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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이 열리는 부드러운 마찰음, 그리고 바람을 머금은 커튼의 술렁임.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찾는다. 그의 등장과 함께 나의 육체는 팽팽하게 긴장되고, 정신은 더 없이 또렷해진다. 오늘은 좀 더 심하게 다뤄주세요, 당신과 함께하는 이 시간 속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요.

벌써 3주째,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크리스마스 캐럴 속 과거의 유령. 20년 전에 비해 늘어지고 움츠러든 나의 모습을 발견한 스크루지 영감이 보낸 선물이다. 오늘은 또 어떤 모습의 나를 보여줄 것인가? 20년 전의 그 시간으로 떠나는 여행에서 영원히 돌아오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응사. '응답하라 1994'(응사)를 줄여서 부르는 인터넷 용어이다. 요즘 이 드라마가 범상치 않다. 전작 '응답하라 1997'(응칠)의 흥행에 힘입어 제작된 드라마라고는 하는데, 전작을 본 적이 없고, TV자체를 아예 안 보는 처지에서, 그나마 제목에 관심이 생겼던 이유는 딱 하나. 내가 94학번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던 찰나에 누군가의 권유로 1회 방송을 보게 되었다. 1994년,과연 그 시대를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까. 이러한 호기심은 결국, 과거의 유령이 되어 매주 주말마다 나를 20년 전으로 데려간다. 어느덧 나는 그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앓기 시작했다.

지난 내용 다시보기나 줄거리를 요약할 생각은 없다. 애 낳고 잘 살고 있을 94학번의 또래들과 함께 소품과 미술의 디테일에 대해 트집 잡을 생각은 더더욱 없다. 다만 회가 거듭 될수록 드라마 속에서 발견하는 나의 옛 모습이 신기하기도, 아련하기도 하여 도저히 꽁꽁 싸매놓고 있기 힘들었다. 과거 유령의 도움을 받아 신촌 하숙, 그 담장을 살며시 넘어 들어 가 본다.

1994년 봄, 풋풋한 대학 새내기로 돌아가다

1994년. 그해 봄. 드라마속의 주인공들처럼 나 역시도 대학의 풋풋한 새내기 였다. 수능 1세대로 불리는 1975년생 토끼띠들은 두 번의 수능 시험을 치르며 대학에 진학했다. 난이도 조절의 대실패로 8월에 있던 1차 시험 성적으로 대부분 진학을 했고, 1차가 끝나고 정말 이 악물고 3개월간 공부했던 친구들에게는 배신과 절망의 도끼에 찍힌 발등의 흉터가 오래도록 남아있던 그런 해였다.

드라마 속 내용처럼 농구대잔치 열기에 기름을 부은 '마지막 승부'가 마무리 되는 시점이었고(입학 전에 시행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정인교의 '마지막 승부'를 부르다 음이탈을 했던 기억이 너무나 또렷하게 남아있다), 문화 대통령 서태지가 2집의 대성공으로 가요게 지존으로 우뚝 섰던 그런 해였을 것이다.

참고로 나는 고려대학교 농구 팬이었다. 그중에서도 김병철과 현주엽. 물론 전희철이나 양희승 등도 좋아했지만, 나와 비슷한 피부를 지니고 있던 코트의 피터팬, 김병철과 우리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심 좋은 중국집 주방장처럼 생겼다는 현주엽이 가장 좋았다. 드라마 속 나정(고아라 분)이처럼 빠순이까지는 아니어도 경기는 꼬박 챙겨보곤 했었다. 고대의 붉은 유니폼은 늘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응사의 스토리 전개 및 등장인물들은 그 시절 필자의 모습과 소름 끼칠 정도로 많이 닮아있다. 지방에서 자란 내가, 더 지방으로 유학 간 사실만 다를 뿐, 인물 하나하나의 캐릭터 속에 모두 내가 녹아 있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손뼉치며 공감했던 장면들 위주로 그 친구들과 영적 대화를 시도해 본다.

 <응답하라 1994> 삼천포의 서울상경기.
<응답하라 1994> 삼천포의 서울상경기. ⓒ 응답하라 1994

제일 먼저 삼천포(김성균 분)의 상경. 더플 코트 차림으로 서울역 앞에 선 그의 모습과 지하철에서의 해프닝들은 서울 원주민들은 도저히 이해 못하는, 지방 출신들만 무릎을 치게 만드는 에피소드였다. 대학 1학년 여름 방학, 동기들의 초청(?)으로 서울구경이라는 것을 처음 가던 날이 떠오른다. 서울역에 마중 나온 동기들이 서울에 와서 무엇을 제일 해보고 싶었냐고 물었을 때, 늘 꿈꾸어 오던 나의 소원을 이야기 했다.

"지하철이 너무 타보고 싶다. 오늘은 하루 종일 지하철만 태워주라".

모든 것이 너무 신기했다. 종이로 된 티켓을 넣고 빼는 것부터 환승이라는 개념까지 지하철은 하나의 신세계였고, 별천지였으며, 한편으로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때 깜짝 놀랐던 것이 서울 원주민들은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혹시 모를 급정거를 위해 손바닥 땀 닦아가며 양손 모두 손잡이에 의지하고 있는 이를 발견한다면 십중팔구 지방 유학생이다.

또한 지방출신들은 가급적 문 주변에 서 있는다. 안쪽으로 떠밀려 들어갔다가 한 정거장 쯤 지나쳤던 일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저기, 잠깐만, 비켜 주...하다가 출입문이 닫혀 버리면, 한 정거장 걸어 돌아올 걱정보다 주위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이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한결같은 그들의 시선은 '쯧쯧, 시골에서 올라왔구만?' 바로 이거다. 그래서 나 같은 지방 출신들은 출입구 옆의 안전봉을 절대 놓지 않는다. 버스처럼 저기요, 아저씨! 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으므로.

두번째, 해태(손호준 분)와 삼천포(김성균 분)의 비스킷 사건. 방영되었던 모든 회에 걸쳐 최고로 공감하고 박장대소 했던 에피소드다. 해태와 심천포가 과팅에 나가서 KFC에서 처음 주문을 하며 난관에 봉착한다. 사이드 메뉴 비스킷이 과자인 줄 알고 40개나 시킨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잘해야 빠다 코코넛 정도 먹어 봤을 지방의 촌놈들이 미팅 나온 여자 앞에서 기죽기 싫어서 용감히 질렀던 그 마음까지도.

 <응답하라 1994> 미팅장면.
<응답하라 1994> 미팅장면. ⓒ 응답하라 1994

그 해에 지방에서 요즘처럼 다양한 패스트푸드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나 역시 비스킷이라는 것을 대학에 가서 처음 먹어 보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도 뻑뻑한 것을 가슴팍 두드려가며 왜 먹었을까 궁금하다. 서울 원주민들은 독특한 음식문화를 지니고 있다.

하숙집에서 삼천포가 야구부 투수인 칠봉이(유연석 분)에게 물어보던 깨알같은 질문들도 놓치기 아까운 재미이다. "바나나는 언제? 돈가스는? 피자는 언제 처음 먹어 봤나?" 서울 원주민인 칠봉이의 대답은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이다. 당시 삼천포의 놀랐을 마음이 나에게 진심으로 느껴졌다. 나 역시도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피자라는 것을 먹어봤으니까.

지방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20년 전에 피자는 김치 부침개의 장벽을 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가격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느끼한 음식에 대한 소화효소가 결여된 지방 토착민들에게 피자는 친해지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전어를 바짝 구워 머리부터 하나도 남김없이 먹을 줄 아는 삼천포에게 그런 생소한 음식들은 지리적 거리감 이상의 것 일수도 있다.

세번째, 삐삐 인사말 녹음. 1994년도 대학 입학 당시만 해도 무선호출기, 소위 말하는 삐삐의 이용자는 그리 많지는 않았다. 80명 정원의 우리 과에 입학 당시 삐삐를 가지고 있던 친구들이 몇 안 되니까.

하지만 그해에 삐삐의 보급률은 급격히 늘어났고, 새롭게 개발되는 삐삐들은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인사말 녹음이다. 거의 대부분 음악을 인사말로 등장시켰는데 굳이 본인 목소리를 녹음해 공분을 사게 한 친구들이 주변에 한 둘은 있었다. 삐삐 음성 을 확인하기 위해 하숙집 앞 공중전화 부스 앞에 줄 섰던 그 많던 학생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네번째, 엠티의 추억.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생들의 모습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때보다 게임도 다양해지고, 외치는 구호도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지쳐 쓰러져 구석에 잠들 때 까지 술을 먹이거나 등짝을 후려 패는 게임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다. 거기다 엠티하면 게임말고 떠오르는 장면이 꼭 있다.

술 마시다 사라지는 바퀴벌레 한쌍들. 아무도 없는 철 지난 바닷가에, 혹은 후미진 계단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우주와 인생을 논하던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녀. 그러다 성격이 지랄 맞은 선배나 술자리 끝장을 원하는 동기 녀석들의 손에 결국 끌려 들어오기는 했지만, 가끔 부럽다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그때 그 커플들 중에 지금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는 남녀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1994년을 관통하는 추억의 '길보드 차트'

1994. 그 시절 스타일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은 소위 말하는 우리 과의 킹카들이었다
1994. 그 시절 스타일나를 제외한 두 사람은 소위 말하는 우리 과의 킹카들이었다 ⓒ 이정혁

마지막으로 '응답하라 1994'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추억의 멜로디, OST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고 정리하려 한다.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배경음악의 돋보기 선곡은 아마, 이 드라마의 최대의 매력일 것이다. 모든 음악에는 그 음악을 들을 당시의 추억들이 녹아있게 마련인데, 응사는 정확하게 그 부분을 덜어내어 멋지게 요리해 낸다.

그 시절, 음악에 대한 향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좀 부끄럽지만 '길보드 차트'이다. 천원에 두 개씩 팔던 리어카표 불법 복제 최신 가요 테이프. 물론 최신 가요는 천원이었고, 전문가의 감정이 필요할 만큼 겉포장도 정교했다. 진정한 골수 팬과 그저 그런 떠중이 팬들은 정품 구매 여부에 따라 쉽게 구분 할 수 있었다.

길보드 차트 앨범의 특징은 한 면에 열 댓곡씩 수록되어 있어서 잘 나가는 최신히트곡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1절만 나오다 잘린다는 점이다. 서태지, 김건모도 열외는 없다. 최신에서 밀리면 냉정하게 가위질 당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냉혹한 가요계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나름의 서비스 정신을 투철해 간혹 철자가 틀리는 인간적인 냄새까지 풍기면서 꼬박꼬박 표지 뒷면에 가사를 적어주는 아량도 베풀었다. 그것은 테이프를 무한 반복해가며 가사를 받아 적지 않아도 되어, 그 시간에 학업에 충실하라는 리어카 형님들의 마음씀씀이 혹은 영업적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상에서 열거한 내용들 외에도 1994년, 그 한해는 내게 있어, 그리고 그 시간을 공유했던 신인류들에게 있어 추억의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다. 첫 술주정, 첫 담배, 첫 미팅, 첫 사랑, 그리고, 첫 키스까지 무슨 일을 해도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던, 내 서툴고 수줍고 찌질했던 젊은 날의 초상.

'응답하라 1994'를 통해 그 시간 속으로 잠시나마 걸어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인 것 같다. 동시대를 통과했던 거대한 열차의 같은 칸에 탑승했던 승객으로서, 섬세하기 그지없는 소품 하나, 대사 하나에 잃었던 청춘의 울렁거림이 사정없이 고개를 든다.

이제는 어엿한 사회의 기둥이 되어, 직장에서 중간자로, 가정에서 학부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신인류들이여! 한편으로, 사회에 길들여지며 꽃다운 싱그러움을 잃어버리고 중년의 길로 접어드는 X 세대들이여! 부디 우리에게도 가슴 절절했던 한 때가 있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뼛속까지 잠식한 일상속의 안주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목적과 방향을 상실하고, 기능부전에 지쳐있는 우리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자.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쓰레기(정우 분), 해태, 삼천포, 빙그레, 칠봉이, 나정이를 인디언 밥처럼 두드려 깨울 때가 되지 않았나?

응답하라 1994. 악역도 신파도 막장도 없는 순수 드라마가 사람을 정말이지 들었다 놨다 한다. 캐릭터와 디테일을 전면에 배치하고, 나정의 남편은 누구일까라는 미스터리한 구성을 곁들인 후, 아이 둘 가진 시한부 어머니의 이야기까지 녹여내어 감동까지 선사하는 근래에 보기 드문 착하고 즐겁고 고마운 드라마다. 응사의 질주가 계속되길, 과거의 유령이 계속해서 나타나 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참, 쓰레기한테 이 한마디를 못하고 말았다.

"야, 쓰레기! 니는 어쩜 이래 내랑 똑같노, 씽크로율 백프로 아이가?"


#응답하라 1994#서태지#농구대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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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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