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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어머니와 며느리. 드라마 <백년의 유산>의 한 장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드라마 <백년의 유산>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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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기를 데리고 예방 접종을 위해 소아과로 갔다. 가까이 살고 있는 친정엄마와 함께 가는데 친정엄마가 "내가 밀어볼래, 내가 밀어줘야지!"라며 내 손에 있던 유모차를 홱 빼앗아 잡아당겼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싶었나보다. 아니면 내가 힘들까봐 도와주고 싶었나 보다'라며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 뒤를 따랐다.

며칠 뒤. 아기를 재우며 아기 옆에서, 스마트폰으로 자주 가는 '엄마들 인터넷 카페'에 들어갔다. 제목은 '시엄니 때문에 미치겠음(펑예정)', 댓글이 14개인 글이 있었다. 글쓴이가 시어머니와 함께 아기를 데리고 장을 보러 가는데, 시어머니가 아기 유모차를 끝까지 자기가 끌겠다고 우기며 뺏어가더란다.

글쓴이는 왜 시어머니는 내 아기를 만나기만 하면 자기가 엄마인 양 진짜 엄마 대신 당신이 유모차를 끌고 아기를 물고 빨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하소연했다. 시댁에만 가면 아이를 뺏기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댓글들은 자신들의 여러가지 사연을 예로 들며 글쓴이를 위로하고 있었다.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이건 어제 친정엄마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 아닌가?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하물며 날 도와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그분은 유모차를 끌어주는 시어머니에게 '아기를 뺏기는 기분'이 들었던 것일까? 시어머니의 손주에 대한 애착이 우리의 상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을까? 그런 거였다면 댓글을 단 사람들의 시어머니도 역시 그랬던 걸까? 아니면 같은 행동과 같은 말을 한 주체가 '시어머니'여서 그랬던 걸까.

결혼 4년 차. 같은 말도 시어머니가 하셨을 때와 친정엄마가 하셨을 때 다르게 들린 적이 있었다. 아니 많았다. 그 중의 하나는 "요새 아빠들 힘들단다. 옛날 아빠들은 집에 들어오면 쉬었는데, 요새 아빠들은 일 끝내고 들어와도 아기들 봐줘야 해서"라는 말이었다. 친정엄마가 그 말을 했을 때는 '엄마가 사위 생각 끔직이도 하는구나'라고 받아들였는데, 같은 말을 시어머니가 하시니 '참 내, 그럼 종일 나만 애를 봐야 하는건가? 남편 아이이기도 한데. 나도 일하는데'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또 한번은 오랜만에 아기를 보고 친정엄마가 "애가 좀 마른 것 같다"라고 했다. 그때 난 '애가 살이 빠졌나? 요새 다른 때보다 좀 덜 먹고 많이 자더니 그래서 그런가?'라고 걱정했다. 그런데 비슷한 말을 시어머니가 하셨을 때는 '멀쩡하구만 뭐가 빠졌다는 거지? 예쁘기만 한데'라고 생각하며 언짢아했다.

'남편 옷 한 벌 사줘라' 똑같은 말인데... 어쩔 수 없는 '며느리'인가봐

언젠가 친정엄마가 "심서방 양복이 낡았더라. 한 벌 사줘라" 했을 때는 '내가 신랑한테 너무 무심했나? 양복 좀 점검하고 이번 주말에 나가 근사한 것 한 벌 해줘야지'라고 생각하고선, 시어머니가 "아들 양복 살 때 되지 않았니?"라고 하셨을 때는 '내 신랑인데 어련히 알아서 해줄까봐. 365일 티 딱 한 장 산 나는 안 보이시는갑다'라고 서운해한 나였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며느리'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글을 쓴 분이, 그리고 댓글을 남긴 분들이 기분이 나빠진 이유는 그 말과 행동의 주체가 친정엄마가 아닌 '시어머니'여서 그랬을 거란 결론에 도달했다. 그분들도 평범한 갑남을녀들이라면, 친정엄마가 유모차를 끌었을 떄 그런 기분이 들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요새 아빠들 힘들단다. 옛날 아빠들은 집에 들어오면 쉬었었는데, 요새 아빠들은 일끝내고 들어와도 아기들 봐줘야 해서", "애가 좀 마른 것 같다", "심서방 양복이 낡았더라. 한 벌 사줘라"라는 같은 말에 다른 마음을 품었던 것처럼.

가끔 우스갯소리로 친정엄마에게 이런 말을 한다.

"엄마는 하루에도 몇번씩 나에게 '망할년'이라 하지만 난 그게 하나도 기분 안 나빠. 마음에 품어두지도 않지. 그런데 절대 그러실 리 없지만 만일 시어머니가 나에게 그런 말을 단 한 번만 하신다고 해도 아마 평생 마음에 쌓아둘 거야. 어쩌면 매일 그거 하나 때문에 내가 신랑을 들들 볶아대겠지?"

우스갯소리라지만 어쩌면 이 말 안에 흔히 말하는 '고부갈등'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보살처럼 베풀 줄만 아시는 넉넉한 웃음의 시어머니를 만난 운 좋은 나 같은 며느리도 이런 글을 쓸 때 친정엄마는 '엄마', '~라고 할 때'라고 하면서 시어머니를 쓸때는 '어머니', '~라 하실 때'라고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시어머니가 엄마처럼 그저 편하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우리는 엄마와 딸처럼 지내자"라고 약속한 고부 사이가 있을지언정 30여 년 혹은 그 이상을 모르고 살아온 사이가 엄마와 딸이 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시어머니가 하신 마음 쓰이는 말씀을 '우리 엄마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면', 반대로 며느리가 한 서운한 말을 '내 딸이 나에게 한 말이었다면'으로 바꿔 생각한다면 그 수많은 말에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고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진짜 '가족'으로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민족의 대명절 설이다. 명절이 지나간 자리에는 꼭 가족 간의 불화, 일시적으로 높아지는 이혼율이라는 신문 한 칸의 기사가 남는다. 그 기사가 가족 간의 미담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역지사지로 생각하고 배려하는 명절을 쇠기를 바란다.


#고부갈등#명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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