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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오르는 골목길
 동피랑 오르는 골목길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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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동쪽 벼랑이란 말입니다. 경남 통영에 있는 동네입니다. 대도시 산동네가 재개발로 무너져갔듯이 동피랑도 처음에는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골목길과 담벼락에 사람들이 벽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져 살아남았습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경남 통영에 살 때, 동피랑은 사람 살기 정말 힘든 동네였습니다.

지난 달 31일 동피랑을 찾았습니다. 동피랑에 오르는 골목길은 가파르고, 좁았습니다. 아내와 함께 두세 번 올랐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벽화가 없었습니다. 삭막함마저 느꼈는데 이젠 벽화와 오고 간 사람들이 남긴 글귀들로 사람 냄새나는 골목길이 되었습니다. 비록 뛰노는 아이들은 없었지만, 골목길을 내달라는 아이들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동피랑 벽화에 새긴 글들
 동피랑 벽화에 새긴 글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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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고 했던 평남 정주에 난 백석(白石)은 '통영'이란 제목으로 시를 세 편 썼습니다. 평남 사람인 백석이 통영이란 시를 세 편이나 썼다니 놀랍습니다. 통영 사람들이 백석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백석이 쓴 통영을 동피랑 벽화에서 만났습니다.

옛날엔 통제가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 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늬 오랜 객주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 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 백석 '통영'

동피랑 담벼락에 그린 벽화
 동피랑 담벼락에 그린 벽화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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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오르자 아기공룡 둘리가 아니라 동피랑 공룡을 만났습니다. 둘리보다 못 생겼지만, 무섭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오래된 동피랑에서 그 옛날 공룡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은 사람이 느끼는 것이지 담벼락 벽화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습니다. 공룡을 만나고 골목길을 오르니 다양한 사람 얼굴을 만났습니다. 2:8 머리를 한 신사, 머리카락이 몇 개 밖에 안 남은 사람, 그리고 가운데 머리가 없는 대머리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숱이 많은 저는 참 미안했습니다.

동피랑을 찾은 이들이 다양한 글을 썼다. 모두가 활짝 웃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동피랑을 찾은 이들이 다양한 글을 썼다. 모두가 활짝 웃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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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오르자 넓은 길이 나왔습니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함께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동피랑을 찾았습니다. 산들산들 바람이 얼굴을 살짝 스쳤습니다. 바람은 갯내음까지 코에 선물했습니다. 벽화와 바람 그리고 갯내음을 선물받은 사람들 얼굴에는 해맑은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동피랑을 올라가고 있는 사람.
 동피랑을 올라가고 있는 사람.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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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에 바라본 강구안. 윤이상이 죽을 때까지 그리워했던 통영이다.
 동피랑에 바라본 강구안. 윤이상이 죽을 때까지 그리워했던 통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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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이란 말보다는 '꼭대기'가 더 어울리는 동피랑에 다 오르지 강구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강구안은 작은 포구입니다. 강구안에서 다양한 문화활동이 펼치지고, 그 유명한 '충무김밥'집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통영은 문화도시입니다. 지방 중소도시 중에 통영만큼 문화 활동이 활발한 동네도 없을 것입니다.

동피랑에서 바라 본 통영시민문화회관. 남망산 공원 중턱에 세워졌다. 그리고 해마다 10월 또는 11월에 윤이상국제음악제가 열린다.
 동피랑에서 바라 본 통영시민문화회관. 남망산 공원 중턱에 세워졌다. 그리고 해마다 10월 또는 11월에 윤이상국제음악제가 열린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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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건너편에 남망산이 있습니다. 남망산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조각공원이 있습니다. 특히 통영시민문화회관은 해마다 10월 또는 11월이 윤이상 음악회가 열립니다. 올해는 오늘(2일)부터 10일까지 '2013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경연부문 : 피아노)가 열립니다. 윤이상 선생은 살아 생전 꼭 통영을 오고 싶었지만, 우리 정부는 끝내 그의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수구세력은 윤이상을 '빨갱이'로 몰아갑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동피랑 꼭대기에서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 데 '2103년 평화'. '사랑해 꼬맹'같은 글귀를 쓴 벽화가 눈에 띕니다. 누구와 누구가 사랑한다는 글귀도 있습니다. 사랑과 평화 얼마나 아름다운인지 모릅니다. 평화가 임하는 올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동피랑 벽화들에 남긴 그들
 동피랑 벽화들에 남긴 그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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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땅 통영 동피랑에서 북녘 땅 신의주까지 갈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남녘 땅 통영 동피랑에서 북녘 땅 신의주까지 갈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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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벽화를 보니 갑자기 든 생각 하나. 남녘 땅 끝머리인 통영 동피랑에서 출발한 기차가 서울을 지나, 평양, 신의주까지 가고 더 멀리는 유럽까지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물론 통영에는 진짜 기차가 다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동피랑 벽화는 상상을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커피와 구판장 왠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요즘는 구판장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릴 적 구판장은 먹을거리가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오래만에 용돈을 주시면 구판장에 달려가 맛있는 과자를 사 먹었습니다. 대형마트와 비교할 수 없지만, 어린아이가 보기에 구판장은 없는 것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구판장'과 '커피'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구판장'과 '커피'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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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안에서 바라 본 동피랑
 강구안에서 바라 본 동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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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을 내려와 강구안에서 동피랑을 바라봤습니다. 통영 살 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봤던 동피랑입니다. 볼 때마 저곳에 한 번쯤 올라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3년 동안 두 세 번 밖에 없었습니다. 돈에 눈이 어두워 산동네를 밀어붙여 빌딩을 세웠으면 다시는 사람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다행히 동피랑은 사람 냄새나는 동네로 남았습니다. 동피랑은 사람 사는 동네였고, 사람 냄새나는 동네였습니다.


태그:#동피랑, #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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