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올해부터 '찜e시민기자'로 선정된 시민기자에게는 오마이북에서 나온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편집자말] |
일본, 필리핀,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영국, 스페인, 체코, 오스트리아...
올해로 만 23살이 됐다는 그녀가 지금까지 여행한 나라들입니다. 20대의 절반도 넘지 않았는데, 벌써 9개 나라를 돌아다녔다니... 어느덧 서른을 훌쩍 넘긴 전 '부럽고, 부럽고, 부럽다'라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러움을 가득 안고 시작된 김산슬 시민기자와의 인터뷰. 현재 김 기자는 <오마이뉴스>에 '가다툰의 네버랜드 이야기'라는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집트에 대해서 썼는데, 그녀의 글을 통해서 만난 '이집트'는 뭔가 달라도 달랐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제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이집트=피라미드, 치안이 불안한 나라'라는 공식이 무너졌으니 말이죠.
그럼, 이집트를 "'사랑'이라는 말로는 정말 충분하지 않을 만큼 특별한 곳"이라고 여기는 김산슬 기자와의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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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이름은 김산슬이고 나이는 만23세예요. 대학에서 아랍어를 전공 중이고, 지금은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 20대 초반인데, 여행을 엄청 많이 다닌 것 같아요. 여행이라고 하기엔 좀 길게 머문 곳도 있는 것 같고... 여행한 나라들을 소개해주세요. "'엄청'까지는 아니지만 스무 살에 '서른 살이 되기 전 해야 할 것' 목록에 적었던 것 중에 '10개국 여행하기'가 있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24살인 현재까지 9개국을 여행했으니 감사하게도 예상보다 빨리 목표의 절반이상을 이룬 것 같아요. 가보았던 나라는 일본, 필리핀,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영국, 스페인, 체코, 오스트리아고요. 그 중 이집트는 정부초청장학생이라는 프로그램으로 2010년에 가서 8개월 정도 머물렀고요. 요르단은 2012년부터 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가서 10개월가량 살았네요."
- 기사를 보면, 이집트를 굉장히 사랑하는 것 같아요. 이집트의 매력은 뭘까요? "이집트를 여행하거나 살았던 사람들의 의견은 항상 극과 극이에요. 너무 사랑해서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다시는 가고 싶지 않거나. 저는 당연히 전자인데요. 여행을 하면 관광객들을 위한 곳에서 머물고, 자고, 방문하잖아요. 그래서 그곳에 있는 이집션 상인들에게 크게 데인(?)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그들과 같은 동네에서 살고, 그들이 먹는 것을 먹고, 그곳의 일부가 된다면 보이는 것도 많이 달라져요. 그래서 저 또한 이집트를 떠올리면 '피라미드'보다는 징글징글하게 정이 들어버린 '이집트 사람'들과의 추억이 떠오르고요. 무엇보다 각자 잘 맞는 나라가 있기 마련인데 제겐 똑같은 아랍국가여도 요르단은 또 그리 잘 맞는 국가는 아니었던 걸 보면 저는 이집트를 사랑할 운명이었나봐요."
"'아랍의 봄' 때 가장 무서웠던 건 탈출한 죄수들..."- 김산슬 기자가 이집트 등에 머물렀던 때는 '아랍의 봄' 시위 등으로 중동 치안이 불안했던 때였어요. 무섭다는 생각은 안 들었나요? "저는 카이로 대학교에서 공부를 했는데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이 1년이었어요. 하지만 2011년 1월 25일 경찰의 날을 시작으로 번진 민주화를 위한 시위는 결국 독재자를 끌어내리고 시민들의 힘을 보여준 아랍의 봄이 되었고 그 길로 제 유학생활도 도중에 끝이나 버렸죠.
아직도 기억해요. 그날은 금요일이었는데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인터넷이 불통이었어요. 인터넷이 끊기는 일은 워낙 잦아서 걱정을 안 하고 있었는데, 조금 뒤에 보니 전화도 안 되더라고요. 페이스북과 트위터, 그리고 문자메시지로 시민들이 서로 집회장소와 시간을 주고받으며 모이게 되자 무바라크 독재정부가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차단시켜버리고서는 계엄령을 내린 거죠. 저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아, 내가 지난 8개월간 살았던 곳이 정말 계엄령이 존재하는 국가였구나."
- 기사에 살짝 언급돼 있긴 하지만, 여행기에 등장하는 이보-나흘라와는 어떻게 만났나요. "제가 항상 생각하는 건데요, 제가 다른 건 가진 게 없어도 인복이 정말 많은 사람이거든요. 정말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요. 그 중에 이보도, 나흘라도 있어요. 둘 다 요르단의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했던 친구들이고요. 이보는 학교 개강날 제 옆에 앉았었어요. 항상 웃는 표정과 맑은 파란 눈이 인상 깊었던 친구예요. 둘 다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곧 깨달았죠. 아, 내가 평생 잊지 못할 인연이 시작되었구나. 제가 살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삶을 이미 살아가고 있는 친구였어요. 서로 친해질수록 너무 닮아서 서로가 깜짝깜짝 놀랐던 그런 친구예요. 지금은 어떤 고민이든 털어놓을 수 있고 털어놓을 수 있는, 가장 저를 잘 알고 가까운, 제 인생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하나죠.
그리고 나흘라는 당시 제 옆집에 살던 이웃이었어요. 당시 그 건물에 동양여자라곤 나흘라 혼자여서 심심할 때마다 문에 있는 구멍으로 밖을 훔쳐보곤 했대요. 그러다 하루는 제가 이사한 집에 전기가 안 들어와서 그때 알던 유일한 친구였던 이보가 와서 고쳐주었는데, 이보와 제가 사귀는 사이인 줄 알고선 그 때 이후로 현관문에 찰싹 붙어서 저를 감시하곤 했대요.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셋이서 시간을 같이 보내기 시작했고 저희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흘라에게 'Granny(할머니)'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어요. 그 이후엔 너무 서로 잘 맞는 바람에 함께 어울리던 핫산이라는 친구가 저희를 통틀어 '세 얼간이'로 부르긴 했지만요."
- '라마단 기간'에는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한데요, 어떻게 지냈죠?"제가 이집트에 도착했을 때가 라마단 기간의 중간이었어요. 아시다시피 라마단은 쉽게 말해 이슬람에서 1년 중 한 달 동안 해가 뜬 시간에 금식을 하도록 하는 기간이에요. 종교의 가르침 아래에서 인내와 자제력을 가르치고 이웃의 배고픔을 함께 느끼고 돌보는 시간이죠. 해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더욱 신앙심이 깊은 무슬림들은 침도 삼키지 않고 뱉어내기도 해요. 뿐만 아니라 흡연, 성관계 같은 쾌락적 요소들도 금지되죠.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듯이, 어느 나라든 이방인으로 머무를 때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루의 반나절을 굶어 예민한 사람들인데, 나는 무슬림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리에서 버젓이 음식을 사먹는 건 예의가 없는 짓이죠. 물론 보통 라마단 기간 동안은 대부분의 가게가 일몰 후에 문을 열어요. 그래서 불편한 점도 있고요.
그 중에 재미있고 인상 깊었던 기억은, 해가 진 후에 저도 이집션 친구를 따라 라마단 기간 동안 하루의 첫 끼니인 '이프타르'를 먹으러 갔는데, 그때가 아직 해가 아주, 아주 조금 보이던 때였어요, 그때 타흐리르 광장에는 10m가 넘게 식탁이 줄지어 이어져 있었고, 가족끼리, 또 친구끼리 사람들은 식탁에 앉아 식사시간을 알리는 저녁 기도소리인 아잔이 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포크와 숟가락을 양손에 쥐고서, 정말 전투 직전의 준비태세 있잖아요. 그렇게 비장한 표정으로요. 그리고 그때 이슬람 사원에서 아잔이 울렸고, 그 순간 식탁에 앉아있던 100여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허겁지겁 일제히 식사를 하던, 그 모습이 너무 신선하고 충격적이어서 한참을 바라보고 나중엔 웃었던 기억이 나요."
- 이집트가 아랍의 봄 2년 만에 또 다시 혼란을 겪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실 2010년 이후로 이집트는 계속 혼란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해요. '졸업을 하면, 무슨 일을 하던 어쨌든 이집트에 가서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는데, 갈수록 악화되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요. 하루는 친구가 사는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에서 유혈충돌이 있었는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앞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우연히도 일주일 전부터 페이스북에서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그 친구의 소식을 접할 수가 없어서 궁금하던 차에 뉴스를 본 거라 며칠 동안 잠을 설쳤었어요. 다행히 3년 전에 쓴 다이어리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받았던 메일주소가 적힌 쪽지를 발견했고 그리로 메일을 보냈죠. 3일인가 후에, 걱정시켜서 미안하다며 연락이 왔더라고요. 경찰도, 시민도, 무고한 사람들이 흘리는 피가, 그리고 그들이 남이 아니라 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그들의 가족일 수도 있다는 생각만 하면... 그것자체가 저를 슬프게 해요."
- 한국인들이 중동지역과 중동인들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이 있다면..."글쎄요, 테러리스트? 종교에 미친 사람들? 석유부자들? 여성인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고도의 장사수완? 하지만 중동의 부자나라도 아라비아 반도의 걸프국가들에 한정되어있어요. 샴 지역과 북아프리카의 아랍 국가들은 우리나라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가 더 많고요. 더 많은 오해들도 존재하고 그중 일부는 사실이고 또 일부는 거짓말인 것도 맞아요. 하지만 그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지도, 심지어는 '카더라'를 '이다'라고 바꾸는 경우도 수두룩하고요.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한국에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건 부끄럽지만 공공연한 사실이잖아요. 미국에서 오면 전과자였던 사람도 선진국에서 온 멋진 사람이 되고, 그가 모국에서는 교수로 재직하는 지식인이라 하더라도 동남아 국가나 아시아,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에서 오면 한국인들은 그를 '외국인 노동자'로 첫눈에 판단해요. 웃긴 건 중동에서는 정반대로 우리, 아시아인이 그런 대우를 받는다는 거예요. 강자에게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비겁한 아랍 남자들은 서양여자들이 지나가면 그저 힐끔거릴 뿐 심각한 문제는 잘 만들지 않는 편이지만, 몸집이 작고 어려보이는 동양여자에게는 각종 언어적 육체적 성추행은 물론 심지어 성폭행도 꺼리지 않아요. 천성이 착하고 여린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출신의 무슬림 소녀들에게는 정말 납치, 강간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요. 모두가 알아야 할 것은, 어떤 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그가 가진 국적이나 피부색이 아닌 그 사람의 내면이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여행할 때 언어에 대한 두려움은 느끼지 않았으면..."-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고 있어요. 부모님이 여행을 반대한 적은 없나요?"제가 부모님께 가장 감사한 것 중 하나가 신뢰의 중요함을 깨닫게 해주신 거였어요. 항상 어머니께선 항상 '무슨 일이든 하지 말라고 해도 하고 싶으면 숨어서 다 하게 되어있고, 아무리 하라고 해도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거다'라고 하세요. 컴퓨터 게임이든 뭐든 좋지 않은 것이라도 억지로 저희 남매로부터 떼어놓지 않으세요. 질릴 때까지 하게 두시고 언젠가는 스스로 그것에 대해 좋음과 나쁨에 대한 자신만의 의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켜봐주시는 편이죠. 처음 이집트에서 민주화 혁명으로 인해 조기 귀국하게 되었을 때, 당연히 많이 걱정을 하셨어요. 하지만, 이제는 포기 하신 것 같아요.
제가 하지 말라고 한다고 안 할 사람이 아닌 걸 아시거든요. 애초에 아랍어를 전공으로 선택할 때부터 '평범'하고 직장을 얻기에 좋은 전공을 하나라도 지원해주길 바라셨던 부모님의 부탁을 외면한 채 '가나다' 모두 아랍어과만 지원을 했었어요. 제 인생에 대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그것을 책임지는 사람도 나이고, 혹시라도 나중에 후회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탓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런 저를 아시니까... 이제는 사실 포기하신 게 맞는 것 같아요. 믿어주시는 거겠죠."
- 여행 중에 겪은 기억에 남는 일이나 사람이 있다면...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어요. 마음을 나누고 눈을 맞춘 하룻밤의 인연들도, 평생을 함께 할 사람들과의 인연들도요. 지금은 친자매 같은 이집션 언니와 아프가니스탄 친구 둘, 그리고 요르단에서 만난 요하네스, 플라비아, 루시, 비욘, 이리스, 나타냐 이렇게 6명의 유럽친구들과 이보, 나흘라, 핫산, 샴스, 그리고 코이카로 요르단에 계시던 장 선생님과 희 언니, 그리고 예리라는 한국인 친구와 저를 딸이라고 부르는 스페인의 가족들까지요.
이집트의 한 사원에서 나흘라와 함께, 이스라엘에서는 예리라는 친구와 함께,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같은 순간을 공유할 때가 가장 기억에 깊게 남네요."
- 여행 습관 같은 게 있나요."기록하는 습관이 있어요. 그것 말곤, 여행할 때만 나타나는 제 모습이 있어요. 여행을 하면 평소보다 강해지는 편이에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나를 열어두되 작은 실수로 그 하루가, 혹은 큰 여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금 더 꼼꼼해져요. 또 말이 안 되지만 동시에 제 자신을 무방비로 내려놔버려요. 좀 못 씻어도 괜찮고 싸워도 괜찮아요. 그냥 모든 상황을 몸으로 겪으면서 즐기고 넘어지고 또 배우는 편이에요."
- 여행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여행 잘하는 팁을 하나 준다면..."각자만의 여행스타일이 있고, 그건 본인이 경험하면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단 하나,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절대 느끼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언어는 소통의 한 도구일 뿐 진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눈과 손으로도 마음을 나눌 수 있어요. 그곳의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 그곳의 건물들만 본다면 여행보단 관광에 가까워지겠죠.
사람 사는 곳은 다 같아서, 어떻게든 살아남게 돼 있거든요. 정말 용감하다, 중동에 어떻게 살 생각을 했냐, 혼자 유럽을 어떻게 여행할 생각을 했냐, 라고 많이 물으시는데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더라고요. 그리고 누구나 혼자 있으면 더 강해지는 거고요. 생각에서 실천으로 옮기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여행을 '하고 싶다'와 '했다'의 차이가 아닐까요?"
- 별명(닉네임)이 '가다툰'이에요. 무슨 뜻인가요?"제가 전공하는 아랍어과의 원어민 교수님이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아랍어로 '아름답다'라는 뜻인데, 사실 외국인 친구들은 저를 소피(Sophie)라고 불러요. 하지만 아랍에서 이 이름을 사용하면, 현지인들과 가까워지기 훨씬 쉬워져요. 그리고 제 이름을 지어주신 교수님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뜻이 특별하진 않지만, 선물 받은 이름이어서 닉네임으로 가다툰을 사용하게 되었어요."
- 오래 전 여행을 글로 풀어내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이는데... "중3 때부터 일기를 써왔어요. 책을 좋아하고 꾸미는 것을 좋아해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기록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매일 쓰는 일기가 기억을 뒷받침해주고 있어요. 두 번째로는 언제나 들고 다니는 수첩과 펜, 그리고 핸드폰이에요. 여행을 하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감정과 생각이 많은데 기록을 하지 않으면 그 세세한 감정들은 금세 잊어버리거든요. 오랜만에 맡았던 냄새들, 그 해에 처음으로 느낀 가을바람, 등등은 핸드폰에 메모하고 옮겨 적는 편이에요. 날짜에서 몇 분 몇 초까지도 기록되어있거든요. 그리고 글을 쓸 수 없는 어두운 밤 친구와 대화를 할 경우, 이 대화가 길어진다 싶으면, 또 마음에 와 닿는다 싶으면 녹음을 할 때도 있어요."
"제가 살고 싶은 방향과 일치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오마이뉴스>에 가입한 지 채 한 달이 안 되었어요. 기사를 넣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계속 이어오던 글쓰기였고, 글쓰는 게 좋았고 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3년 전에 포털사이트에 글을 쓸 때 흥미위주의 에피소드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에는 남들이 읽을 때 흥미는 있되 제가 담겨 있는 글을 쓰고 싶었고요. 언젠가 재수중인 남학생에게 메일을 받았는데, 재수에 실패하고 나쁜 마음을 먹었다가 제 글을 보고 나서 하고 싶고 보고 싶은 게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NGO에서 일하는 것이 제 목표였는데 그 이후부터 어떤 작은 일과 자리에서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구나 라는 걸 배웠어요.
- <오마이뉴스>에는 여행기가 많은 편이다, 혹시 눈여겨보고 있는 여행기가 있나요. "<오마이뉴스>에 원고를 넣게 된 경로가 김동주 기자님의 '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라는 연재물 때문이었어요. 여행기를 연재할 수 있는 사이트를 알아보다가 검색결과에 김동주 기자님의 개인블로그에 들어가게 됐어요. 거기에 ''오마이뉴스'에서 여행기를 연재하게 되었다'라는 글이 있었죠. 그걸 보고선 희망을 가지고 글을 보내게 된 거죠."
-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나요?"제가 살고 싶은 방향과 일치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그리고 글쓰기는 저를 바른 사람이 되게 해주는 것 같아요. 글을 쓰면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좋아요.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나잖아요. 근데 글은 그 사람의 진심이 없으면 금방 느낄 수 있거든요.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을 계속 할 때면 제 스스로가 정직해질 수 있어서 좋아요. 나쁜 생각, 나쁜 행동 하나라도 덜, 하게 돼요. 글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수다쟁이인데 그래서 글에서조차 그게 나타나서 언제나 쓴 글을 줄이느라 애를 먹어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라도 될 수 있는 사람냄새 나는 글을 쓰고 싶어요."
- 김산슬 기자 삶에서 '여행'이란 뭔가요."저를 더 자라게 하는 학교요. 10년이 넘는 학교생활에서 배운 것이 많지만, 사실 정작 지금의 저를 형성하고 있는 것들은, '시간' 속을 지나오면서 넘어지고 일어나고 울고 웃고 했던 일련의 삶의 과정들에서 얻어진 깨달음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제 좌우명은 'You will never know untill you try(해보기전에는 절대 모른다)'예요. 그 좌우명을 가지고 여행을 하면서 더 많은 것을 보게 되고, 그 어떤 것보다 나를 더 잘 알게 돼요. 결국 여행으로 인해 저는 겸손해지는 법과 현실에 충실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또 여행을 떠날 예정인가요? "우선을 졸업을 하고 나야 어디론가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겨울에 짧은 여행을 계획 중인데, 나흘라와 다른 친구들이 방문할 예정이라서 한국 여행을 하게 될 것 같기도 하네요. 그리고 친구 결혼식을 위해서 아프가니스탄에 갈 것 같아요. 이 두 가지가 현재로서는 제가 가진 여행 계획이에요. 미래에 대한 계획은... 이집트에 가려고 했는데 요즘 이집트가 너무 불안해서 졸업 후로 예정했던 계획은 실천이 힘들 것 같아요. 대신 아랍어, 영어, 스페인어 이 3개 언어를 목표로 하고 있어서 이번 기회에 남미나 스페인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있어요. 우선은 학생으로서의 마지막 학기를 행복하게 보내고 졸업을 하는 것, 그리고 지금 쓰는 글을 꾸준히 쓰는 것. 이 세 가지가 제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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