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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표지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표지 ⓒ 돌베게 출판사
지난 7월 중순 홍익대 건축과 교수로 있는 한이와 함께 홍대 주변의 '서교365거리' '붉은 벽돌 건축물' 답사를 다녔다. 통상적으로 서울의 붉은 벽돌은 대학로를 중심으로 건축가 고 김수근 선생이 지은 작품들이 원조라고 생각을 했는데, 한이는 "비슷한 시기에 홍익대 주변의 주택들이 붉은 벽돌 건축의 시초인 것 같다"라고 했다.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홍대 주변을 둘러보는 재미는 상당했다. 흘러간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홍대 앞 벽돌거리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옛 철길 위의 도시인 서교365거리를 거닐면서 기찻길 위에 쌓인 기억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오전에 만나 길을 두어 시간 걷고 식사와 차를 한잔하면서, 요즘 새로 쓰는 책에 대한 이야기도 한참을 한 것 같다. 지난 2~3년간 서울을 걸으면서 자신이 답사한 건축물에 관한 견해를 담은 책인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돌베개) 조만간 출간된다는 것과 출간하면 책을 보면서 다시 함께 서울을 걷자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는 8월에 책이 나왔다. 난 책을 사서 한이가 돌았던 곳을 주말마다 돌고 있다. 내가 늘 다니던 곳도 여러 곳 있었지만, 선대(先代)에 대한 예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환구단이나,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시간의 콜라주인 선유도공원, 시간 여행을 떠나는 출입구인 어린이대공원 꿈마루는 오랫동안 가지 못해서 조만간 둘러 볼 생각이다.    

20대에 내가 알던 한이는 꿈이 많은 자유주의 건축가였는데, 유학을 갔다 와서 다시 만난 40대의 한이는 합리적 보수에 생태주의 건축가로 바뀌어 있는 듯했다. 철학과 교수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박식한 사고와 세계관은 철학을 전공한 나도 기가 눌리는 것을 느끼게 한다.

지지난 주말에는 그의 책을 따서 한국 최초의 아파트로 일본기업이 기숙사로 지은 충정아파트를 속속들이 살펴보았고, 지난 주말에는 세운상가와 낙원상가를 돌아보았다. 특히 두 상가아파트의 중앙정원은 장관이었다. 가설 지붕만 철거한다면 지금 어디에 내놓아도 감탄의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김수근의 흔적을 찾아서 공간사옥과 남영동 대공분실을 돌아볼 생각이다. 10월 중순에는 다시 한이와 함께 신사동 가로수길을 걷기로 했다. 역시 건축가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어딘가 다른 느낌이 든다. 역사나 문화적인 시선과는 분명하게 차이가 나는 시공간적인 미학이 숨어 있다.

그래서인지 건축가 조성룡 선생이 쓴 발문을 읽어보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학습된 이론과 미학을 내려놓고' 끊임없이 장소의 역사를 생각해내고 탐정처럼 진지하게 장소를 들여다보며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일상을 온몸으로 읽는다. 이 책은 그 과정의 기록이다."라며 조 교수의 답사와 시공간을 이해나는 능력을 칭찬하고 있다.

나 또한 한이의 책을 온몸으로 읽으면서 그가 걸었던 길을 다시 나 혼자 혹은 그와 함께 걸어 본다. 나 혼자 걸으면서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던 것을 그와 함께 혹은 그의 책을 읽으면서 걸어보니 더 많은 것이 보인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서울은 깊다>를 저술한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의 말에 동감한다. "이 책은 다양한 역사적 층위를 지닌 서울의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그 장소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선의 주권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서울은 다이나믹한 도시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무미건조한 회색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건축가 조한은 서울이 어떤 변화와 역동성의 결과물로 지금 우리 앞에 서 있는지에 대한 개별적이고 표피적인 정보와 개인의 감상을 나열하는 일이 새삼스러울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서울을 다시 보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은 단순하게 서울 여행기나, 감상기도, 도시 산책기가 아니다. 많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이 도시는 그에게는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어린 시절과 청춘의 시절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기억의 저장소이기에 삶의 기억과 시공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의 책에 감동과 살아있는 느낌이 넘치는 이유는 '건축은 왜 음악이나 영화처럼 쉽게 감동을 느낄 수 없는 걸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는 그가 쓴 서문처럼 별로 재미와 감동이 없을 것 같은 도시 건축이야기에 철학적인 감동과 기쁨을 불어넣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한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자라고 살면서 서울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지켜보았고, 지금 눈에 보이는 공간의 과거 모습을 선연히 기억하고 있다. 때문에 그가 주목하는 공간은 크고, 화려하고,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아닌, 지금의 공간이로되 옛 시간의 흔적, 그 공간이 품고 있는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곳들이다.

더불어 기억 속에는 있으나 눈앞에서는 사라진 그런 공간의 흔적과 자취 역시 주목의 대상이다. 그는 그 공간을 마주 보고, 자신이 기억하는 그리고 잊지 않기를 바라는 공간의 옛 이야기를 현재라는 시간 위에 서서 차근차근 말하고 있다.

특히 그가 홍대 다음으로 좋아하는 서촌의 경우에는 서울 한복판에서 찾은 나만의 소쇄원으로 표현한 송석원과 벽수산장, 그가 사랑하는 시인 이상의 집을 통하여, 이상의 집터에 남아있는 현재의 집을 두고 '지금 이곳, 그도 원했던 공간이 아닐까? 라는 의문도 가져본다. 그리고 건축가 이소진이 설계한 서촌 북쪽의 시간을 넘나드는 감각의 집인 윤동주 문학관까지 서촌을 두루 정감 나게 돌고 있다.

그리고 평소 남들이 주목하지 못하는 층층이 다른 시간이 흐르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은 너무 재미가 있다. 꼭대기에 오는 사람도 없는데 거금을 투자하여 만든 옥상정원이며, 성당과 갈비 집에 관한 것과 5층에서 버스를 타던 기억도 새롭다. 

또한 '어린이대공원 꿈마루'에 쌓인 몇 겹의 시간을 따로따로 불러낸 뒤 그것이 하나로 합쳐진 오늘날의 모습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다시 쌓아갈 것을 주문하는 모습은 건물과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의 방식을 제시해주는 듯도 하다.

마지막으로 브릭 피트(Brick Pit)라는 곳에 올림픽 테니스장을 지으려다 개구리 300마리를 발견한 뒤 테니스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취소하고 개구리만을 위한 공원을 조성한 시드니와,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지으려다 맹꽁이들을 발견한 뒤 공사를 강행하려 맹꽁이들을 월드컵공원으로 옮겨놓은 서울시의 차이에 아쉬워하는 그의 모습에서 '집하나 짓는 것 보다 나무 하나를 더 심은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태건축가의 고민도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이외에도 이 책에서는 인사동보다 더 인사동 같은 쌈지길, 쌓인 시간의 켜를 지켜주고 싶은 신사동 가로수길, 어쩌면 이곳은 언제나 사랑의 길인 정동 길, 우리에게 없는 그 무엇을 소망하는 노들 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울시 청사, 닫힌 광장에 서서 열린 광장을 꿈꾸게 하는 광화문광장 등의 이야기도 건축적인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홍익대 건축과 출신으로 모교에서 건축학과 부교수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 조한은 지난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2013년 지금까지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국에서 잠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귀국하여 도봉구 미아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초등4학년 무렵에 강남으로 이사를 가서 압구정동에서 10대 시절을 보냈다. 젊은 예술의 메카 홍대 앞에서는 20대를 보냈다. 10~20대까지 낙원상가, 세운상가, 고속버스터미널 등 서울 구석구석이 그의 놀이터였다. 서울은 그에게 삶의 공간이자 놀이의 공간이고 학습의 공간이었다. 20대 후반 더 큰 꿈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는 예일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건축 공부를 하고, 실무 경험도 쌓았다. 한국에 돌아와 대학교수로 활동하면서 한디자인(HAHN Design) 및 '생성/생태'건축철학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건축, 철학, 영화, 종교에 관한 다양한 작품과 글을 통해 건축과 여러 분야의 접목을 꾀하고 있다. 2009년 젊은 건축가상, 2010년 서울특별시 건축상을 수상한 그의 대표작품으로는 M+, P-house, LUMA, White Chapel 등이 있다.

그가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미국에서 귀국해 보니 정말 서울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릴 때부터 살았던 이 도시가 낯설게도 느껴졌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까. 크고, 화려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서울이 아닌, 그만의 공간을 찾아다닌 것은. 새롭게 짓고 만들어내는 것이 일상다반사가 된 서울에서 그의 마음을 움직인 곳은 오래된 곳이거나 새로 지은 듯하나 그 속에 시간을 품은 곳들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그는 서울, 그 중에서도 지난 시절의 기억을 품고 있는 듯한 공간을 찾아, 그 안에서 남이 보지 못하는 그만의 시선으로 서울의 깊은 곳을 어루만지듯 만나고 다녔다. 그래서 드디어 지난 8월 한 권의 책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이 세상에 나왔다.

덧붙이는 글 |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조한 지음, 돌베개 펴냄, 2013년 8월, 360쪽, 1만6000원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 건축가 조한의 서울 탐구

조한 지음, 돌베개(2013)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홍익대 건축학과 #조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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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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