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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2학년 딸 아이가 공무원 시험에 붙었다. 어찌된 일일까!
대학 2학년 딸 아이가 공무원 시험에 붙었다. 어찌된 일일까! ⓒ 신광태

"나 첫 봉급타면 그 돈 전부 화천군에 장학금으로 낼까 해."

대학 2년생인 딸아이가 졸업 후 취업을 하면 첫 급여 전액을 장학금으로 내겠단다. 첫 월급으로 부모의 옷을 산다거나 선물을 구입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그 돈을 모두 고향인 화천군에 장학금으로 내고 싶다고 말했다.

2012년 딸아이는 어느 지방도시의 사립대학에 진학했다. 녀석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과(科)가 뭐 중요하냐, 국립대학을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놈의 비싼 학비 때문이다. 녀석은 결국 자신이 원하던 '언론광고학' 전공을 위해 중소도시의 사립대학을 택했다.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나보다. 딸은 지난해 장학금을 받아와선 당당하게 '국립대 가지 못한 것에 대해 기분 풀렸냐?'고 물었다. 속물근성을 제대로 들킨 것 같아 이렇다한 변명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집사람은 급히 화장실로 들어간다. '우리 딸 국립대 못 갔다는 부담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에 훌쩍이는 게 뻔했다.

대학교 2학년 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다

"아빠 어쩌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것 같아."

지난달 딸이 느닷없이 이런 말을 하는 거다. 이게 대체 뭔 말인가. 1989년, 내가 공무원시험에 응시할 때만 해도 경쟁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간 학원가 등지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도 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이제 고작 대학 2학년생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지 모른단다.

"사실 화천군에서 시행하는 특별공개채용시험에 응시했는데, 영어시험을 잘 봤대나 봐."

아내가 보충 설명할 때만해도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나만 빼고 두 모녀가 1년 전부터 '계략'을 꾸며 온 거다.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아내는 나와 상담을 해 봐야 '간섭하지 말고, 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둬!'라고 말할 게 뻔했기에 말을 하지 않았다고 변명한다.

화천군에선 지역인재 육성을 위해 공무원 특채제도를 운영한다. 벌써 4년째 접어들었다. 지역에서 중·고등 학교를 나온 학생 중 대학 2학년생(4년제 대학)을 대상으로 특별공개경쟁채용시험을 시행한다. 학점 50%, 영어 필기시험 50%.

이 제도는 현 3선 군수인 정갑철 군수가 만들었다. 전국적으로 볼 때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는 지자체 또한 흔치 않다. 강원도 18개 시군 중에선 화천군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지역인재 육성을 위해서다. 과거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대도시로유학을 갔다. 인구 감소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외지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그들은 지역에 대한 애착이 적었다. 누군가 고향을 물으면 산골마을이란 게 부끄러워 인근 도시 이름을 댔다. 민통선 이북지역 '화천'을 말하면 또 긴 보충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산천어축제'와 '이외수 감성마을'로 인해 설명이 짧아지긴 했어도 많은 사람들은 화천이 수도권에서 멀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불과 2시간 거리인데도 말이다.

사법시험 합격 세 자매 "보도자료 회수해 주세요"

"보도자료 보낸 것을 모두 회수해 주세요."

몇 년 전 내가 화천군청 홍보담당으로 있을 때, 세 자매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소식이 있었다. 당시 모두 서울에 살고 있었지만 고향은 화천인 사람들이다. 보도자료 작성을 위해 큰언니라는 사람과 전화인터뷰를 했고, 보도자료로 소개해도 된다는 승낙도 받았다. 그런데 언론사에 보낸 보도자료를 모두 회수해 달라는 거다.

동생들이 시골에서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과 시골출신이기에 엘리트 집단에서 소외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그 사람들이 판사가 되건 변호사가 되건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법률적 잣대를 어디에 둘지 참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갑철 군수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화천출신이란 자긍심과 지역에 대한 애착심을 갖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그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 '지역출신 학생들에 대한 공무원 특채제도'와 '학습관 운영제도'이다. 결과는 외지에서 학습관 입교를 위해 산골마을로 전학을 오는 현상. 즉, 과거와 180도 다른 역현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공무원 특별경쟁채용시험에 합격한 아이들에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일정액의 장학금도 준다. 조건도 붙였다. 대학을 마칠 때까지 B학점 이상유지, 토익점수 720점 이상 획득, 졸업 후 행정학 점수 60점 이상 이수. 노력 여하에 따라 크게 어려운 건 아니다. 단, (장학금을 받고) 지역 공무원 되기를 포기 했을 경우 지급된 장학금은 모두 회수된다.

지역에 대한 애착, 아이의 생각이 바뀌었다

"아빠, 나 친구들과 약속 때문에 이번 주엔 집에 못가."

딸아이는 자주 그런 말을 했었다. 학교로부터 집까지 멀리 떨어져 있어 번거롭기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공부할 여건이 되지 않기에 그런 핑계를 댔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괜히 콧등이 찡해진다.

아이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 못했다. 전체 학생 중 중간 정도 유지했지만, 영어는 유독 잘했다. 딸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1년간 영어 과외를 시켰기 때문이다. 당시엔 엄마의 지나친 등살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과목보다 좀 처지면 어떻다고 그 난리를 피우는지 (간섭은 안 했지만), 그것이 불만이기도 했다.

"선생님이 영어 잘한다고 칭찬해 줬어."

이후 영어실력이 급상승했었나 보다. 선생님이 칭찬을 해 주었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가!' 이후 녀석은 (칭찬을 들은 게 신나서) 주구장창 영어공부에만 매달렸던 것 같다. 그것이 결국 공무원 시험합격의 결과로 이어졌다.

"화천군 인구가 몇 명이야? 또 유명한 관광지는 뭐가 있어?"

지역에 대해 통 관심이 없던 딸아이는 요즘 안하던 질문이 잦아졌다. 공무원이 되려면 그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어떻게 첫 봉급을 전부 장학금으로 내겠다고 했을까. 한없이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녀석이 지역사회에 대해 고마움을 말하는 것을 볼 때 참 대견스럽다는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관광기획 담당입니다.



#화천#화천군#정갑철#지역인재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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