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해발 127.9m의 수월산에 세워진 등대로서 1905년 4월 10일 준공되었다.등탑은 높이가 6.4m에 이르며 흰색의 원통형으로 벽돌과 콘크리트의 혼합 구조물이다. 15초 간격으로 불빛을 밝혀 약 42km 거리에서도 볼 수 있게 설치되었다.
 해발 127.9m의 수월산에 세워진 등대로서 1905년 4월 10일 준공되었다.등탑은 높이가 6.4m에 이르며 흰색의 원통형으로 벽돌과 콘크리트의 혼합 구조물이다. 15초 간격으로 불빛을 밝혀 약 42km 거리에서도 볼 수 있게 설치되었다.
ⓒ 이경모

관련사진보기


매우 심한 더위를 폭서(暴暑) 또는 폭염(暴炎)이라고 한다. 요즘처럼 여름철 장마가 끝난 후 몹시 습하고 심한 무더위를 찜통 속의 열기에 비유하여 '찜통더위'라고 하기도 한다. 이런 말로도 올여름 더위를 다 표현할 수 없는지, 폭염 앞에 살인을 붙여 '살인폭염'이라고도 한다. 전국에서 더위로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자주 쓰는 단어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족은 지난달 22일 가족여행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더위가 한꺼번에 사라진다. 6개월여 기간 외항선을 타고 내린 딸의 휴가에 맞춰 우리가족은 거문도 백도로 1박 2일 여행을 갔다. 여수에서 1박을 하고 거문도행 첫 배를 탔다.

2시간 30분 만에 거문도에 도착했다. 백도는 유람선을 타고 관광해야 한다. 오전에 첫 유람선은 풍랑이 심해 운행을 못했다며 밀물이 들어오기 전, 오후 2시쯤에 유람선이 출발할 수 있다고 했다. 예매를 하고 점심을 먹었다. 시간이 남아 콜택시를 불러 거문도 등대를 서둘러 다녀왔다.

우리가족이 탄 배 정원은 117명이며 38톤급 배였다. 파도가 높아 유람선은 출발 예정시간보다 30분 늦게 출발했다. 거문도항에서 백도를 향해 30여분을 나아갔지만, 파도는 잦아들지 않았다.

결국 스피커를 통해 "더 이상 백도를 갈 수 없어 백도 관광을 취소하고 거문도로 돌아갑니다"라는 안내방송을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몇 명 관광객은 계속 백도를 가잔다. 배가 파도 끝으로 올라섰다가 바다 속으로 파고들어 갈 것 같아서 겁이 났다.

우리가족 중에도 여수에서 거문도 오면서 배 멀미를 심하게 해, 백도 관광은 나와 아들 딸 세 명만 갔다.

 백도 길을 막은 파도
 백도 길을 막은 파도
ⓒ 이경모

관련사진보기


뱃머리를 돌리는 대도 파도 때문에 배를 운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1층 선실에 탄 관광객은 의자 밑에서 구명조끼를 내서 입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관광객들 일부는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아들과 딸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딸은 손짓을 하며 나를 선실로 들어오라고 한다. 배 위 2층에는 부산에서 온 산악회 회원 30여 명이 있었다. 딸이 급기야 일어서서서 다시 손짓을 한다.

"아빠, 만약에 배가 잘못되면 배 위 쪽에 있는 사람들이 바다로 먼저 떨어져요. 우리하고 같이 있어요."

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구명용품들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 두고, 선실 밖 중간 계단에 있었다.

"기관에 문제가 있어요. 속도를 낼 수가 없습니다."

배 뒤쪽에서 스크루를 보며 기관사와 선장이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기관 고장이란다. 숨이 콱 막혔다. 뉴스로만 들었던 선박사고를 내가 당하게 생겼다는 말에 내 심장 박동은 빨라졌다. 그러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사실을 승객에게 알리라고 말할까 아니면 그냥 지켜볼까를 생각한 것이다. 결론은 지켜보기로 했다. 기관사가 실내에 있는 기관실을 오르내리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승객 대부분은 몰랐다. 파도 때문에 서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듯 했다. 유람선은 아주 느린 속도로 섬 근처로 다가갔다. 파도는 더 넘실댔다.

아들과 딸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20여분 동안 몹쓸 생각을 할 즈음 배가 조금 속도를 내더니 파도가 조금 잔잔한 섬 쪽에서는 다시 제 속도를 냈다.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 기관사에게 물었다.

"어디가 고장 났어요?"
"파도가 높아 엔진에 냉각수가 제대로 공급이 안 되서 속도를 낼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기관사가 실내 기관실로 내려가고 있다.
 기관사가 실내 기관실로 내려가고 있다.
ⓒ 이경모

관련사진보기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냥 지켜봤던 것도 참 잘했다. 내가 엔진고장 얘기를 했다면 배 안은 큰 혼란이 있었을 게다.

"3항사님, 얼굴이 새파래졌습디다. 겁나던 가요?"
"네, 아빠. 장난감(?) 배에서 잘 못 된지 알았습니다."

배 길이 199.97m, 너비 32.26m, 높이 49.1m, 총 톤수 57,542 GT 배 항해사가 겁먹은 표정, 배에서 내려서야 우습게 보였다. 거문도 백도. 우리가족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여행. 그 여행을 떠올리면 '살인폭염'도 잠시 잊게 해주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여행이었다.

아무리 더위 끝이 살아있어 기승을 부려도 아파트 창가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귀뚜라미 노래를 들으며 더위는 점점 무뎌질 것이다. 우리가족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은 백도. 당장은 아니지만 겁났던 기억이 추억의 자리로 옮길 즈음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월간 첨단정보라인 9월호에 싣습니다.



#이경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광주 첨단지구에서 첨단정보라인을 발행하는 발행인입니다. 첨단정보라인은 월간지(광주 라88)로 정보화 시대에 신속하고 알찬 보도논평, 여론 및 정보 등 주민생활의 편익을 제공하며 첨단지역 상가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만큼 생생한 소식을 전할 수는 없지만 이 지역의 관심 현안을 취재하고 대안을 제시해 주민들과 늘 함께 하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