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국정원의 선거 개입과 이 사실을 은폐 조작한 경찰에 대한 분노가 우리 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끄러운 일이 다른 나라도 아니고 2013년,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는 사실 앞에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무엇을 어찌 해야할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올해 대학 2학년인 아들로부터 마침 전화가 왔습니다. 아들은 언론 보도를 보다가 너무 화가 난다며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해왔습니다.

"아빠, 이런 부정 선거에 대해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우리 집에서 국정원과 경찰의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면 어떨까요?"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 응원 "눈물겹도록 고맙다, 대학생"  국정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총학생회 시국선언과 종교계, 시민사회단체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앞에서 열린 국정원 규탄 대학생 촛불문화제에 한 시민이 학생들의 촛불집회를 지지하며 '눈물겹도록 고맙다! 대학생! 사랑한다'라고 적힌 종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 응원 "눈물겹도록 고맙다, 대학생" 국정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총학생회 시국선언과 종교계, 시민사회단체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앞에서 열린 국정원 규탄 대학생 촛불문화제에 한 시민이 학생들의 촛불집회를 지지하며 '눈물겹도록 고맙다! 대학생! 사랑한다'라고 적힌 종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갑작스러운 아들의 제안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반가웠습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권력형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국민으로서' 방관하거나 침묵하는 것 역시 불의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평소 생각했는데 아들이 먼저 이런 제안을 해 주니 고마웠습니다.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다. 그럼 네가 먼저 초안을 써서 아빠에게 줘. 그럼 아빠가 엄마와 같이 검토해서 '우리집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자. 어때."

아들은 새벽 2시까지 시국선언문을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가족이 아침 식사를 하며 아들이 쓴 글을 읽고 몇 가지 내용을 일부 수정해 다음과 같은 '제18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의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우리 가족 시국 선언문'을 채택했습니다. 다만 아직 미성년자인 딸은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발표하자고 하여 이에 따랐습니다. 다음은 우리 집 4가족이 공동으로 합의한 '18대 대선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우리집 시국선언문' 입니다.

국민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Justice delayed is democracy denied. -Robert F. Kennedy
정의의 실천을 뒤로 미루면 민주주의가 거부당한다. -로버트 F. 케네디

2013년 6월 14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재임하던 국정원이 지난 18대 대선 과정에서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정원장 개인이 개입한 것으로도 큰 중죄인데, 그는 대한민국의 안보를 담당하는 국가정보원의 공무원을 자신의 사병처럼 여론조작에 동원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 4인은 지난 2013년 6월 14일 발표된 국가정보원의 18대 대선 불법개입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분노와 수치심을 느낀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이 나라 최고 정보기관이 특정 후보의 당선을 목적으로 인터넷에 여론을 조작하는 댓글을 썼다는 사실은 우리 가족에게 실망을 넘어 피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안겨주었다.

또한 이같은 국정원의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그 진실을 밝혀 사회 정의를 바로잡을 '권한과 책임'이 있는 경찰이 오히려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은폐, 조작했음이 밝혀졌고 대한민국의 법을 수호하는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청장만을 불구속 기소하고 이외 국정원의 모든 부정선거 관련 공무원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처분하는 등 사실상의 '면죄부'를 내렸다.

이에 우리 가족 4인은 다음과 같은 요구를 제기하며 시국선언을 발표한다.

1.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에서 하라는 안보는 지키지 않고 특정 후보에 대한 비방을 했음에도 검찰이 이들에게 '사실상의' 면죄부를 안겨줬다. 이는 대선에서 국가 권력기관이 부정선거를 하더라도 아주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는 매우 불행한 관행을 만든 것이다. 또한 이는 민주주의를 파괴한 국가적 범죄 행위와 관련한 잘못된 관행을 만든 일이며 우리가 비판하는 북한 등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매우 나쁜 선례를 남긴 불행한 사례가 될 것이다. 따라서 검찰에 원세훈 국정원장을 비롯하여, 부정선거에 개입한 이들과 이들의 행위를 은폐 조작한 모든 경찰의 엄중한 처벌을 강력히 요구한다.

1. 18대 대선은 역대 최고의 어마어마한 박빙의 승부였다. 그런데 국가정보기관의 특정 후보를 상대로 한 여론 조작은 18대 대선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검찰은 이들 국가권력기관에 의한 불법 행위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해 그 진실을 규명하고 그 결과에 따라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

1.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6일 열린 대선 후보 3차 토론회에서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상대로 이른바 '국정원 댓글녀'에 대한 인권유린을 언급하며 사과를 압박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의혹 수준이었던 국정원 댓글녀 사건이 사실인 것으로 밝혀진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문재인 후보를 비롯한 모든 국민에게 반드시 사죄해야만 한다. 더불어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 부정선거에 대해 어떤 사실을 어느만큼 알고 있었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국민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음을 밝힌다.

부정 선거는 쿠데타보다 더 나쁘다. 쿠데타는 일어나서는 안 될 범죄행위가 분명하지만 선거는 사실상 매년 열리는데 그때마다 지금처럼 부정선거를 한다면 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극악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부정선거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지나간다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 없다. 우리 가족 4인은 국가의 정보기관에 의해 벌어진 이번 부정선거를, 4·19와 5·18, 그리고 6월 항쟁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피와 죽음으로 이룩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흑역사'로 규정한다.

특히 이러한 부정선거 의혹을 비판하는 국민적 의혹을 훼손하고자 뜬금없이 'NLL 대화록'을 공개하며 극단적인 저항을 하고 있는 국정원의 반복적인 정치개입에 대해 거듭 비판한다. 이를 용인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해 깊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더 이상 국민에게 분노와 실망을 안겨주지 않도록 하기를 충고하고 싶다. 과거 부정선거로 인해 물러난 1960년 3·15 부정 선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민주주의의 밑동까지 썩게 만든 이 사건에 대해 깊은 반성을 촉구하며 국가권력기관의 부정 선거 의혹에 대한 진실이 국정조사를 통해 모두 밝혀지기를 강력히 촉구하고자 시국선언문을 발표한다.

경기도 고양시 거주

아빠 고상만, 엄마 장경희, 아들 고충열(대학 2학년), 딸 고**(중학교 3학년)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켜야

"피땀흘려 이룩한 민주주의 지키자" 2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주최로 열린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던 한 학생과 시민들이 행진을 벌이다 경찰에 가로막히자 구호를 외치고 있다.
▲ "피땀흘려 이룩한 민주주의 지키자" 2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주최로 열린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던 한 학생과 시민들이 행진을 벌이다 경찰에 가로막히자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아들이 써온 초안을 보며 새삼 놀랐습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정확히 짚어서 비판한 아들이 내심 든든했습니다. 우리 가족과 생각이 다른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상한 집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이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민주주의는 모두가 지향하는 그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보다 소중하게 지키고 유지되어야 할 것은 바로 공정한 선거입니다.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정하고 정확하게 우리의 대표를 선출할 수 있는 권리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우리 집에서는 시국선언을 발표하기로 한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지금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엄청난 부정선거 의혹이 정쟁과 논점을 흐리는 시비로 그냥 지나간다면 대한민국은 과거의 불행한 독재로 회귀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나라를 물러줄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부정선거#시국선언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