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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문과 서울 시청 앞에서 6일째 단식 농성을 하는 이들이 있다. 밀양의 765KV 초고압 송전탑에 반대하는 밀양의 젊은 농부 김정회, 박은숙씨 부부와 밀양 765㎸ 송전탑 반대대책위 상임대표인 천주교 부산교구 조성제 신부. 지난 5일 토요일, 단식 4일째를 맞는 김정회씨 부부를 12시간 동행 취재했다. - 기자 말

 8시 23분 대한문
8시 23분 대한문 ⓒ 빈진향

오전 8시 23분 대한문. 여덟 시부터 나올 거라는 말을 듣고 서두른다고 한 것이 조금 늦었다. 김정회씨는 이미 나와 있었다.

 오전 8시 24분
오전 8시 24분 ⓒ 빈진향

"여덟 시 조금 못 돼서 나왔습니다. 오늘은 주말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네요. 신부님은 저쪽 시청 앞에 계시고 집사람은 아직 쉬고 있습니다. 경찰요? 경찰은 24시간 지킨다고 합니다. 화단에 누가 꽃을 꺾어갈까봐 그러나…."

간밤에 잘 잤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오늘도 행사 계속한답니까?" 하고 묻는다. 김정회씨 가족이 단식 농성을 위해 서울에 온 10월 2일부터 하이서울 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 전날인 4일은 시청 광장에서 드럼 페스티벌이 열려 공연 시작 전부터 리허설을 하느라 무척 소란스러웠다. 공연이 끝나고 밤새도록 무대를 뜯는 소리가 들렸단다.

하이서울 페스티벌, 공연 끝나고 밤새도록 무대 뜯는 소리가

 오전 8시 36분
오전 8시 36분 ⓒ 빈진향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지키는 이들과 안부를 묻는다. 김정회씨는 삼성동 한전 본사 앞에서 농성할 생각으로 올라왔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한문으로 왔다. 현재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 옆에서 함께 1인 시위를 하며 쌍용자동차 농성 텐트에서 지낸다.

 오전 8시 48분
오전 8시 48분 ⓒ 빈진향

"대통령이 또 어디 간답니까?"
"글쎄요, 요즘 뭐하시는지 관심을 두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요."

신문을 읽던 그의 물음에 인터넷 검색을 해본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간다네요."

인터넷을 보다가 페이스북을 열었더니 새벽부터 벌어진 밀양 현장 소식이 전해진다.

126 공사현장
▶철야 3명. 6:45경 주민들이 해놓은 장작을 외부세력이 올라와서 흉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빼앗아 감.
▶7시 병력 교대중. 주민들은 길목에 경찰 있자 숲길로 돌아왔고, 주민들, 경찰이 약속(집에 갔다가 다음날 현장에 들어가게 해주겠다는)을 지키지 않아 항의함. 경찰은 우리 부대가 아닌 것 같다, 막는 게 기본지침이라며 충돌 중.
▶7시 30분 주민 20여명 농성장 도착. 공사장에 녹색 그물펜스 치는 중, 포크레인 가동시작. 희망버스 인원이 올라온다는 이유로 입구에 병력이 막고 있으며 장작은 돌려주지 않은 상태.

"(대통령이) 일주일 있다가 온다지요?"

확인하듯 묻는 그의 목소리에 한숨이 섞여 있다.

 오전 9시 19분 시청광장으로
오전 9시 19분 시청광장으로 ⓒ 빈진향

천막에서 쉬고 있던 박은숙씨가 교대를 하러 나왔다. 김정회씨는 시청 앞에 계신 조성제 신부님과 교대 하러 간다.

 오전 9시 22분 서울 시청 앞
오전 9시 22분 서울 시청 앞 ⓒ 빈진향

조성제 신부님이 가톨릭 농민회 실무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피켓에 쓸 말을 신부님께 청하자.

"송전 말고 밭전(田), 공사 말고 농사!"

오전 9시 37분, 시청 앞에 앉아있는 김정회씨에게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건다.

"송전탑 이게 그렇게 안 좋은 거예요?"
"당연히 안 좋죠. 필요해서 하는 거면 괜찮은데 꼭 필요하지도 않은 걸 세우려 해서 그래요."
"(정부에서) 필요 없는 걸 하겠어요?"
"전기가 모자란다고 그러는데 지금 원자력 발전소 23개 중에 10개가 스톱 돼 있어도 이렇게 아껴쓰니까 올 여름 버텨냈다 아닙니까. 부족하다면 값을 올려야 하는 거, 그게 정상이죠. 대기업에 값싸게 주는 거 보세요. 전기가 부족하고 그래서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대기업과 한전의 이익 때문입니다."

"에이, 그래도 정부가 하는 일인데."
"도시는 220볼트도 다 땅으로 묻잖아요. 여기도(시청 광장) 전봇대 하나 없어요. 정말 필요하다면 땅 속으로 묻어 주면 되는데 왜 밀양에는 피해를 주면서 꼭 머리 위로 지나가게 합니까? 정부에서 하는 일이 정당하고 명분 있다면 왜 우리를 설득하지 못합니까? 우리는 농사짓는 단순한 사람들인데."
"이번에 터진 거, 4대강, 그것도 시민들이 반대했었나? 그래도 정부에서 한다고 하면 하는 거지, 어떻게 막겠어요? 얼굴이 피곤해 보이네. 어쨌든 열심히 하세요."

 오전 10시 7분
오전 10시 7분 ⓒ 빈진향

경찰이 다녀갔다.

"무슨 과장이라고 하던데, 하여간 저 사람이 여기 대통령이라고, 유명하대요. 오늘은 별 얘기 안 하고 단식하는 거냐 묻고, 애들은 학교 보내라, 그랬어요. 첫날에는 엄청 딱딱하게 굴었죠. 두 명 이상 모이면 집회니까 불법이라고 (경찰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한 명씩 떨어져서 하면 괜찮다 해서 떨어져 있었더니 다음날 와서는 따로 떨어져도 한 공간에 있으면 안 된다고, 그래서 한 명은 대한문 앞에 있고 다른 한 명은 시청 앞으로 온 거죠."(단식 농성자 셋이 대한문, 시청 앞, 농성 텐트를 교대로 순환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1인 시위자 위해 만든 '해피솔'... "밀양보다 낫네요"

 오전 10시 14분
오전 10시 14분 ⓒ 빈진향

오전 10시 14분 대한문, 시청광장의 '대통령' 가고 나니 시청 경비과에서 파라솔을 쳐준다. 어제는 시청 앞에 있으면 사람들이 시청이 뭘 잘못한 줄 안다면서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뜻을 비쳤으나 오늘은 그도 별말이 없다. '해피솔'이라고 쓰여 있다. 박원순 시장이 1인 시위자를 위해 마련한 것이란다.

"서울 시청은 좋네요. 밀양 시청보다 낫네요. "

페이스북의 밀양 소식

09:51 <긴급>
4공구헬기장, 시청직원 140명, 경찰차 6대, 행정대집행하려함.
기자분들 109번 송전탑 건설부지에도 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0월 2일부터 공사가 시작되었고 40분 이상 산을 타야 하는 고립된 지역이라 주민 분들이 마을로 내려가면 복귀할 수 있을까 걱정되어 눌러 앉으셨습니다. 고립된 상태입니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 구호물품을 전했지만, 워낙 동떨어진 지역이라 카메라가 적어 폐쇄적인 상태에서 공사가 강행될 예정입니다. 기자 분들이 계실 때와 안 계실 때의 상황은 확연히 다릅니다. 밀양시 상동면 109번 송전탑 건설부지로 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부상을 당하고 쓰러지는 주민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오전 10시 50분
오전 10시 50분 ⓒ 빈진향

오전 10시 45분 박은숙씨가 와서 교대하고 김정회씨는 시청 안 화장실에 간 사이, 박은숙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오늘은 낮부터 공연을 하는가 보네. 우리가 올라온 목적이 희미해지는 것 같아. 다들 축제 분위기고, 사람은 많이 다니는데 즐기러 왔잖아. 많은 생각이 듭니다. 다들 즐거워하는 사람…. 나도 몇 년 전에는 저러고 다녔겠지요. 쌍차 분들이 분향소를 차려놨는데 앞에서 축제 분위기고 그러니까 기분이 좀 그렇다고, 우리도 그렇지 않느냐 물으시더라고요.

그냥 한전 앞에서 바닥에 추워서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거기서 하면 낫지 않았을까 싶어예. 한전 앞에는 돗자리도 못 깔게 했죠. 우리가 서울에 딱 오니까 이미 한전 앞에 경찰이 다 깔린 거죠. 텐트는 아예 내리지도 못하고 돗자리도 못 깔게 해서 바닥에 앉았는데 나중에는 춥드라구예. 국회의원이 깔개를 가져오자 처음엔 그것도 안 된다 하다가 나중에는 하게 하더라고. 참 별걸 다 가지고, 국회의원은 되고 우리는 안 되는지.

한전 앞에서 텐트 못 치면 트럭에 자고 거기서 하면 그래도 한전에 압박이 좀 되지 않을까 싶고. 사람들한테 밀양이 절박하다는 것을 알리려고 왔는데, 잘 안되는 것 같아서…."

 오전 10시 52분
오전 10시 52분 ⓒ 빈진향

"내는 단식 끝나면 던킨 도넛이랑 커피 꼭 먹을끼다. 여긴 단식 조건이 너무 안 좋아. 각종 냄새가…."

대한문 앞을 지키다 온 박은숙씨가 말했다. 대한문 앞에서는 던킨 도넛 화장실을 이용한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마주치는 화려하고 달콤해 뵈는 도넛, 커피향의 유혹은 얼마나 강렬할까?

"나는 어제 사우나 가는데 가는 길에 전통 음식 골목이 있는 거라."

김정회씨도 거들었다. 단식 4일째, 이들이 느끼는 어려움이 어떠한지, 단 하루도 굶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가늠이 안된다. "배고프시죠?" 했더니 금세 정색하며 말한다.

"실은 배는 안 고파예. 냄새가 코를 자극해서 잠깐 생각했을 뿐이라예."

그러면서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우리에겐 이게 밥입니더."

 오전 11시 1분 천막
오전 11시 1분 천막 ⓒ 빈진향

박은숙씨가 시청 앞을 지키고, 김정회씨가 텐트에서 휴식을 취할 시간인데 김정회씨가 대신 시청 앞에 있고 박은숙씨는 천막에서 아이들 짐을 꾸리고 있다.

"원래는 아이들도 사흘 동안 단식을 할 계획이었거든요. 그런데 집회 신고 안 했다고 가족이 모여 있지 못하게 하고 신부님들도 아이들은 단식하면 안 된다고 반대하시고… . 만나는 사람마다 아이들 데려다 뭘 먹이고 과자 사주고 그러니까 통제가 안 되네. 진서(막내), 니 봐라, 과자 많이 먹으니까 얼굴에 뭐 생기고 그랬잖아."

아이들을 일찍 내려보내기로 했단다.

 오전 11시 21분
오전 11시 21분 ⓒ 빈진향

"어머니, 나도 같이 있을래."

형들, 누나 따라 밀양에 내려가야 한다니까 여섯 살 막내 진서가 울음을 터뜨렸다.

"대화하면 이렇게 단식을 안 해도 되는데..."

 오전 11시 27분
오전 11시 27분 ⓒ 빈진향

 오후 12시 10분
오후 12시 10분 ⓒ 빈진향

낮 12시쯤 신부님이 시청 앞에 오셔서 교대, 김정회씨는 천막에서 국민TV 기자와 인터뷰, 진서가 울면서 아버지에게 매달린다.

"아버지하고 있을래요."
"서울에 온 지, 오늘이 삼일째. 단식 다섯 끼 정도 했어요. 피켓 들고 1인 시위도 하고. 송전탑 공사를 공권력까지 투입해서 마을 사람들 힘들게 이렇게 해야 하는지, 대화를 통해서 하면 안 되는지. 대화하면 이렇게 단식을 안 해도 되는데 정부에서 마을 사람들 말은 안 듣고 무조건 공권력을 투입하고 그러니까 납득이 안 되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첫째, 김동겸군이 한 말이다.

 오후 12시 14분 대한문
오후 12시 14분 대한문 ⓒ 빈진향

 오후 12시 16분
오후 12시 16분 ⓒ 빈진향

진서가 어머니 박은숙씨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와서 계속 울고 있다. 아이와 볼을 부비며 작별 인사. 여섯 살, 열 살, 열네 살, 열일곱 살. 어쩌다 아이를 넷이나 두었냐고 물었더니 '생명을 거스르지 못해서'라며 웃는다.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었어예. 우리 신랑은 농사에, 중장비에 정말 쉬지 않고 일을 하거든요. 나도 그에 맞추느라 바쁘고 거기다 애들 챙겨야 하고, 애들도 어려서부터 산에서 나무하고 지들이 밥도 다 해먹고 그렇게 컸어요. 열 살짜리도 지 혼자 밥 다 해먹고 그럽니다."

 오후 12시 18분
오후 12시 18분 ⓒ 빈진향

박은숙씨 옆에 또 한 사람의 단식자가 있다. 밀양 송전탑 반대 동조 일일 단식에 나선 그래픽 디자이너. 예술인 소셜 유니온(준) 활동을 하고 있단다.

 오후 1시 3분 대한문
오후 1시 3분 대한문 ⓒ 빈진향

천막에서 인터뷰를 마친 김정회씨가 박은숙씨와 교대를 하러 왔다. 박은숙씨의 기분이 나아졌다. 누군가 옆에 있어서,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단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라치면 뒤에서 경찰이 저지한다.

 오후 1시 28분
오후 1시 28분 ⓒ 빈진향

아이들 떠나 보내고, 인터뷰 마치고 난 그가 몹시 지쳐 보인다.

 오후 1시 35분 대한문 앞
오후 1시 35분 대한문 앞 ⓒ 빈진향

단식하는 분들에게 미안하지만, 배가 고파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러 길을 나섰다.

(오후 2시부터는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밀양#765KV 송전탑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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