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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해도 너무해"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골목 상권 진출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새롭게 형성된 신도시에는 어김없이 대형마트가 도심 상권을 꿰차고 있다.

최근엔 대형마트와 SSM 갖고선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는지, 대형유통재벌들은 골목상권의 마지막 먹거리까지 싹쓸이할 심상으로 24시간 편의점형 슈퍼마켓에다, 상품공급이란 듣도 보도 못한 점포까지 전면에 내세웠다.

상품공급점은 기존 슈퍼마켓에 대형유통재벌의 유통공급망을 접목한 형태로, 유통공룡 3사(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는 "주인이 따로 있다"라고 우기지만, "기존 SSM과 다를 게 없다"라는 것이 관련 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라는 동네 슈퍼마켓 주인들의 하소연이 끈이질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중기청, 물류개선 의지 천명

하지만 대기업들의 골목상권 장악 쓰나미에도 비상이 걸렸다. 바로 지난 2010년 첫 걸음마를 뗀 정부의 '스마트샵 나들가게 육성지원사업' 때문이다. 간판과 포스교체를 비롯해 점주의 마인드까지 혁신적으로 바꿔놓은 나들가게는 2012년 말까지 전국적으로 만개나 만들어졌다. 또 최근에는 중소기업청이 "나들가게의 가격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물류시스템을 확보해나가겠다"라고 밝힌 상황이어서, 나들가게의 물류 인프라 구축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비록, 사업시작 초창기에만 해도 "물류는 개선하지 않고 간판, 포스만 교체하면 무엇하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중기청이 늦게나마 나들가게의 물류개선 의지를 피력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실제로 지난 7월 2일 한국중소기업학회 주최로 열린 '2013 중소기업학회 중소유통연구회 포럼'에서, 중소기업청 소상공인지원과 홍진동 과장은 '골목슈퍼 창조역량 제고방안'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향후 나들가게가 지향해야 될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날 홍 과장은 "중소물류센터와 나들가게를 연계한 온라인 주문 시스템(나들장터) 구축뿐 아니라 공동구매, 수발주서비스 등 공동 인프라 구축확대 등과 같은 물류혁신사업을 올 하반기부터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올 한해가 나들가게사업의 '성공·실패'를 판가름 짓는 분수령이 될 전망인 가운데 나들가게로 제2의 삶을 개척하고 있는 두 점주를 만나보았다. 두 점포의 거리는 불과 700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지역 경제의 모세혈관으로서 골목상권을 사이좋게 지켜내고 있다.

"대형마트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대구 달서구 오마트 곽춘섭 대표

 나들가게 점주의 마인드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오마트 곽춘섭(왼쪽 끝) 대표
나들가게 점주의 마인드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오마트 곽춘섭(왼쪽 끝) 대표 ⓒ 김영욱
나들가게 변신 후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가란 질문에 오마트 곽춘섭 대표는 일매출의 대폭 상승이라고 잘라 말한다. 물론 매출의 변화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제품 진열부터, 서비스, 청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곳 새 옷으로 탈바꿈 하지 않은 곳이 없다"라며 곽 대표는 연신 가게를 자랑했다.

곽 대표는 또 "지금은 나들가게에 대한 고객의 인지도가 예전에 비해 몰라볼 정도로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골목상권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며 "지난해 말에 나들가게사업이 끝난 것으로 들었는데, 향후 이 사업이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매장 면적 99㎡(약 30평)의 오마트는 나들가게를 준비 중인 예비 점주들에게 모범 답안으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나들가게 예비 점주들은 거의 매일 이곳을 방문, 손님에 대한 서비스부터 제품 진열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면 대형마트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고 한다. 인근 지역을 포함해 심지어 마산, 창원 지역의 나들가게 예비 점주까지 오마트를 찾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특히 곽 대표는 "대다수 슈퍼마켓 주인들은 물건을 값싸게 구매해, 보다 싸게 팔겠다는 생각만 했지 실내 청결도, 손님응대 등 가격 이외의 것들에 대해선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나는 가격보다 청결, 친절 등 손님을 위한 서비스 개선에 많은 관심을 쏟았으며, 이마트나 홈플러스 축소판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가게를 운영했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친절과 청결이 최대 목표인 곽 대표에게 가격은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비싸다는 손님의 핀잔에도 대형마트보다 저렴한 제품이 더 많다고 웃어넘긴다. 실제로 곽 대표가 매일 아침 시장에서 직접 구매하는 채소나 과일은 오히려 대형마트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친절과 청결에 대한 점주의 관심이 크게 변한다면 고객들 역시 멀리 가지 않을 것이라는 곽 대표는 "나들가게도 중요하지만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불만을 해소하겠다는 마음가짐도 꼭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물류시스템이 마련될 경우, 나들가게의 가격경쟁력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구 달서구 탑마트... 나들가게가 준 최고의 선물 '웃음'

 

잠시 짬을 내 남편과 자리를 함께 한 탑마트 황우남(오른쪽) 대표. 그는 나들가게를 통해 웃음을 되찾았다고 한다.
잠시 짬을 내 남편과 자리를 함께 한 탑마트 황우남(오른쪽) 대표. 그는 나들가게를 통해 웃음을 되찾았다고 한다. ⓒ 김영욱
"한 개 천원입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드셔보셨어요. 진짜 맛있어요. 또 오세요."

대구 계명대학 성서캠퍼스 인근에 위치한 탑마트는 주인과 손님의 대화로 항상 활기가 넘친다. 특히 안주인 황우남씨 얼굴엔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황씨는 백원짜리 동전을 들고 아장아장 가게로 들어온 어린이나, 지팡이에 의지한 채 가게문턱을 힘들게 넘어온 할머니까지 손님이 아닌 대화상대로 만들어버리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 때문일까.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손님과 주인이 아닌 오랫동안 알고지낸 벗 이상의 친구로 변한다. 카운터의 이러한 상황을 누가 보더라도 '혹시 손녀에요, 친어머니에요'라는 물음을 던질 정도다.

이처럼 탑마트는 내 집과 같은 편안함에다, 안주인의 푸근한 목소리를 항상 접할 수 있는 동네 사랑방으로서 12여 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왔던 것. 최근엔 그 사랑방이 더더욱 시끌벅적하게 변하고 있다. 바로 나들가게 때문이다.

특히 탑마트는 하루 평균 매출이 500만 원을 넘는다고 한다. 기자가 찾은 날도 손님이 뜸한 오후 2시임에도 불구하고 카운터에는 계산을 기다리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황씨는 계산을 위해 길게 늘어선 고객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손님 한 사람 한 사람과 입씨름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 당연히 대기 시간이 늘어나지만 누구 하나 투정을 부리는 사람도 없다. 손님 역시 안주인의 성격을 아는 듯 황씨의 입씨름에 맞장구를 치며 함께 즐거워한다.

이처럼 탑마트는 나들가게로 재개점한 이후 매출이 배로 늘었지만, 황 씨는 매출만 변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황씨는 "조금씩 사라져갔던 웃음을 나들가게를 통해 다시 찾을 수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중기청의 이번 물류시스템 구축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경우, 가격경쟁력 취약으로 어려움을 겪는 대다수 나들가게 점주들에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소상공인신문 29호에 게재될 기사입니다



#나들가게#중소기업청#중소유통물류센터#유통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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