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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는 부유한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의 표지.
 <국가는 부유한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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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자랑거리가 많은 나라이다.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올림픽에서는 비교적 작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룬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뒤에도 국민들이 노력하여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냈고, 세계적 축구대회인 월드컵에서는 아시아 최초로 4강 신화를 달성했다. 그 외에도 미처 다 열거하기에 상당히 많을 정도로 '한국'이라는 국가의 이름을 떠올렸을 때 뿌듯함을 느낄 만한 점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뒤이어서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따라붙는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과 비정상적으로 낮은 출산률. 엄청나게 불어난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 등 다른 것들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앞의 두 가지만으로 이미 우울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오늘날의 한국은,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각박하면서 동시에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린 셈이다.

국가는 부유한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물음이다. 또한 공교롭게도 같은 질문으로 가득한 어느 책의 제목과도 같다. 바로 한국과 멀지 않은 일본의 저자가 쓴 <국가는 부유한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의 이야기다.

10년간 100개국 여행하며 살펴본 행복의 조건들

저자인 메자키 마사아키는 세계적인 금융회사였던 메릴린치에 입사하여 파생금융상품을 판매하는 트레이더로 일했다. 도쿄와 런던·뉴욕을 누비면서 한때 세계 최고의 판매수익을 올리면서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합법적 도박판'을 위해 돈에 영혼을 팔아야 하는 신세에 염증을 느껴서 사표를 제출한다.

그 뒤로 10년간 100개국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체험한다. 아프리카와 중남미·유럽과 아시아 각국을 떠돌면서 그가 본 것은 각자 다른 모습을 한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국민의 행복을 최대의 국가과제로 설정한 국가 부탄의 사례는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분명 부탄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지나치게 집단주의를 미덕으로 설정하고, 국민소득이 낮아서 영위할 수 있는 삶의 질이 높지 않다. 행복한 국가의 한 모델로 언급되곤 하지만, 다른 국가에 개방적이지 못한 환경 등 다소 불완전한 부분이 많은 것이다.

저자는 행복지수를 위해 측정해야 할 여러가지 조건들을 짚어본다. 먼저 국민소득 1만 달러 이하인 국가에서는 기본적인 정도의 안락함도 충족되지 못하여 행복지수가 높지 못하다. 독재국가가 많은 아프리카에서 비참한 삶이 이어지는 경우도 이 때문이라고 본문에서는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종교와 기후조건 등의 조건에 따른 행복지수 변화도 살펴본다.

또한 남녀평등지수가 높을수록 행복지수도 높다는 점을 지적한다. 폐쇄적인 남성중심의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 자신의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남녀평등을 위해 힘쓰는 여성국회의원이 더 많아질수록 행복지수가 높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부유할수록 더 행복하다? 틀린 말이다

"미국의 GNP(국민총생산)는 8천억 달러가 넘지만, 그 안에는 대기오염·담배광고·막대한 수의 고속도로 사상자를 나르는 구급대원이 포함돼 있다. 범죄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특별한 열쇠도, 그것을 부수고 침입하는 자를 가두는 형무소도 들어있다. 삼림 벌목, 무질서한 도시화로 없어지는 아름다운 자연도 들어 있다. 또 살인마가 사용한 권총과 칼, 아이에게 장난감을 팔기 위해 폭력을 미화하는 TV프로그램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GNP에는 아이들의 건강·교육의 질·아이들이 뛰어노는 즐거움은 포함돼 있지 않다. 시의 아름다움도, 결혼을 통한 유대, 국민의 토론 지식도, 장인정신도 포함돼 있지 않다. 기지도 용기도 은혜도 학습도 포함되지 않고 사회적 배려와 국가에 대한 공헌 행위도 들어있지 않다. 요약하면 GNP에는 우리들의 인생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 GNP는 우리들이 미국인으로서 자랑스러워해야 할 이유를 모두 뺀 것이다." - 전 미국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 연설(본문 40~41쪽 중에서)

앞서 언급했듯이,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국민소득 1만 달러 이상이 된 국가에서는 더 이상 소득이 행복지수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를테면 돈이 더 많아서 부유한 삶을 누릴 경우, 편리해지기는 하지만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본문에 첨부된 일본의 행복지수는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선 시점을 전후로 현재까지 큰 변화가 없이 정체되어 있다.

더불어 낮은 소득과 높은 빈부격차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나 한국보다 높은 행복지수를 보이는 아르헨티나의 경우도 덧붙인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중남미 특유의 라틴댄스와 함께 빈곤하지만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데, 이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거움을 찾는 것이 행복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이기주의와는 다른 '개인주의'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는 집단주의가 만연하여 개인이 희생되기 쉽고, 개성과 창의력·자유가 박탈된 표면적인 조화로움이 행복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유교문화를 비롯하여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런 현실을 낳았다는 것이다. 개인을 억압하는 전통을 고수하기보다는,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설명도 이어진다.

일본과 닮은 한국, '사회개인주의'가 해답?

저자는 본문에서 일본과 닮아있는 한국의 예도 들면서 행복국가를 위한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나라마다 행복을 측정하는 기준은 천차만별이고, 몇가지의 요소로 판단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지만 말이다. 책에서 언급된 한국과 일본의 공통점은 '객관적 행복지수는 높은데, 주관적 행복지수는 후진국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높은 자살률'이라는 씁쓸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집단성'이 강조되는 사회는 개인보다 집단-사회-국가의 이익이 우선한다. 이는 사회 전체가 풍요로워지면 개인의 이익도 커진다는 발상인데, 이런 사회는 개인의 창의력과 자유를 짓눌러서 행복지수가 낮아지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한국은 소득불평등마저도 점차 심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국가는 부유한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는 이런 문제들에 '사회개인주의'를 해답으로 제시한다. 개인에게 관대한 사회가 되어야 진정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주장이다. 국가와 집단의 이익만 추구하지 말고 개인의 가치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적절한 소득수준과 정신적 가치가 조화를 이루어야 행복할 수 있듯이, 개인과 집단도 마찬가지로 함께 나아가야 마땅할 것이다.

높은 자살률과 저출산 등의 지표는 단순한 숫자들의 목록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라지만 소시민의 주머니에서 2만 불은 찾아볼 수 없고, 국민들은 오히려 절망적인 현실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

후보 시절 '국민행복시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유라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21세기의 새마을운동이 기업과 국가를 부유하게 해줄지언정, 개개인의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는 다소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국가는 부유한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메자키 마사아키 씀 | 신창훈 옮김 | 페이퍼로드 | 2013.11. | 1만3500원)



국가는 부유한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 동아시아 행복도상국의 국민이 살아남는 법

메자키 마사아키 지음, 신창훈 옮김, 페이퍼로드(2013)


#국가는 부유한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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