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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금광면 옥장동 이장 공동혁(36)씨. 그는 요즘 어딜 가나 막내다. 집에서도 1남 4녀 중 막내고, 마을에서도 성인 중에서 막내고, 금광면 이장단에 가도 막내다. 금광면 이장단에서 30대 이장은 본인이 유일하단다. 모두 40대 이상이다.

심지어 그의 부친의 동기들도 아직 이장을 맡고 있다. 이장단 회의에 가면 간혹 이런단다.

"아, 만식이네 아들 아녀. 아버지도 이장 잘 봤는디 아들도 이제 이장 보는 겨."

그는 마을에서도 집에서도 금광면 이장단에서도 막내라고 했다. 아버지 고 공만식씨에 이어 2대째 이장을 보는 그는 아버지 같은 어르신들을 섬기기에 바쁘다.
▲ 공동혁이장 그는 마을에서도 집에서도 금광면 이장단에서도 막내라고 했다. 아버지 고 공만식씨에 이어 2대째 이장을 보는 그는 아버지 같은 어르신들을 섬기기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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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그의 부친 고 공만식씨도 10년 정도 이장을 맡았다. 농사도 열심히, 마을 일도 열심히, 금광면 이장단 일도 열심히 한 결과, 금광면 사람들 중 그의 부친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공동혁 이장은 "아버님 덕분에 사람들에게 점수를 많이 얻는 편"이라고 했다.

막내인 그가 어떻게 이장이 되었을까

고교시절까지 안성에 살았던 공 이장은 대학교와 대학원을 청주에서 다녔다. 그의 꿈은 공무원이었고, 여기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공무원이 되어 있었을 거라고 했다. 6년 전 부친의 병세가 위독해지는 바람에 그의 운명의 시계가 바뀌었다.

5년 전, 교사가 꿈이던 아내를 데리고 귀향을 했다. 부친은 5년 전 별세했다. 홀로 되신 어머님과 농사를 지어야 했다. 부친은 30년간 인삼농사를 지어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부친의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가 요즘 하는 농사가 만만찮다. 인삼농사 수천 평, 벼농사 7천 평, 콩, 배추, 고추, 상추, 감자 등등. 여름엔 아침6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해도 일은 다 못한다. 요즘은 자신도 아버지의 가업을 넘어 뭔가를 새로 시작했다. 새로운 작물 '라디아' 과수원을 4천 평이나 경작하고 있다.

현재 공이장의 집에 사는 가족들이다. 그의 아내 어머니 그리고 큰 아들 민성이다. 아쉽게도 작은 아들은 잠이 들어 함께 하지 못했다.
▲ 가족사진 현재 공이장의 집에 사는 가족들이다. 그의 아내 어머니 그리고 큰 아들 민성이다. 아쉽게도 작은 아들은 잠이 들어 함께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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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공무원의 꿈을 접고 귀향할 땐, 속 쓰렸죠. 여기 와서도 처음엔 농사일이 너무 힘들어 후회도 했죠. 지금은 후회할 단계를 넘어 여기 시골마을에서 제 나름의 꿈까지 생겼어요. 라디아 과수원 경작은 그 시작이라 할 수 있죠."

그렇게 농촌에서 한창 농사일에 전념할 무렵, 전임 이장이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공석이 되었다. 누구를 이장 시킬까. 마을 어르신들이 말했다. "자네가 젊고 열심히 하니께 이장 한 번 봐." 올해 4월의 일이었다.

마을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함께 극복하다

그가 이장이 되면서 마을의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왔다. 사실 그 전부터 그런 선상에 놓여 있었지만, 그가 이장이 되면서 마을은 본격적으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신중부 변전소 건립 후보예정지'로 안성이 거론 되었고, 그 중에서도 옥장동 마을은 바로 당사자였다. 마을 인근에 생길지 모를 상황이었다.

매일 마을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공이장을 포함한 금광면 이장들이 서울 한전 앞에서 일인 시위를 벌였다. 마을 사람들은 버스를 대절해서 상경하여 한전 앞에서 대규모 시위도 했다.

이 마을엔 신식가옥보다 구옥이 눈에 띌 정도로 농촌다운 풍경이다. 옥장동 마을에 눈이 내려와 더욱 산골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이런 마을에 현지인 40가구, 외지인 10가구 등 총 50여가구가 산다.
▲ 마을전경 이 마을엔 신식가옥보다 구옥이 눈에 띌 정도로 농촌다운 풍경이다. 옥장동 마을에 눈이 내려와 더욱 산골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이런 마을에 현지인 40가구, 외지인 10가구 등 총 50여가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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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후보예정지로 적합한지 사전 답사를 하러 오던 날은 휴전선 경계근무를 방불케 했다. 한전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주민들이 단결해서 마을을 지켰다는 거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이 마을만 한 게 아니라 인근마을을 포함한 금광면과 안성시에서 함께 했다.

"아이구 정말 난리도 아니었어유. 날마다 사람들이 오가고, 전경들이 에워싸고. 이러다 마을이 끝장나는 거 아닌가. 생존터전을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정말 잠이 안 왔어유. 이제야 말이지만, 텔레비전에서 데모 하는 거 보면서 뭐라 했는디. 이제 그 심정이 이해가 가네유."

공 이장의 모친 우순분(65)씨의 증언이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왕가네 식구들(KBS 주말드라마)>에서 "에효효, 고저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녀"라고 말한 나문희씨의 대사를 말하며 웃었다. 그랬다. 지금은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도저히 끝날 거 같지 않던 싸움은 그들의 승리로 끝났다. 신중부변전소 부지는 지난 7월 19일 다른 지역으로 선정됐다. 그렇게 결정되던 날, 주민들은 얼싸안고 춤을 췄다. 이 난리 전까지는 마을 일에 소홀히 하던 주민들, 특히 외지에서 이사 온 주민들이 같이 힘을 합했다. 함께 일을 이루고 나니 서로 화합하고, 교류가 잦아 졌다.

"마을 최고 자랑은 모두가 한 식구처럼 산다는 거"

옥장동 마을은 안성 끝자락에 있다. 나무가 주원료이었던 시절엔 마을 주민들이 나무를 해서 팔아먹고 살았다. 워낙 숲이 울창했었다. 그 정도로 그 옛날부터 산골마을로 이어져왔다. 지금은 하루에 10회 정도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그래도 마을은 52가구 180여명(아이들까지 모두 합하여)이 산다하니 꽤나 인구가 많은 편이다. 이리 많은 이유? 그건 이 마을이 조용하고, 시골경치가 살아있어 외지에서 이사도 꽤나 들어오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 중 10가구가 외지에서 이사 온 집들이다.

겨울이라 마을회관에서 모여 놀던 할머니들이 흔쾌히 촬영에 임해줬다. 그 중에 공동혁 이장의 어머니도 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어머니와 아버지 같은 분들이다. 공이장이 할일이 많다는 증거다.
▲ 마을할머니들 겨울이라 마을회관에서 모여 놀던 할머니들이 흔쾌히 촬영에 임해줬다. 그 중에 공동혁 이장의 어머니도 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어머니와 아버지 같은 분들이다. 공이장이 할일이 많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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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의 최대 자랑은 공동체가 살아 있다는 거"라고 자랑하는 공 이장. 이 마을은 한 집이 상을 당하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한다. 3일장이라도 내내 손님을 함께 치러낸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 한식구라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고 했다.

정월대보름이면, 마을회관에 모여 하루 종일 음식을 해먹고 논다. 풍년을 기원하는 줄다리기는 그날의 꽃이 된다.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고, 여자들이 이기면 풍년이 든다고 해서, 일부러 져준다고 했다. 이런 한 식구 같은 마을에 막내 이장님이 있어 마을은 든든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9일 안성 금광면 옥장동 마을과 공동혁 이장의 집에서 인텨뷰를 했다



태그:#옥장동, #안성 금광면, #옥정리, #공동혁,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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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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