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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 그가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문을 걸어잠근 채 경찰의 인터넷 불법선거운동 수사 협조 요청을 거부한 것이 '국정원 게이트'의 시작이었다.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 그가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문을 걸어잠근 채 경찰의 인터넷 불법선거운동 수사 협조 요청을 거부한 것이 '국정원 게이트'의 시작이었다.
ⓒ 오마이뉴스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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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정전>을 지은 중국 대문호 루쉰은 말했다.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라."

1925년 베이징 여자사범대학의 분규 때 교육총장은 도망갔고 교장이 바뀌었다. 이때 지식인 린위탕(林語堂)은 "물에 빠진 개는 때리지 않는 것이 페어플레이"라면서 용서를 주장했다. 루쉰은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라는 글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그런 무리들은 먼저 물속에 빠뜨리고 때려야 한다. 스스로 물에 빠졌어도 뒤쫓아가 두들겨 패도 된다. 그들은 권세에 아첨하지만 늑대에 가까울 만큼 야성을 지녔다. (중략) 일부 공리론자들은 '보복하지 말라', '자비로워라', '악으로써 악에 대항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 때문에 악인은 구제된다. 그러나 구제된 뒤에도 감쪽같이 속였다고 생각할 뿐 회개하지 않는다. 토끼처럼 굴을 파놓고 아첨도 잘하기에 얼마 안 가서 세력을 되찾아 나쁜 짓을 시작한다."

100년 전 루쉰의 우려가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늪에 빠져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모자랄 판에 헌정을 유린한 국정원이 거리로 뛰어나왔다.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은 날카로운 이빨로 사자의 관 뚜껑을 부수고 사지를 물어뜯고 있다. 이들은 합심해서 대선 3일 전 밤 11시에 '댓글사건 무혐의'를 발표했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사기행각을 덮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소위 개혁세력조차도 물에 빠진 개들의 화려한 외출에 끌려다니며 넋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한 지인이 말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선거 결과를 바꿀 위력은 없었다." "광화문 촛불은 광우병 촛불처럼 타오르지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의 바람과 빼닮았다. 린위탕이 주장했던 용서론의 변종이다.

그런데 만약 김 전 청장이 지난해 12월 16일 밤 11시에 댓글 사건의 진실을 말했다면? 오늘 국회에서 또다시 공개된 경찰청 폐쇄회로 CCTV 속 분석관 말처럼 '국정원이 큰 일 날 노다지'가 선거 전에 공개됐다면? 당일 한 시간 전에 TV 생중계 토론에서 '불법 댓글녀의 인권수호 천사'로 떠올랐던 박근혜 후보의 신뢰도는 추락했을 것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뭉갤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문재인 후보의 득표율 격차는 3.6%포인트, 득표수로 따지면 108만 표다. 김 전 청장이 그 당시 사실을 발표했어도 결과는 같을 것이라는 주장도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뒤늦게나마 드러난 사실의 조각. 아직도 광화문을 물들이는 촛불은 그 조각에서 진실을 찾는 몸부림이자 추락하는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우려는 날갯짓이다.

루쉰 시대에 신해혁명은 실패했다. 물에 빠졌다 살아남은 개들은 왕정복고를 시도했고, 그때 많은 개혁인사들이 죽었다. 중국의 실패한 역사가 대한민국에서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 백주 대낮에 날뛰는 못된 개들을 다시 물속에 집어넣고 두들겨 패야 한다. 그게 정의이자 상식이고 페어플레이다.


태그:#루쉰, #아큐정전, #국정원,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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