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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후 한반도평화포럼이 서울 서교동 세교연구소에서 연 ‘남북 당국회담 수석대표의 격 : 역사, 쟁점, 대안’ 긴급토론회.
13일 오후 한반도평화포럼이 서울 서교동 세교연구소에서 연 ‘남북 당국회담 수석대표의 격 : 역사, 쟁점, 대안’ 긴급토론회. ⓒ 안홍기

6년만에 열릴 뻔했던 남북당국회담이 '격' 문제로 무산된 것에 대한 비판이 매섭다. '남한 통일부장관 대 북한 통일전선부장'을 대화 상대로 고집한 정부의 '유연성 부족'을 놓고, 북한에 대한 이해부족과 이전 정권의 남북대화의 성과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반도평화포럼이 13일 오후 서울 서교동 세교연구소에서 연 '남북 당국회담 수석대표의 격 : 역사, 쟁점, 대안' 긴급토론회에는 전직 통일부장관과 전직 통일부 당국자, 남북관계 연구자와 기자 등 오랫동안 남북관계를 들여다 본 전문가들이 모여 이번 남북회담 무산 사태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을 질타했다.  

"'격'문제 없는 총리회담으로 해법 찾아야"

발제는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이 맡았다. 그는 먼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우리의 격에 맞는 파트너가 북한의 내각과 국방위 등 국가기관에 모두 존재하지만, 북한 내각에 통일담당 부서는 없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남북총리회담, 국방장관회담, 장성급회담, 스포츠회담,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등 각종 남북회담에는 '격'을 일치시킬 수 있는 남북 공통 직제가 있지만, 통일부장관이 나서는 남북장관급회담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이전의 장관급회담과는 달리 '통일부장관-통전부장' 회담을 북측에 제시했고, 북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전 장관은 "통일전선부장이 대남관계에 공개적으로 나선 경우는 김정일 당 총비서의 비서로서 임무를 수행하거나 특사 혹은 김정일의 지시 관련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경우 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공산당 국가에서는 당비서국 내 부서장이 국가 간 관계의 대표단 단장으로 나서지 않는 게 그들의 분업 원칙"이고 "국가 간 관계는 내각과 국방위의 소관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통전부장이 대남관계에 공개적으로 나선 경우는, 1994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통전부장이 각각 통일부장관과 국정원장의 파트너로, 2000년 9월 김용순 통전부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2009년 8월 김양건 통전부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조문단 일원으로 온 일이 있다. 이 전 장관은 "남측에서 장관급회담 대표로 통전부장을 지목한 것은 일상적인 당국 대표직 수행이고 이에 대해 북측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해설했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은 과거에도 남측이 북측 회담대표의 급을 문제 삼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은 "우리 쪽에서도 '이왕이면 김용순(통전부장) 당신이 나오시오, 김양건(통전부장) 나오시오' 했지만, 그 때마다 북측은 '이래저래 해서 안 된다'고 반응했다"면서 "그렇지만 이 문제로 남측이 북측을 강박할 순 없다, 북측도 그쪽의 체제가 있고 논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은 앞으로도 장관급회담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봤다. 2000년 7월 만들어진 장관급회담은 6·15공동선언의 이행이 목적이었고, 2007년 10·4정상회담에서 장관급회담의 기능이 총리회담으로 격상됐으니 굳이 그 이전의 장관급에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 전 장관은 "현재 남북이 사실상 기싸움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장관급이 수석대표가 되는 당국회담을 전제로 한 해법은 실현가능성이 적다"며 "대안은 남북 총리회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총리회담은 90년대 초반에 이미 기본합의서를 만든 경험이 있다. 여기서 남북 현안 문제 뿐 아니라 장관급 수석대표의 격 문제에 대해서도 합의도출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반도평화포럼이 13일 오후 서울 서교동 세교연구소에서 연 '남북 당국회담 수석대표의 격 : 역사, 쟁점, 대안' 긴급토론회.
한반도평화포럼이 13일 오후 서울 서교동 세교연구소에서 연 '남북 당국회담 수석대표의 격 : 역사, 쟁점, 대안' 긴급토론회. ⓒ 안홍기

"조평통은 노동당 외곽기구 아니라 특별기구"

이 포럼의 김창수 기획운영위원장은 정부가 '격'을 문제로 '통일부장관-통일전선부장' 장관급회담을 고수하면서 내세운 '북한 대표단장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은 통일부장관과 회담할 급이 안된다'는 논리들을 분석했다.  

'북한 조평통은 노동당의 단순 외곽기구에 불과하다'는 시각에 대해 김 위원장은 "그렇게 보기 어렵다, 조평통은 노동당의 특별기구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짚었다. 

김 위원장은 "80년대 말 허담이 사망한 이래 위원장을 선임하지 못한 상태에서 김용순도 대남비서와 통전부장을 겸임하고 있을 때 조평통 부위원장 역할을 맡았다"며 "김용순은 1994년에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서울을 방문했을 때 이홍구 부총리가 상대였다"고 말했다. 이어 "대남비서가 부총리 급이고 통전부장이 국정원장과 통일부장관을 합친 격이라고 한다면 조평통 부위원장은 경우에 따라서 부총리, 국정원장, 통일부장관과 유사한 급일 때도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평통 부위원장이 장관급으로 분류되므로 강지영 조평통 서기국장은 남한으로 치자면 차관급'이라는 통일부 설명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조평통 서기국장이 부위원장 하급직책이라고 본 것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안경호, 한시해 등의 경우는 장관급이라고 하는 통전부 부부장, 조평통 부위원장을 수행하다가 서기국장을 맡는 경우도 있었다"며 "최우진의 경우 통전부 부부장을 하다가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북한이 권력 엘리트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당 간부정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회담 대표의 급을 남한의 직제와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문제에 대해 "북한은 회담을 잘하는 사람을 회담일꾼으로 내세우고, 수행원 가운데 실세가 회담을 통제한다"며 "북한의 대표단은 대표단과 수행원, 취재기자단으로 3분되지만, 이는 사실상 의미가 없는 구분"이라고 설명했다. 90년대 남북회담에 말단 수행원으로 참여했지만 사실상 회담을 통제했던 임춘길(임동옥)의 경우가 대표적이란 것.

무산된 이번 남북당국회담 대표단 명단에 '원동연'이란 이름이 보장성원(수행원)으로 기재돼 있었고 이 이름의 주인공이 원동연 통전부 부부장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에 대해 김 위원장은 "원동연이 과거에 임춘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임무를 갖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대학생-초등생 씨름판에서 '키 큰 초등생 나와라'하는 격"

고경빈 전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은 "이번에 회담의 격을 문제로 남북회담이 무산된 데에 정부가 국민들에게 설명해야할 부분이 있다"며 "앞으로의 남북 신뢰구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남북회담은 정부가 애초에 장관급회담을 제의했고 북한이 이를 수용해 남북실무접촉이 이뤄졌다.

고 전 본부장은 "회담의 격은 단순히 의전의 격이 아니라 회담의 내용을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며 "회담의 격은 회담 어젠다의 수준과 목표, 전략 등을 감안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관급회담을 제의했다가 실제 대표단 명단을 교환할 때는 통일부차관을 제의한 것은 의전부분만 아니라 회담의 내용까지도 손을 봤다고 이해해야 한다"며 "그런데 그 내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이런 과정이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고 전 본부장은 "회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국력이다, 회담 일방의 실질적인 파워가 회담결과를 몰아간다, 북한과 우리의 국력 차이는 어마어마하다"면서 현 상황을 "대학생 씨름부와 초등생 씨름부가 시합을 하는데 대학생 쪽에서 '너희들 중에 가장 키 큰 애가 나와야 시합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형국"이라 비유했다.

고 전 본부장은 통전부 서기국장과 통일부장관이 장관급회담을 하는 상황을 '굴종'이라고 한 청와대 관계자의 표현에 대해 "남북관계의 정상화보다는 이전 정부의 성과를 깎아내리기 위한 의도가 많지 않나 한다"며 "이전 정부들이 북한에 끌려다니는 협상을 했다는 편견도 생기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북한과 200여가지의 합의문을 만들었지만 그 중 7~80%는 우리가 제기한 문제들이었다"고 지적했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말한 수석, 차관급인데 실세 아닌가?"

15~17차 남북장관급 회담 당시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정책보좌관을 지낸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신문에 보니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얘길 했는데, '회담 대표의 급이 권한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고 운을 뗐다. 이 얘기는 하루 전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박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소개하면서 '통일부장관-통전부장' 장관급회담의 당위성을 설명한 부분이다.

김 교수는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신 분은 차관급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해당 발언을 한 청와대 수석비서관은 차관급인데 최근 남북관계에 대해 통일부장관보다 많은 발언들을 내놓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 분(청와대 수석)은 차관급이지만 정권의 실세여서 권한의 크기가 큰 것이다"라며 "스스로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계신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회담을 여는 목표가 가장 중요하다,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이산가족 등 남북 사이에 현안이 여러가지 있는데 지금은 마치 급 문제만 해결되면 나머지는 상관없다는 듯이 되고 있다"며 "북한에 대해 통전부장이 나오라고 얘기할 때엔 통전부장에 걸맞도록 통일부장관의 위상과 역할을 높이든지,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통일부의 권한과 크기를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먼저 고려하는 게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20여년 취재기자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에 중점둔 듯"

20여년 남북관계를 취재해온 장용훈 <연합뉴스> 기자는 "남북회담 성사와 무산과정에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고 통일부의 브리핑을 들으면서 느꼈던 것은 지금 우리의 인식이 북한의 변화를 따라가고 있는 건가 하는 것"이었다면서 조평통을 '통일전선부의 외곽조직' 정도로 치부하는 대다수의 인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장 기자는 "조평통이 1961년에 먼저 만들어졌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1978년 나중에 만들어진 통일전선부에 흡수되고 관할되는 형태가 됐다"며 "2000년대 들어 통전부가 대남공작부서들을 군으로 내보내면서 정찰총국을 만들어진 것과 같은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조평통은 남한 적화통일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이후 남북 대화를 전담할 기구가 필요했고, 그에 따라 조평통의 성격과 역할도 변화해왔다는 얘기다. 장 기자는 "이런 점을 알고 있었다면 '조평통 서기국장은 민주평통 사무처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는 통일부의 망발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기자는 "정작 문제는 합의를 하는 데에 나온 조평통 서기국장의 급이 아니라, 조평통 서기국장이 나와서 한 합의가 얼마나 잘 실행되느냐가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2004년 5월부터 장관급회담에 북측 단장이 권호웅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조평통의 과장급인 사람이 나왔다'고들 했지만 중요한 건 그때의 합의가 지켜져서 이후의 군사당국간 회담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장 기자는 이어 "이번 회담 무산과정을 보면서 이번 정부는 이전 정부와 굉장히 다르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느꼈다"며 "회담을 1박 2일로 하고 '참관'(북측 대표단이 서울 시내 등지를 둘러보는 일정)도 없애는 등 일정을 굉장히 간소화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런데, 그렇게 하는 전략적인 목표가 있느냐, 이전 정부와 다르게 해서 뭘 어떻게 얻고자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없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남북회담#한반도평화포럼#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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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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