진이나 김령성 때보다 논란이 확산되었다. 권호웅의 나이가 젊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아태평화위원회 참사 자격으로 1990년대부터 각종 남북접촉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를 장관급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북한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른바 남남갈등이 발생했다.

하지만 그가 우리의 정무장관이나 무임소 장관급에 해당하는 총리 직속의 내각책임참사라는 장관급이고, 남북대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장관급 회담은 그후 21차까지 진행되었다.

김양건은 장관급 회담의 상대로 적절하지 않아

남북 당국 회담 수석대표 논란을 겪으면서 유명해진 사람은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전부장이다. 사진은 지난 2009년 8월 22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특사 조의방문단'으로 서울을 방문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왼쪽)이 서울 서대문구 그랜드 힐튼호텔에서 현인택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면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남북 당국 회담 수석대표 논란을 겪으면서 유명해진 사람은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전부장이다. 사진은 지난 2009년 8월 22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특사 조의방문단'으로 서울을 방문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왼쪽)이 서울 서대문구 그랜드 힐튼호텔에서 현인택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면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사진제공 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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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권호웅이 내각 책임참사로 장관급 회담에 임했을 때 발생했던 남남갈등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책임 있는 사람이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로 김양건 노동당 대남당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을 지목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책임 있는 사람이 남북회담에 나서라고 북에 주문할 수는 있다. 그런데 김양건을 지목한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김양건의 직급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국정원의 대북과 해외담당 업무, 통일부장관 등을 포괄하는 통일부총리급이다. 뿐만 아니라 당과 행정부의 기능이 분화되어서 북한의 노동당은 직접 대외업무에 참여하지 않는다.

북한 노동당의 국제비서도 외교업무에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 외교업무는 내각의 외상이 담당한다. 미국과 핵협상을 노동당이 하지 않고 내각의 외교부에서 하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외교부장관이 바로 외상이다. 북한 노동당의 통전부장한테 남북대화에 나서라고 하면 남한의 새누리당의 외교통일위원장한테 남북대화 하라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물론 북한은 노동당이 정부보다 우위에 있는 일당독재 국가이지만, 그래도 북한의 체계가 있다. 이런 체계를 무시하고 노동당 비서한테 남북회담에 나서라고 하는 것은 국제 스탠다드가 아니다.

중국 공산당에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있는데 이 직책이 당의 외교정책을 지휘하는 자리다. 그리고 외교는 내각의 외교부장이 한다. 국가간 외교이기 때문이다. 중국하고 외교하면서 중국정부의 왕이 외교부장보다 공산당의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책임과 권한이 더 크니 그가 협상에 나오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김양건이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임태희 노동부장관과 싱가포르에서 비밀접촉을 하기도 했다. 이때 김양건의 역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와 같은 것이었다.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신뢰프로세스가 치른 비싼 수업료

김양건을 대화에 끌어낼 생각이었다면 남북 실무회담에서 우리 측이 정상회담이나 그에 준하는 단위에서 해결할 의제를 던졌으면 가능했을 것이다. 장관급 회담을 제안하고 장관급 회담에 준하는 의제를 제기하면서 굳이 김양건을 나오라고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남북한의 제도와 권력구조의 차이가 남북당국회담을 무산시킨 셈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남북관계가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철두철미한 준비가 필요했다. 17시간의 실무회담에서 대표단과 의제를 확정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서둘러서 당국회담을 추진했다. 실무회담에서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채 당국회담을 서두른 것에 대한 책임은 북한 당국도 나눠가져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서둘렀기 때문에 디테일에 있는 악마의 방해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국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는 남북의 제도와 권력구조의 차이에 대한 이해, 충분한 실무회담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가 치른 비싼 수업료를 값싸게 낭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


태그:#김양건, #강지영, #남북당국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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