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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 문제와 관련해서 교육부가 발 벗고 나섰다.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 선정 결정을 변경한 20개 학교 중 일부에서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더욱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을 변경한 20개 학교를 특별조사한 결과, '시민·교직단체의 항의 방문 및 시위, 조직적 항의 전화 등이 결정 변경에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8일 밝혔다.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 따라다녔다'고?

교학사 교과서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인 "왜곡된 역사 교사서 폐기하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교학사 교과서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인,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교과서 검정무효화 국민네트워크 회원들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교학사 교과서 폐기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교학사 교과서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인 "왜곡된 역사 교사서 폐기하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교학사 교과서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인,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교과서 검정무효화 국민네트워크 회원들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교학사 교과서 폐기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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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표에 따르면, '외부의 부당한 압력'이란 '시민·교직단체의 항의 방문 및 시위, 조직적 항의 전화'를 지칭하는 말이다. 나는 세 자녀 중 둘은 대학생이고, 막내가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만일, 막내가 입학하는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교학사에서 나온 교과서로 채택했다면, 개인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항의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세히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분석한 것은 아니지만, 언론보도를 통해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나를 가장 분노하게 한 것은 '현지 위안부와 달리 조선인 위안부는 전선의 변경으로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는 부분이었다. 비판이 거세게 일자, 수정했지만 이런 인식을 하는 이들이 만든 교과서로 우리 아이에게 역사를 가르치려 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일본 교과서에서 이렇게 표현이 되었다고 해도 항의를 해야 할 판에, 스스로 자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욕되게 하는 내용을 보면서 경악했다. 강제로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서 온갖 치욕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따라다녔다'고 표현한 것은 피해자들을 능멸하는 일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위의 이유 때문에라도 나는 개인적으로라도 우리 아이가 교학사 교과서로 공부해야 한다면 거부할 것이고, 항의했을 것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이런 학부모의 전화를 조직적인 항의 전화와 부당한 외압이라고 지칭했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

'부당한 외압'과 '정당한 항의'조차도 구분하지 못하는 교육부, 그래서 스스로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변경한 학교를 특별 감사한 것이 오히려 '부당한 외압'이라는 사실을 인지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왜, 교육부는 그토록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목을 매는 것일까? 의문이다.

박정희·전두환을 위해 기도했던 날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는 일이 벌어졌다.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국정교과서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으니, 국정 교과서 한 종을 만들어서 교육하자는 이야기다.

나는 '국정교과서'로 공부한 세대다. 1970년대 유신독재를 미화하는 것은 물론이요,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을 깎아내리고 전두환을 미화한 교과서. 해마다 대학시험 문제엔 그들의 치적과 관련된 시험문제가 단골문제로 등장했다. 그렇게 왜곡된 교과서로 배우면서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대한 찬양과 전두환의 정의사회구현에 대한 찬양은 내게 왜곡된 역사를 주입했던 것이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야, 박정희 유신체제가 얼마나 큰 문제가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까지 역사를 배우며, 그토록 증오하고 미워하던 이들이 이 역사를 참되게 이끌어가던 이들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신앙적으로도 국가의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박정희를 위해서, 전두환을 위해서 기도했던 날들이 치욕스러웠다.

1979년 독재자 박정희가 암살되었을 때에는 천지개벽이 일어날 줄 알았으며,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지는 줄로만 알았었다. 위대한 영도자를 잃은 대한민국은 더는 희망이 없는 줄로 알았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왜곡된 국정교과서 때문이었다. 유신체제 하에서 역사의 진실은 철저하게 가려졌고, 진실은 반국가적인 행동처럼 가르쳐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한국사 교과서 채택과정에서 생긴 문제들은 왜곡된 역사의 기술에 있음에도, 그것을 바로 잡으려 하기보다는 한 발 더 나아가 '국정교과서'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에는 유신독재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왜곡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통치권자의 아버지를 역사적으로 냉엄하게 평가하는 일, 그것이 국정교과서를 통해서 가능할까? 미화하는 일들은 가능할지언정,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물 건너갈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까? 또 왜곡된 역사를 배우고, 독재자를 찬양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른 교과서도 아닌 한국사 교과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쓰여야 하며, 현행처럼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는 걸러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런 과정들, 문제가 있는 교과서를 걸러내는 과정들에서 생겨나는 '시민·교직단체의 항의 방문 및 시위, 항의 전화 등'을 부당한 외압이니, 조직적인 항의전화니 하며 호들갑을 떠는 것은 교육부의 할 일이 아니다. 교육부는 오히려, 이런 시민·교직단체나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 등을 고마워하고, 독려해야 할 것이다. 객관적으로 역사를 기술했을 때에 이들은 아낌없이 지원해줄 것이다. 우리네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 누가 그것을 마다하겠는가?

이번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률이 0.11%라고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교과서를 검인해준 교육부, 게다가 정당한 항의조차도 부당한 외압이라고 주장하는 교육부, 그런 교육부가 주관하는 제도교육, 그래서 걱정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이런 식이라면 과연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배우고 기억할 것인가?


#교학사#역사왜곡#국정교과서#한국사#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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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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