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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국립대구박물관(관장 함순섭)에서 용인 영덕동의 조선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복식류 50여 점과 18점의 명기(明器)를 전시하는 특별전 '조선 반가의 여인, 용인에 잠들다' 개막식이 열렸다.

이번에 전시되는 복식류는 후손이 확인되지 않은 무연고 여성의 무덤으로 2005년에 발굴, 난사전통복식문화재연구소(소장 박성실)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의해 보존 처리된 후 국립대구박물관으로 옮겨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16세기 여인의 멋과 겸손 당시 여인의 멋과 유행을 엿볼 수 있는 복식류의 모습.
▲ 16세기 여인의 멋과 겸손 당시 여인의 멋과 유행을 엿볼 수 있는 복식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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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측은 전시된 무덤의 주인공은 키가 155cm 정도의 여성으로 추정하고 있고, 그 신원을 추정할 수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출토된 복식류와 부장품은 묘주의 신분과 활동시기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조선시대의 직금제직 기술을 비롯한 염습의 규칙과 복식의 형태, 특성들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는 점과 금사를 이용해 호랑이 흉배를 만든 단령을 비롯한 의례용 복식을 통해 그 당시의 복식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번에 발견된 여인의 단령(둥근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주로 관복의 겉옷으로 쓰임) 흉배를 통해 당대 그 남편의 관직이나 지위를 가름할 수는 없으나 호랑이 흉배는 관료와 왕 및 왕족의 신분을 나타내주는 중요 신분 표장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물관 측은 이번 여린의 단령에 호랑이 금사는 남편의 관직에 따라 부인의 지위도 결정된다는 점에서 당시 주요 관직의 지닌 남편의 여인이라는 점도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사 흉배의 모습 용인 반가의 여인의 남편의 관직을 알 수 없으나 높은 관직의 부인이었음을 추정케 하는 금사의 호랑이 흉배.
▲ 금사 흉배의 모습 용인 반가의 여인의 남편의 관직을 알 수 없으나 높은 관직의 부인이었음을 추정케 하는 금사의 호랑이 흉배.
ⓒ 김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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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무덤에서 출토된 명기류를 통해 당시 그 당시의 공예품의 기술과 회화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엿볼 수 있는데 보통 명기가 출토되면 인형과 말, 항아리가 출토되는 것이 다반사인데 이번 출토된 곳에서는 항아리와 찻잔같은 것만 출토된 것이 이색적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명기라는 것은 죽은 자와 함께 무덤에 넣은 것으로 조선시대 전기에 상장례 의식이 정착되면서 시행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사의 그릇, 사발, 접시, 탁잔, 대야 등이 조선시대의 명기 특징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금사를 한 여인내의 호랑이 흉배와 그 흉배를 금사로 처리한 당시의 직물 제직 기술의 위대함과 직물의 발전사를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학습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용인 반가의 여인 무덤에서 출토된 명기류 보통 말과 장난감같은 명기류가 함께 출토되는 것이 많으나 이번 용인 반가의 여인 무덤에서는 찻잔과 항아리같은 것이 발견된 것이 다른 명기류와 달랐다고 한다.
▲ 용인 반가의 여인 무덤에서 출토된 명기류 보통 말과 장난감같은 명기류가 함께 출토되는 것이 많으나 이번 용인 반가의 여인 무덤에서는 찻잔과 항아리같은 것이 발견된 것이 다른 명기류와 달랐다고 한다.
ⓒ 김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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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의 경우는 직물에 금으로 무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직물에 금을 붙이는 것과 직접 옷감에 짜넣는 방법(연금사)으로 나눠지고 있다고 한다. 용인에서 출토된 여인의 흉배는 직접 옷감에 짜넣는 방법을 택한 연금사라는 점에서도 조선시대의 연금사 기술력 규명에도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9월 29일까지 국립대구박물관 기획전시실2에서 일반 시민들에게 무료로 열린다.


#대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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