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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교육현장에서 진실을 왜곡하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17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습니다. 고교생 응답자의 69%가 6·25를 북침이라고 답한 '청소년 역사인식' 조사 결과를 언급하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은 "충격적"이라는 반응과 함께, 일선에서 역사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을 겨냥했습니다. 이날 박 대통령의 입에서는 "한탄스럽다"는 표현도 나왔습니다. 

박 대통령은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데 있어 각자의 철학에 따라 교육방법에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교사의 특징이나 가지고 있는 장점에 따라 다양하게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교육현장에서 진실을 왜곡하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또 "이것은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 가져야할 기본 가치와 애국심을 흔들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신 분들의 희생을 왜곡시키는 것으로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런데 한탄스럽게도 학생들의 약 70%가 6·25를 북침이라고 하는 것은 교육 현장에서 교육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대책 마련을 지시하는 박 대통령은 단호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문제다. 새 정부에서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너무 성급했던 박 대통령의 오독

하지만 박 대통령이 고교생들의 역사 인식에 대한 조사 결과를 의도적인 역사 왜곡 교육의 결과인 것처럼 언급한 것은 너무 성급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설사 청소년들의 역사 상식이 부족하다고 해도 거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꼼꼼하게 원인을 따져보는 대신 무턱대고 역사 교사들의 자질을 비하하고, 더구나 '색깔론'으로 해석될 만한 발언을 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언급한 조사결과는 <서울신문>이 입시전문업체인 진학사와 함께 전국 고등학생 5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입니다. 지난 11일 보도된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9%(349명)가 한국전쟁을 북침이라고 답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질문은 '한국전쟁은 북침인가 남침인가'였습니다.

조사 결과를 전한 <서울신문>은 "학생들은 북침(北侵)과 남침(南侵)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헷갈리거나 전쟁의 발발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풀이했습니다. 또 "현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6종 모두 한국전쟁의 발발 형태를 '남침'으로 명시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지요.

즉 '6·25는 북침인가 남침인가'라는 여론조사 질문에서 '북침'이 북한을 남한이 침략한 것인지, 북한이 남한을 침공한 것을 뜻하는지, 용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생긴 결과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신문의 보도 의도 자체도 전반적인 역사 교육 부실로 인한 청소년들의 역사인식 부족 문제를 다룬 것이지, 교육 현장에서의 역사 왜곡 문제를 다룬 게 아니었습니다.

'무한도전'이 역사 교육하는 웃지 못할 현실

분명히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에 6·25는 북한의 남침이라는 점이 명시돼 있고, 교과서 내용을 거슬러 남한의 북침이라고 가르치는 간 큰 교사들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생들의 역사 상식 부족의 원인은 다른 데서 찾는 게 상식적일 겁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청소년들의 역사인식 부족은 부실한 역사 교육의 탓이 큽니다. 입시에서의 유불리가 모든 공부의 잣대가 되는 현실 탓에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한국사를 선택하는 비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서울대를 제외한 상당수 대학들이 국사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지 않고 있는데다, 한국사 과목이 타 과목에 비해 점수를 따기가 어려워 학생들의 외면을 받고 있기 때문이죠. 2012년에는 수능 사회탐구 과목 중 국사를 선택한 비율이 6.9%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도입된 한국사 등 일부 과목에 대한 집중이수제도 이 같은 현상에 부채질을 했습니다. 한국사 수업 시간 자체가 그 전보다 3분의 1로 줄어든 것이죠. 이 때문에 학생들이 역사 공부를 TV 사극 드라마를 통해서, 혹은 역사 문제를 다룬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를 통해 더 많이 배운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제대로 된 실태 파악도 하지 않은 채 일선 교사들을 성급하게 '역사 왜곡' 주점으로 낙인찍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발끈하는 모습에서는 일부 선입견도 엿보입니다. 보수 언론들이 전교조 소속 교사들에게 지속적으로 뒤집어씌운 종북-색깔론 말입니다.

청와대 '아니면 말고'식의 문제 제기

청와대 참모들도 '역사를 잘못 가르치는 게 문제'라는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고조선으로 거슬러간 역사도 아니고, 엊그제 역사를 잘못 알거나, 잘못 가르친다면 동시대 살아가는 어른들이 깊게 고민해야 할 문제 아니냐"며 "잘못된 역사를 알고, 그런 식으로 가르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의도적으로 왜곡해 가르친 게 아니라 학생들이 용어를 헷갈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자 이 수석은 "그런 것이라면 그보다 더 다행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아전인수격 답을 했습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문제제기였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한 셈입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설문조사의 문항의 모호함을 지적하자 그제서야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청와대에서는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한두 개 설문조사 결과만을 염두해 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번 한 번이 아니라 매년 여론조사에서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잘 모르겠다는 학생들이 많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6·25를 누가 일으켰느냐'는 식의 명확한 질문을 했을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이 제대로 된 답을 한 조사 결과도 있다는 점에 대해 청와대는 어떻게 설명할지 의문입니다.

"신중한 대책 마련하라"는 박 대통령... 참모들은? 

박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발언을 마무리하면서 "여러 가지 교육현장의 문제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신중하게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는 당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일부 오류가 내포된 조사 결과를 자기 입맛대로 해석해 일선에서 열악한 역사 교육 환경 아래서 고생하고 있는 교사들에게 부당한 비난을 가한 뒤였습니다.

박 대통령은 평소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나 국무위원들에게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면서 현장으로 가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주문을 입버릇처럼 해왔습니다. 역사 교육의 문제도 마찬가지겠죠. 교사들을 비난하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를 파악했다면 박 대통령답지 않게 '오버'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비록 원인 파악은 초점이 많이 빗나갔지만, 박 대통령의 지시대로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현장에 기반한 "신중한 대책"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통령의 지시를 꼼꼼하게 받아 적었을 청와대 참모들의 분발을 기대해봅니다.


#박근혜#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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