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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왠지 모르게 표지부터 낯익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이 드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기억해내는 사람도 있으리라. 맞다. 지난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보수언론에서 김용민 (당시) 후보를 1면에 싣고 "한국 정치가 창피하다"고 비판했던 그 장면과 흡사하다.

선거를 며칠 앞두고 수도권 곳곳에 무가지 배포된 <조선일보>의 1면에는 김용민의 사진과 함께, 그가 '기독교 모독발언'을 했다는 요지의 글이 담겨있었다. 정치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로 방송된 성경 패러디와 다른 활동을 통해 '개신교 기득권 세력'을 비판했던 발언을 '종교에 대한 비난'으로 포장했던 것이다.

탈당한 김용민은 자신의 주특기인 패러디로 이에 대해 맞받아쳤다. 지난 7월 발간된 <한국 종교가 창피하다>는 당시 <조선일보> 1면의 형식을 빌려왔으며, 내용에 있어서는 부패한 종교인의 불편한 뒷모습을 더욱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느 교회 목사를 통해 들여다 본 '막장드라마'

김용민의 책 <한국 종교가 창피하다> 표지.
 김용민의 책 <한국 종교가 창피하다> 표지.
ⓒ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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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종교가 창피하다>는 총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의 내용은 <나비효과>의 대본을 토대로 다시 써낸 것인데, 제목 그대로 '막장같은 현실, 현실같은 막장'을 보여주고 있다.

김용민이 방송을 담당한 프로듀서로서 <국민TV>에서 방영된 것을 소설로 옮긴 형식이며, 주인공인 두 인물 '한국 최대규모 교회의 존경받는 목사인 육봉기'와 그의 아들 '육재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교회의 유명한 목사 육봉기. '아시아의 영적 지도자'로 불릴만큼 높은 존경을 받는 그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린다. 한번의 헌금 모금으로 수십 억을 모으기도 하고, 어딜 가나 사람들의 환영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가면에 불과했다. 육봉기 목사는 목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이용하여 욕구를 채우기 바빴던 것이다. 그는 미모가 빼어난 여신도를 "둘이서 기도하자"며 불러내어 모텔로 유인해 관계를 갖는다. 그로 인해 온갖 소송을 당하지만 교회 내의 인맥, 법조인과 조폭들을 이용해 사건을 덮어버린다. 이런 막장드라마같은 이야기가 그의 아들 육재준의 시점으로 흘러나온다.

'부전자전'이라고 했던가. 아들 육재준도 아버지가 마음껏 재산과 권력을 이용하여 색을 탐하는 것을 보고 자랐기에, 아버지의 돈으로 방송사를 설립하여 사장으로 앉은 다음 많은 여자들을 건드리면서 욕망을 채운다. 그러면서 피해자로부터 고소당하며 그들의 행각이 사회적으로 파장을 낳고, 결과적으로 타락한 교회와 부패한 언론의 커넥션이 모두 드러나게 된다. 마치 드라마의 이름 <나비효과>처럼, 모든 일은 그들의 뜻과는 다르게 흘러가면서 말이다.

근대화 시기의 개신교, 박정희 체제의 밑거름?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에, 당시 교회는 민족 복음화에 전력을 기울일 때였지. 성과의 요체는 팽창이었어. 개인보다는 조직(국가)이었기에 획일성, 독재성은 용인됐고. 거기에 정서도 통했지. 반공주의라는. 그래도 이 나라의 개신교는 선교사를 통해 유입되고 정착된 거 아니겠어. 당연히 청교도주의(Puritanism)가 강했다고. 배타주의 등 논란을 야기한 부분도 많았지만, 청빈, 검소, 이웃 배려 같은 가치는 좋았다고.

하지만 박정희 시대 '압축성장'의 기치가 모든 것에 우위를 점하던 시기에는 무시되고 말았어. 이러다보니 탈정치화를 넘어 거짓 정치와의 결탁을 초래하게 되지. 보라고. 5?16 군사 쿠데타도, 베트남전 참전도, 3선 개헌도, 유신 독재도, 긴급조치도 문제없다며 군사정권에 힘을 실어준 당시 교회 지도자들, 어땠냐고. 자기들은 이야기해. '정교분리'를 했다고. 이게 정교분리일까. 탈정치화라고 봐야 하겠지." (본문 204P 중에서)

<한국 종교가 창피하다>의 2장은 '현대사와 개신교회사 간의 역학관계 리포트'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성장제일주의'를 외치던 박정희 시절 근대화가 교회의 급격한 팽창과 맞물려있다고 지적한다. 북한을 악으로 규정하던 '반공주의'는 전쟁 후 불안이 내재되어 있던 국민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었고, 이는 '악에 맞서 싸우는' 이미지를 내세우는 개신교의 사상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박정희 체제 하에서 진행된 한국적 근대화의 최대 수혜자이자 동시에 협력자는 교회였다"며 "한국교회의 '성공'과 박정희 체제의 '성공'은 매우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었는데, 예컨대 '조국근대화'는 '민족복음화'와 등식을 이뤘고, '잘살아보세'는 '삼박자 축복'과 등식을 이뤘다"는 최형묵 목사의 말을 인용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종교가 약자를 배려하기보다 '성장'만을 외치는 독재정권의 행각에 침묵하고, 되레 동조하며 몸집을 키워왔다는 이야기. 저자 김용민은 "탈정치화된 교회. 성장 이념에 충실한 교회. 그러면서 반공주의의 온상이 되는 교회. 박정희에게는 최고의 우군이었"다고 말한다.

목사 아들 김용민의 고발, "한국 종교가 창피하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면, 저자 김용민이 목사의 아들이자 종교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조선일보>의 기사와는 달리, 그는 종교 전체를 모독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개신교의 절대권력이 저지른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종교'를 떠올리면서 흐뭇하게 미소지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창피하다'고 떠올리는 사람이 아마 더 많지는 않을까. 언젠가부터 우리는 뉴스에서 종교계의 훈훈한 소식보다도 '부패한 종교인이 연루된 사건사고' 기사를 더 자주 접하게 되었다.

지하철과 광장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무작정 믿음을 요구하기 전에, 종교가 스스로 반성하고 고쳐야 하지 않을까. 종교의 잘못된 부분을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스스로 마주볼 수 있다면, 그때는 '믿어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먼저 종교를 우러러 볼 것이다.

책의 머릿말 '한국 종교를 더 이상 창피해하고 싶지만은 않다'에서 김용민이 쓴 글처럼, 종교인이 종교를 비즈니스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 본연의 자세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낮은 곳에서 더 약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더 많은 곳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된다면, 김용민을 포함한 누구도 한국 종교를 창피해하지 않아도 될테니까 말이다.

"다만 하나님의 자리에 오른 목사를 인간 본래 자리에 앉히고 싶은 마음뿐이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는 설교하는 죄인이다. 이 정체성을 겸허히 인정하는 순간, 개신교의 부패와 비리는 최소화될 수 있다고 본다." (본문 9P 중에서)

덧붙이는 글 | <한국 종교가 창피하다> (김용민 씀 | 휴먼큐브 | 2013.07. | 1만4000원)



한국 종교가 창피하다

김용민 지음, 휴먼큐브(2013)


태그:#한국 종교가 창피하다, #김용민, #나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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