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서 시작된 단풍이 시속 1㎞ 속도로 백두대간을 따라 남해안 섬까지 내려간다. 10월 19일, 815투어 산악회원들이 설악산의 가을 단풍을 만끽하기 위해 십이선녀탕계곡을 다녀왔다.
당일 아침 어둠속에 집을 나서 6시 20분경 2차 집결지인 신흥고등학교 앞에서 일행들과 합류했다. 내수를 지나는데 동쪽하늘이 붉게 물들며 안개가 걷힌다. 중앙탑휴게소를 지날 때는 탄금호의 물안개,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 흰 구름이 산봉우리를 휘감은 계명산의 멋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은 단풍만 빨리 드는 게 아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가을걷이도 빨리 끝났다. 인제 못미처에서 만나는 청정조각공원휴게소의 성테마 조형물들도 볼거리다.
한계교차로에서 44번 국도로 접어들면 도로변 좌우로 알록달록 단풍세상이 펼쳐진다. 9시 50분경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장수대에 도착했다. 설악산국립공원장수대분소가 위치한 장수대(將帥臺)는 1959년 당시 3군단장이 6·25전쟁 중 설악산전투에서 산화한 장병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건축한 산장으로 이곳의 지명을 대신한다.
짐을 챙기고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10시경 장수대분소에서 대승폭포, 대승령, 안산갈림길, 십이선녀탕계곡의 두문폭포·용탕(복숭아탕)폭포·응봉폭포, 남교리로 이어지는 11.3㎞ 거리의 산행을 시작한다.
장수대에서 대승폭포까지의 0.9㎞는 가파른 계단길이 이어진다. 초입의 등산로에서 대승폭포의 암벽이 나뭇가지 사이로 희미하게 보인다. 폭포를 만나기 직전에 동쪽으로 길게 펼쳐진 한계령과 남쪽으로 솟아오른 삼형제봉(1225m), 주걱봉(1401m), 가리봉(1519m)이 한눈에 들어온다.
십이선녀탕계곡의 등산로에서 처음 만나는 절경이 높이 88m의 대승폭포다. 이 폭포가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의 폭포를 대표한다. 폭포 앞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장마철에는 힘차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장관이고 가을철에는 단풍이 울긋불긋 물든 주변의 풍경이 멋지다.
대승폭포에서 1.8㎞ 거리의 대승령까지는 조망이 없는 산길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급경사 오르막의 할딱고개라 꽤 힘이 든다. 대승령(해발 1210m)은 내설악의 서북능선에 있는 갈림길 고개로 네 개의 등산로 장수대, 십이선녀탕계곡, 백담사, 귀때기청봉이 이곳에서 이어진다. 정상도 조망이 부족해 답답하지만 이정표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바람을 등진 채 점심을 먹었다.
대승령의 왼편에 십이선녀탕계곡으로 내려가는 좁은 길이 있다. 내리막길을 걷다가 다시 1370m 고지까지 올라간 후 하산을 하게 되는데 일찍 잎이 지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들이 늘어선 능선으로 강풍이 불어온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안산(1430m)을 바라보며 능선을 내려서면 맑은 물이 흐르는 십이선녀탕계곡을 만난다. 탕수동계곡으로도 불리는데 신기한 모양의 탕과 폭포가 8㎞에 이르는 이곳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밤마다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던 선녀탕이 12개나 된다.
첫번째의 두문폭포는 위쪽의 길에서 계곡의 물가로 내려서야 보인다. 폭포의 명칭 두문(杜門)은 '문을 닫아걸다'로 십이선녀탕계곡을 남교리 방향에서 올라오면 아름다운 풍경이 이곳에서 마무리된다. 두문폭포부터 용탕폭포(복숭아탕)에 이르는 1㎞ 거리가 십이선녀탕계곡에서 풍경이 가장 멋진 곳이다.
높은 곳에서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탕이 멋지다. 그래서 이곳을 두문폭포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계절과 수량에 따라 달라지는데 탕의 수가 12개가 아니면 어떤가. 맑은 물이 고여 있는 탕이 물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모습 그 자체가 한 폭의 수채화다. 고요한 달밤 탕에서 목욕하는 선녀들을 떠올리며 계곡이 만든 붉은 단풍터널을 지난다.
등산로 중간지점의 용탕폭포는 십이선녀탕계곡 최고의 절경으로 꼽힌다. 맨 위편의 용탕부터 복숭아탕, 무지개탕, 북탕, 독탕까지 이어지는데 복숭아 모양의 깊은 구멍이 있는 복숭아탕을 백미로 꼽는다.
가뭄이 계속되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데 뒷벽의 용굴에서 용이 나왔다 하여 용탕(龍湯), 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바위 구멍이 커다란 복숭아를 넣고 찍어낸 모양을 닮아 복숭아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행을 하다보면 땅바닥이나 앞만 바라본 채 부지런히 오르고, 배낭의 무게에 짓눌려 곁눈질만하며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다. 물가로 내려가 산행으로 지친 몸을 추스르고 다시 아래편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일행들과 한참 떨어졌는데 길이 좁고 돌길이 이어져 속도를 내도 벌러진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무슨 폭포와 탕이 이렇게 많아? 선녀탕계곡은 여러 개의 다리를 건너며 크고 작은 무명폭포를 수없이 만난다. 아름다운 풍경에 질릴만할 때 응봉폭포(應峰瀑布)를 만난다. 오른쪽 뒤편 높은 곳에서 응봉(1208m)이 폭포를 내려다보고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있다고 설악산 산행코스는 만만한 곳이 없다. 부지런히 걸었는데도 7시간이 걸린 4시 50분경 설악산국립공원남교리분소에 도착해 남교리 주변을 둘러봤다. 일행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한계쉼터와 야동휴게소를 거쳐 8시 40분경 청주에 도착하며 눈이 호사스러웠던 설악산 단풍구경을 마무리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 '추억과 낭만 찾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