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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서주희의 〈장인44〉
책겉그림서주희의 〈장인44〉 ⓒ 한국방송출판
일류소설가와 삼류소설가의 차이가 뭘까? 그 무엇보다도 군더더기를 깎아내는 능력에 있지 않을까? 그건 일류도공과 삼류도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류도공은 잘못 빚은 도자기는 과감히 깨트리지만 삼류도공은 그것마저 아까워하니 말이다.

그 밖에도 일류와 삼류에는 시간을 쏟아 붓는 정성이 남다르다. 이른바 장인정신으로 임하는 자세가 그렇다. 일류작가는 일류소설을 쓰기 위해 불철주야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붓고, 일류도공도 도자기 하나를 만들기 위해 뜨거운 용광로 앞에서 혼을 불어넣는다.

인생의 반 이상을 전통문화를 잇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떨까? 그들을 일컬어 외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 말하지 않던가? 이른바 바늘 하나로 인생을 수놓고 있는 '한복 연구가'도 그렇고, 40년 동안 자연염색에 생을 바친 '염색장'도 그렇고, 방짜유기로 60년을 살아 온 '유기장' 역시 그렇다.

문화캐스터 서주희의 <장인44>는 그와 같은 장인정신에 자기 생을 바친 44명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에는 다도의 아버지 초의선사의 맥을 잇고 있는 '석용운 스님'을 비롯해, 30년 넘은 자기 인생을 나무에 새기고 있는 '서각장 이규남'씨 등 그야말로 名不虛傳(명불허전) 장인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전라남도 보성 뿐만 아니라 무안군에도 5만 여평의 차밭을 일구고 있는 이가 있다. 녹차에 관한한 장인이라 할 만한 이다. 바로 석용운 스님이 그다. 그는 초의선사의 기념관 둘레에서 기르고 있는 녹차 잎을 세계적인 명품 녹차로 만들고 있다.

사실 '녹차'를 보는 각도도 나라마다 다르다고 한다. 일본은 차의 빛깔이 좋아야 좋은 것으로 치고, 중국은 향성 민족이라 차의 향기가 좋아야 좋은 것으로 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차의 맛이 좋아야 제일 좋은 것으로 친다고 한다.

바로 그 좋은 맛을 내기 위해 석용운 스님은 '부초'(釜炒)에 목숨을 건다고 한다. '부초'란 곧 찻잎을 볶아내는 기술인데, 그는 곡우(穀雨) 때 딴 녹차 잎을 세 번에 걸쳐 볶고 있고,   그 뒤엔 잘 부비는 '유념'에까지도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고 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되는 요즘이지만, 유독 그의 작업 공간만은 시간이 멈춘 듯하다. 그만큼 그는 전통방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장인이다. 불과 20평 남짓한 공간에서 1200∼1300℃의 용광로 불길에 금세 땀이 흘렀다. 연기에 목이 컬컬해지면서 가마에서 나오는 그을음이 어느새 옷에 시커멓게 묻었다."(163쪽)

이른바 방짜유기에 관한 세계 최고의 장인인 김일웅에 관한 스케치다. 그는 고려시대부터 식기로 사용한 그 기술이 일제강점기 말 전쟁무기를 만들기 위해 징발되면서 끊어질 뻔했는데, 다시금 그 명맥을 잇고 있는 유일한 장인이라고 한다.

그는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의 작업실에서 온갖 구슬땀을 흘리며 혼신을 기울인다고 한다. 특별히 78:22이라는 구리와 주석의 비율을 정확하게 맞혀가며, 둘째 아들과 함께 그 뜨거운 열기 속에 혼을 불태우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금속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는 '조각장 김철주' 장인을 비롯해, 숭례문을 다시금 빚어낸 '대목장 신응수' 장인, 자연염색과 함께 40년 인생을 살아 온 '염색장 김지희' 장인, 30여 년 인생을 나무에 새긴 '서각장 이규남' 장인 등 44명의 장인들을 만날 수 있다.

모름지기 전통문화는 우리의 혼이자 역사요 또한 미래다. 지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인 이때에 우리의 전통을 지키고 계승하는 것은 정말로 소중한 자산이다. 그걸 입으로 떠벌리지 않고 실제 외길 인생으로 뚜벅뚜벅 걷고 있는 이들이 있어서 더욱 보배다.

비록 그들을 따라 장인의 길을 걷진 않더라도, 오늘날 제 분야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이 책에 나온 장인들의 외길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뭔가 지혜의 원천을 건져 올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 각자가 불태우고 있는 그 혼들을 통해서 말이다.


장인 44 - 문화캐스터 서주희가 만난 장인 44명의 이야기

서주희 지음, 한국방송출판(2013)


#서주희의 〈장인44〉# 名不虛傳(명불허전) #대목장 신응수#염색장 김지희#서각장 이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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