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에서 '외모'는 계급이다. 외모 외에도 직업, 학벌, 돈 등 계급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가 있지만 가장 큰 요소는 외모일 수밖에 없다.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첫인상이라는데, 첫인상에는 외모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제 외모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암담한 시대가 됐다. 연애도, 취업 면접도, 인간관계도. 외모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면 불이익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돼버렸다.
자기 관리가 외모 관리가 된 시대다. 무릇 자기 관리라면 능력을 계발하거나 시간과 건강을 관리하는 뜻이어야 마땅하지만, 다른 어떤 것이 뛰어나든 뚱뚱하면 자기관리에 실패한 사람이 된다. 사람들의 시선도 견디기 힘들다.
이런 시선은 대부분 여성들이 받는다. 최근 남성들도 외모 관리 대열에 뛰어들었지만 여성에 비하면 아직 견딜 만한(?) 상황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의 시선을 견디며 침묵해온 여성들이 드디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를 한국여성민우회가 모아 <뚱뚱해서 죄송합니까?>란 책으로 만들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성평등한 민주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운동 단체다. 만약 다른 단체나 연구자가 이런 책을 썼다면 모르겠지만, 한국여성민우회가 낸 책이라 그 진정성이 느껴진다.
엘리베이터 먼저 탄 엄마... 왜 사과했을까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 <뚱뚱해서 죄송합니까?>와 같은 책이 나오지 못한 것은 "못생긴 '오크녀'의 자기변명이자 피해의식이라는 재갈에 물려 거의 모든 여성들은 발언권뿐만 아니라 신체적·심리적·사회적 생사여탈권을 박탈당해"왔기 때문이다.(124쪽)" 여성의 권리를 찾으려는 운동을 보는 시선에서도 외모지상주의가 있는 것이다.
<뚱뚱해서 죄송합니까?>의 내용처럼 뚱뚱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첫 장소는 가정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집에서 "살 빼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매번 볼 때마다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지겨울 만도 한데 그칠 줄을모른다. 이제는 무덤덤하지만 "뚱뚱한 아들은 창피하다"는 말을 듣고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식구를 보듬어 줘야 할 가족마저 그런 눈치를 주니 어느 누가 세상의 시선을 견딜 수 있을까.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는 일이 있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어머니랑 같이 고층 아파트 사는 친척 집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있었던 일이에요.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다가 중간에 멈추고 어떤 아저씨가 타는 순간, 무게가 다 차서 '삐~'하는 거예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있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완전 소심하게, "죄송합니다" 이러시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제가 엄마한테 "엄마가 뭐가 죄송해, 우리가 먼저 탄 건데!" 그러니까 엄마가 "내가 뚱뚱해서 그래" 그러시는데…. 어린 마음에 가슴이 너무 아픈 거예요. 왜 우리 엄마가 먼저 탔는데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싶고요."- <뚱뚱해서 죄송합니까?> '빅뷰티'의 인터뷰 중에서이 인터뷰를 보고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가장 앞에서 타려고 한다. 조금 늦게 엘리베이터를 타 '삐' 소리라도 울리면 내가 조금 더 먼저 탔음에도 덩치 때문에 스스로 눈총을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이런 사회가 됐는지 알 수 없다. 뚱뚱한 게 '죄'인 사회,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회, 생각할수록 최악이다.
뚱뚱한 사람들은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나서거나 뭉치지 못한다. 미국처럼 뚱뚱한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이미 뚱뚱한 것이 '죄'라고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뚱뚱한 사람마저도 그렇게 믿는 마당에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뚱뚱해서 죄송합니까?>란 책이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책의 2부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목소리는 힘이 약하지만 다수의 목소리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한국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끊임없이 "외모 관리를 해야 사랑을 받고, 취직이 되며, 자신감과 자기애가 생기는 현실 자체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124쪽) <뚱뚱해서 죄송합니까?>는 비록 작은 책이지만, 이 작은 씨앗을 통해 뚱뚱한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오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 http://picturewriter.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