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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지난 6월 26일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당 비공개회의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대선 전 사전에 입수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같은 발언은 언론에 알려졌고, 김 의원은 자신이 한 발언 유출자를 찾아 나섰다. 같은 당 김재원 의원이 지목 받았다.

그러자 김재원 의원은 "형님 맹세코 저는 아닙니다. 저는 요즘 어떻게든 형님 잘 모셔서 마음에 들어볼까 노심초사중이었는데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형님께서 무엇이든 시키시는 대로 할 생각이오니 혹시 오해가 있으시면 꼭 풀어주시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김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김무성 의원을 찾아 90도로 인사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새누리당은 '조폭당'같다고 조롱했다.

장면 둘 지난 9월 국정원 부정선거로 정국이 첨예하게 대립하자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회담을 제안했다. 그런데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병헌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와 "윗분의 말씀만 전할 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지난달 진영 복지부 장관이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를 두고 사퇴하자, 새누리당과 친박계는 "배신자"라는 단어를 써가며 맹비난했다. 김재원 의원의 행동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발언 그리고 진영 전 장관 사퇴 과정을 보면 권력자에게는 오로지 '충성'만 있을 뿐, '배신'은 용납할 수 없다. '항명' 논란이 있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 역시 최고권력자에게 충성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는 '배신자'로 낙인될 수밖에 없었다.

"'충성'이란 국가가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 분노하는 것"

 위험한 충성
위험한 충성 ⓒ 문학동네
고위공직자는 임명권자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게 충성해야 한다. 에릭 펠턴은 <위험한 충성>(문학동네)에서 "정치에서 충성은 과대평가된 덕목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악덕'"이라고 말한다. 펠턴은 온라인 잡지 <슬레이트> 편집장 제이컵 와이즈버그의 말을 빌어, 다음과 같이 전한다.  

"'린드 존슨, 리차드 닉슨, 조지 W 부시처럼 부하들의 충성에 집착하는 대통령의 업무 수행능력은 매우 나쁘다.' 그런 대통령들은 고립될 뿐 아니라 피해망상에 젖어 '조폭과 같은 패거리의 관점에서 정치를 바라보고 결국 권력을 남용한다.'"(220쪽) 

대통령이 충성을 강요하면 당장은 짓눌러 말을 따르지만, 결과는 자신만 아니라 국가와 시민 전체에 비극이다.

하지만 '충성'이 절대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부시 1기 행정부 때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 토론할 때 충성한다는 것은, 상사의 의견과 상관없이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제시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매우 치열하게 의견이 대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결정이 이뤄지고 나면 토론은 끝납니다. 그 순간부터 충성한다는 것은, 그 결정이 자신의 의견이었던 것처럼 몰입하여 실행한다는 의미입니다."(228쪽)

박근혜 대통령은 '깨알지시'는 잘 하지만, 청와대 참모들과 각료들과 치열한 토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지시'한 말을 잘 듣는 공직자가 아니라 자기 의견을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공직자가 필요하다.

박 대통령은 왜곡과 강요된 충성을 강요하다가 몰락한 닉슨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펠턴은 "충성은 범죄를 저지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 "정치에서든 기업에서든 충성을 요구하는 리더는 고작해야 간교한 아첨꾼이나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워터게이트 특별 변호사 아치볼드 콕스는 대통령의 실각에 대해 "우리에게 필요한 충성에도 종류가 있으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고 회고했다.

국정원은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단 것은 '임무'이며,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대북심리전을 부정선거라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나라를 위해 충성했는데 어떻게 우리를 비판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댓글을 달기로 마음 먹었다면 60만명을 동원했을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군인도 있다.

하지만 펠턴은 "국가가 공정하게 운영되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다면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충성이란 국가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뿐만 아니라, 국가가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분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잘라 말한다. 국가기관을 동원해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특정 후보는 비방하는 활동을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다. 당연히 분노해야 한다. 그게 충성이다.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국가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과감히 나서서 발언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비난이 충성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의 표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조국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비판은 그만큼 중요한 비판일 것이다. 반대를 무릅써야 할 정도로 긴급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273쪽)

루소는 "경향·열정·필요에 의한 애국자"가 되도록 사람을 교육해야 한다고 했다. 무조건적 맹종이 아니라는 말이다. <위험한 충성> 원제인 '로열티'(loyalty)는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란 의미다. 마음에서 우려나는 충성, 그것도 절대 진리가 아닌데 하물며 강요된 충성, 왜곡된 충성이야 '위험한 충성'이다. 그렇게 되면 조폭같은 권력 남용으로 모두에게 비극이다.

덧붙이는 글 | <위험한 충성> 에릭 펠턴 지음 ㅣ 윤영삼 옮김 ㅣ 문학동네 펴냄 ㅣ15000원



위험한 충성 - 충성과 배신의 딜레마

에릭 펠턴 지음, 윤영삼 옮김, 문학동네(2013)


#충성#박근혜#김기춘#김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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