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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남재준 국정원장이 지난 10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 남재준 국정원장 정보위 출석 남재준 국정원장이 지난 10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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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안 보는 곳에서도 팔을 직각으로 해서 걷는다."

국정원의 한 간부가 전해준 남재준 국정원장의 일화다. 이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무인 기질'이 충만한 남 원장이기에 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다. 이 간부의 '남재준 이야기'는 더 이어졌다.

"남 원장은 역사적 평가를 굉장히 중시한다. 자신이 역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에 관심을 많이 기울인다. 그가 <징비록> 등 역사서를 즐겨 읽는 이유도 이런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그만큼 '역사적 평가'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얘기다. 이는 남 원장이 사사로움보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우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가능케 한다. 그런데 그가 대선개입 논란의 한복판에 선 '국정원 댓글공작 의혹'이 훗날 어떤 역사적 평가를 받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까?

남재준 원장 "심리전단 활동에 '일탈'이 있었다"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청사에서는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가 열렸다. 국정원 댓글공작 의혹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이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열린 국감이라 언론의 관심도 컸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작년에는 기자들이 30여 명밖에 안 왔는데 올해는 70명이 넘게 왔다"고 귀띔했다.

이날 오후 5시가 조금 넘어서야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감 결과 브리핑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뉴스'는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들이 아닌 남재준 원장의 입에서 나왔다. 남 원장이 "댓글 작업 민간인 조력자인 이정복씨에게 매달 280만 원씩 11개월 동안 지급했다"며 사건이 터진 이후 처음으로 '댓글 알바비 지급' 사실을 인정했다.    

국정원은 지난 10월 10일까지만 해도 "이정복씨에게 지급된 9234만 원(수서경찰서에서 적시한 금액)이 국정원 심리전단 예산에서 나갔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확인해줄 수 없다"고 버텼다. 하지만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국정원장이 직접 총 3080만 원의 '댓글 알바비'를 지급했다고 확인해준 것이다. 

하지만 남 원장은 곧장 '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국정원 심리전단의 활동이 잘 된 거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국정원 심리전단의 활동에 관한 정확한 지침이 없어 일탈이 있었다. 앞으로 정확한 지침을 만들도록 하겠다."

남 원장은 국정원이 '댓글 알바'를 고용해 특수활동비에서 '댓글 알바비'를 줬다고 시인해놓고도 그것을 '개인의 일탈'로 간주했다. 이는 검찰수사에서도 드러난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 의혹을 부인한 것이다. 국감이 시작되기 전 인사말에서 그가 "국정원 댓글사건의 사실 여부를 떠나 거듭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며 "댓글사건으로 국정원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됐다"라고 말한 전향적 분위기와도 거리가 멀다.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원 국정감사가 열린 4일 오전 국정원 현관에서 이헌수 기조실장(오른쪽), 한기범 1차장, 서천호 2차장이 국회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원 국정감사가 열린 4일 오전 국정원 현관에서 이헌수 기조실장(오른쪽), 한기범 1차장, 서천호 2차장이 국회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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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적 개입 인정할 수 없어 '일탈'이라 표현했다"

경찰·검찰수사 등을 통해서 확인된 내용만 보더라도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은 분명하다. 국정원은 지난 2009년 2월 원세훈 원장이 취임한 이후 세 차례에 걸쳐 국정원 심리전단을 확대·개편했다. 여기에서는 4개 팀 70여 명이 활동했다. 이들은 4대강 사업, 선거 등 '대북심리전'과는 전혀 상관없는 글을 수천 건 혹은 수만 건씩 인터넷에 올렸다. '종북세력 척결'을 명분으로 내세운 '대남심리전'이었다. 

특히 트위터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전담한 5팀은 지난해 대선 당시 402개의 트위터 계정을 관리했다. 이 가운데 292개는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직원 22명의 명의로 개설된 계정이다. 남 원장도 "22명의 직원은 국정원 직원이 맞다"고 확인해주었다. 

5팀은 이렇게 관리한 트위터 계정을 통해 여당 후보를 지지하거나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글 5만5689건을 작성하거나 퍼 날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직원이 작성하거나 퍼날랐다고 남 원장이 직접 인정한 트위터 글만 2000여 건에 이른다. 그는 "선거와 관련됐다고 의심살 만한 것은 2000여 건이고, 그 가운데 국정원 직원이 직접 (작성)한 것은 130여 건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직원 계정 글(작성-재전송 포함)로 확인한 것은 정확하게 2300여 건이다. "추가 확인이 필요"한 나머지 "2만6000여 건" 가운데 국정원 직원 계정 글이 더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국정원조차' 인정하는 직원 트위터 글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조직적 개입이 아니라면 보기 어려운 사실과 정황들이 드러났는데도 남 원장은 '개인의 일탈'이라고 주장했다. 서천호 2차장까지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자, 이날 국감장에서 일부 야당 의원들이 "그럼 (댓글작업이) 개인취미활동이냐?"고 힐난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인 김현 민주당 의원은 "남 원장이 '일탈'이라고 표현한 것은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며 "그것을 인정하면 바로 사과해야 하고, 자신의 거취문제까지 거론될 수밖에 없는데 조직적 개입을 인정할 수 있겠나"라고 분석했다.

'구조의 문제'를 '인물의 문제'로 접근해서야...

남재준 국정원장이 지난 10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질문을 듣고 있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지난 10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질문을 듣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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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원장의 '일탈론'은 국정원 개혁에 소극적인 태도로 이어졌다.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이 "국정원의 국내 정치·대선개입 문제로 시끄럽다"고 지적하자, 남 원장은 "국정원법의 문제라기보다 국정원장 개인의 의지 문제다"라고 답변했다. 이어 전임 원세훈 원장의 인사전횡을 물고 넘어지면서 "저는 정치개입에 관심이 없고, 정치에 개입할 생각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국정원 개혁을 '구조의 문제'가 아닌 '인물의 문제'로 접근하는 태도다.

특히 남 원장은 지난 10월 8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자체 개혁안을) 10월 중에 확정해 국회 정보위에 보고하겠다"고 약속해놓고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 야당 의원들이 국감장에서 이를 추궁하자 그는 "국감 기간 중에는 정보위를 열 수 없었다"라는 설득력 없는 해명만 늘어놓아 빈축을 샀다.
 
물론 일각에서는 남 원장이 취임 초기와 달리 신중해졌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한 위원은 "남 원장이 처음 취임했을 때는 정치권을 만만하게 본 것 같은데 지금은 신중해졌다"라며 "이날 국감장에서도 '송구스럽다'며 댓글사건을 우회적으로 사과했고, 여당의 NLL 대화록 음원 공개 요구에 '법적 검토를 거치겠다'고 하는 등의 변화가 있긴 하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국정원 댓글 공작 의혹을 '개인의 일탈'로 몰아가고, 그로 인해 제기된 국정원 개혁 이슈를 국내정보 수집기능 제한 등의 '국정원법 개정'이 아니라 '국정원장 의지'의 문제로 몰아가는 모습은 그토록 '역사적 평가'를 중시하는 남 원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역사는 범죄를 범죄로 기록할 뿐이다.


태그:#남재준, #국정원, #국정원 댓글공작 의혹, #국회 정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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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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