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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규 인간문화재 지난 28일 오후 안동 하회마을 마당극장 옆에서 임형규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장과 인터뷰를 했다.
▲ 임형규 인간문화재 지난 28일 오후 안동 하회마을 마당극장 옆에서 임형규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장과 인터뷰를 했다.
ⓒ 김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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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부분 탈춤은 인간을 즐겁게 하는 탈춤이다. 하지만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마을을 지켜준 수호신인 성황신을 위해 탈춤을 췄다."

지난 9월 27일부터 경북 안동에서 열리고 있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발 2013' 행사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 임형규 회장이 강조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별신굿탈놀이로 유일하게 인간문화재가 된 이는 이상호(백정) 예능보유자, 김춘택(할미마당) 전 보존회장 그리고 임형규(상쇠, 양반) 현 보존회장 등 세 사람이다.

지난 9월 28일 오후 2시에 시작한 하회마을 하회별신굿탈놀이가 3시 30분쯤 끝나, 곧바로 한국인터넷기자협회 공동취재단 일원으로 인간문화재 임형규(61)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회장을 만났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거리감 없이 굵직한 목소리로 시원스레 답을 해 눈길을 끌었다. 먼저 임 회장은 국내 타 탈춤과 별신굿탈놀이에 대해 차이점을 요약했다.

"안동탈춤축제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다른 12개 단체의 탈춤은 대부분 무역상거래, 인간을 즐겁게 하기 위해, 아니면 중국 사신이 오면 궁중에 등용해 췄고, 그것이 해체가 되자 지방에 내려가 인간을 즐겁게 하기위해 탈춤을 췄다. 한 마디로 이들 탈놀이는 인간을 즐겁게 한 탈놀이이다.

하지만 별신굿 탈놀이는 하회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인 성황신을 위해서 췄다. 성황신이 노했거나 힘을 잃었을 때 마을에 재앙이 온다. 그 재앙을 퇴치하기 위해 탈을 쓰고 탈춤을 춰 왔다. 보이지 않는 신이지만 마을중턱 성황당에 올라가 신을 받는다. 신이 살아있는 인간인 각시로 현실이 되면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양반집 가가호호를 다니면서 탈춤을 춰왔다. 지신도 밟아주고 탈춤도 추면서 마을에 재앙이 왔던 것을 물리쳤다. 안녕질서도 유지하면서 흉년이 오지 않게 풍년을 기원하면서 탈춤을 췄다."

별신굿탈놀이 별신굿탈놀이 공연 모습이다.
▲ 별신굿탈놀이 별신굿탈놀이 공연 모습이다.
ⓒ 윤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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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회장은 1928년(무진년) 일제 강점기 때 없어졌던 별신굿탈놀이를 70년대 복원한 과정들을 설명했다.

"일제식민지를 거치고 해방이 되고 60년대 동족 간에 피비린내 나는 6.25 사변이 있었고, 또 끝나자마자 먹고 살기위해 보릿고개를 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문화가 전부 짓밟아 사라졌다. 이때 외국문화가 비판 없이 무차별하게 들어 왔다. 70년대 들어와 한국에서도 '우리문화를 이렇게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한국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등의 문화운동이 전국에 확산됐다. 때 맞춰 안동에서도 1928년도에 단절됐던 할배신탈놀이를 학자들이 못한다면 우리 손으로 복원해 살려보자고 해 1973년도에 '안동하회가면극연구회'를 만들어 하회마을과 풍천면 등 일대를 체류하고 다녔다."

그는 당시 전승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던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전승자를 찾아 다녔는데 전승자를 찾지 못했다. 왜냐하면 1928년도에 단절될 당시가 일제강점기였고, 일제 강점기 때는 우리 문화정책 말살, 토지개혁, 신분제도 개혁 등을 했다. 특히 신분제도를 없앴기 때문에 탈놀이의 주역인 전승자(상민)들이 '종으로 살 필요가 없다', '떳떳하게 이 마을을 떠나 살아야 되겠다'고 하회마을에서 다 나가버렸다. 나가 버렸으니 하회마을에서 찾지 못했고, 주변에서 찾게 됐다. 바로 전승자인 이창용 옹이 풍산에서 살고 있었다. 각시 역을 맡은 사람이었다. 그를 통해 탈놀이 전모가 드러나고 춤사위, 악기, 음악, 소도구, 의상 등이 밝혀지게 됐다."

임 회장은 상민들이 즐겼던 '하회별신굿탈놀이'가 하회마을 양반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양반들이 상민들의 도움을 주면서 양반 행세를 하려면 곡간에 곡식이 가득차야 한다. 넓은 풍산들에서 소작을 하는 상민들이 양반 곡간에 곡식을 가득 채웠다. 곡간에 곡식을 채울 때 양반들이 5년마다, 10년마다 상민들이 살면서 억눌러왔던 삶을 풀어줌으로 해 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도록 돌파구를 만들어 준 것이 탈놀이다. 그러면서 마을에 있는 재앙도 물리치고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인 보이지 않는 신이 내려오면 양반, 상민이 없어지고 인간 차원으로 돌아간다. 상하가 없고 남녀노소가 없이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동안은 인간 평등차원이 된다. 보름이 돼 탈놀이가 끝나면 송신을 하게 된다. 재앙을 불리치고 신을 보내드리면 엄격한 계급사회가 다시 도래 된다."

별신굿탈놀이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 모습이다.
▲ 별신굿탈놀이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 모습이다.
ⓒ 윤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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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는 보름동안 상민들이 양반들에게 짓궂게 해 양반들 중 일부가 초청을 안 하겠다는 말도 전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상민들이 탈을 썼으니 누군지 모르니까 양반멱살도 잡고 꿇어앉히는 등 양반들을 못살게 굴기도 했다. 1923년 갑자년에 탈놀이가 있었고 그다음 1928년 무진년에 탈놀이가 있었다. 무진년 탈놀이 때 '올해 너무 짓궂게 굴면, 초청하지 않겠다'고 양반들이 상민들에게 밝힌 말도 전해지고 있다. 상민들은 억눌린 삶을 풀어야 되겠다는 면에서 양반집에 초청이 되면 '네가 사대부면 나는 팔대부다' 등으로 양반보다 더 높게 올라가는 언사를 하기도 했다."

임 회장은 "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했다"면서 "그중 양반 행세와 상쇠를 주로 했다"고 밝혔다.

"음악 역할로 상쇠역할과 양반행세를 주로 하고 있다. 20세 때 처음 시작해 40여 년간 탈춤을 춰 왔다. 70년대인 20대 때 안동의 전통문화를 우리 손으로 복원하지 못하면 영원히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복원 운동에 적극 동참했다. 뜻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가면극연구회'를 만들어 별신굿탈놀이를 살리는데 진력을 다했다. 당시 참여했던 분들이 1928년도 단절됐던 탈놀이를 살려보자는 의지가 강했다. 나도 모든 청춘을 여기에다 다 받친 셈이다."

초창기 별신굿탈놀이를 열심히 지원해준 도영심 UNWTO ST-EP재단 이사장에 대한 웃지 못할 사연도 솔솔 얘기했다.

"안동(安東)의 안(安)은 '갓머리에 계집녀'이다. 기와집에서 여자들은 가만히 들어 앉아 있으라는 뜻이다. 그렇게 유교적이고 보수적인 곳이 안동이다. 20년 전 UNWTO 스텝(ST-EP)재단 도영심 대사가 안동에 내려와 탈춤 공연을 기획했는데, 여자가 천민들과 논다며 안동 양반 가문들의 반대가 극심했었다. 안동을 위해 진정성 있게 일하려고 했는데 알아주지 않고 반대가 심했다. 그래서 그가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당시 도 대사는 이들을 향해 '천민들의 문화인 탈춤으로 인해 10년 뒤에는 안동이 먹고 살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안동은 도 이사장의 말처럼 천민문화 탈춤과 탈이 먹고 살게 해 가고 있다. 당시 도영심 대사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나 안동(安東)을 풀이하기를 왕관을 쓴 여자가 동쪽으로 오기를 천년을 기다렸다고 설득해 안동을 방문하게 됐다."

도영심 이사장 초창기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미국에 가 공연을 시킨 도영심 UNWTO ST-EP재단 현 이사장이다.
▲ 도영심 이사장 초창기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미국에 가 공연을 시킨 도영심 UNWTO ST-EP재단 현 이사장이다.
ⓒ 김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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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계속해 도영심 이사장과 관련한 얘기를 이어갔다.

"도 대사가 맨 처음 별신굿탈놀이를 관람했을 때 인상 깊게 봤다. 전 세계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분이 외국으로 공연을 내 보냈다. 탈춤에 대해 한 단계 퀄리티를 올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임 회장은 도 이사장을 가리켜 '창의적 아이디어가 뛰어난 분'이라고 극찬했다.

"도 대사는 '한국을 가면 안동에 가라. 안동에 가면 한국이 보인다.' 바로 이런엄청난 슬로건을 만든 사람이다. 그는 당시 10년 후 탈춤이 안동을 먹여 살린다고도 했다. 현재 국제탈춤페스티발, 탈춤문화제, 탈 박물관 등으로 실제 안동을 먹여 살리고 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의 아프리카 새마을운동 아이템도 당시 도영심 대사의 머리에서 나왔다. 아프리카에 도서관, 학교 등을 지어주고 너무 열심히 일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뛰어난 분이다."

첫 미국공연에서의 백악관과 미의사당을 방문한 일화도 전했다.

"도 대사가 우리를 데리고 가 첫 미국 공연을 했다. 이튿날 일면 톱기사로 공연소식을 <워싱턴포스트>지에 사진과 기사가 보도됐다. 당시 <워싱턴포스트>지는 문화기사에 인색하기로 소문이 난 신문이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 이 기사를 보고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초청을 했고,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다. 또 며칠 있다가 백악관박물관관장이 초청을 해 백악관 내부를 관람시켜줬다. 그래서 백악관 박물관장에게 탈을 선물했다. 과거 도영심 대사가 미국 의회에서 일을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를 가이드한 사람이 존 케네디 전 대통령 막내 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맡았다. 도 대사의 위치를 봐 그런 것 같다. 그다음 샘런 상원의원이 가이드를 했다. 미의사당과 백악관을 두 의원이 가이드를 했다. 미국에서의 도영심 대사의 파워를 실감했다."

임형규 인간문화재 임형규 보존회장이 김철관 한국인터넷기자협회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임형규 인간문화재 임형규 보존회장이 김철관 한국인터넷기자협회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윤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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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임 회장은 별신굿탈놀이로 화제를 돌려, 공연에 있어 한계인 외국인에 대한 언어 극복 등에 대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외국 공연에서는 한 마당 한 마당 대사를 할 때마다 자막 처리나 동시통역을 해 문제가 없었다. 하회마을 마당극에서는 자막처리가 안 돼 외국 관람객들이 이해하기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탈이 워낙 좋으니까 탈 표정을 보고 대충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그것만 가지고 외국인들을 다 이해시킬 수 없고 우리문화를 전파할 수가 없다. 그래서 동시통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려 연구 중이다."

그는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무형문화재 중 중요무형문화재라면서 그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박물관에 장인들이 만들어 놓은 장이나 조각들은 똑같이 만들 수 있다. 권력을 가지는 사람들이 탈을 빼앗아 갈 수 있다. 하지만 탈놀이같이 무형문화재는 빼앗아 갈수 없다. 무형문화재는 정신과 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그중에서 중요하다고 해 중요무형문화재이다. 지방마다 군사을지훈련을 하면 인간문화재는 제주도로 먼저 피신을 시킨다. 2차로 하와이로 보낸다. 전쟁이 일어나면 바로 이런 똑같은 절차를 밟는다. 정신문화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서이다. 전쟁이 나면 하회탈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우리 정신과 혼은 빼앗아 갈 수 없다."

별신굿탈놀이 별신굿탈놀이 공연의 모습이다.
▲ 별신굿탈놀이 별신굿탈놀이 공연의 모습이다.
ⓒ 윤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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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회장은 일본 가면극과 우리 탈춤의 행태를 비교해 말했다.

"백제에서 전수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 가면극은 400개가 있다. 일본 가면극은 풍자와 해학이 없다. 몸짓으로 보여주는 것만 한다. 바로 연희패이다. 우리 탈춤은 전국 13개 단체 뿐이 없지만 그 속에 해학과 풍자를 하면서 관객들과 어울리고 소통하면서 꾸며간다. 언제라고 마당이 있고 터가 있으면 판을 벌일 수 있다."

임 회장은 지난 1일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열린 에이펙정상회담 초청 공연을 위해 일행들과 인도네시아 발리섬으로 떠났다. 떠나기 전 인터뷰에서 그곳 발리섬 공연장이 자막이 안 돼 보는 사람들이 대사를 읽을 수 있게 팸플릿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에이펙 정상회담 문화예술 축전으로 초대를 받았다. 여기에서도 우리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전파할 수 있게 고민하고 있다. 자막이 안 된다고 해 각 마당마다 공연자 대사를 영어로 써 팸플릿을 만들었다. 한국을 알리는 좋은 공연이 될 것이다."

지난 28일 인터뷰를 하던 날 인간문화재 임형규 보존회장은 바로 앞날(27일) 회갑을 맞았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케이크로 대신해 '이순(耳順)'을 축하했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발 2013#주요무형문화재 하회별신굿탈놀이#임형규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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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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