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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좀 하고 싶었습니다.
 자랑을 좀 하고 싶었습니다.
ⓒ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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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질 좀 하고 싶었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엔 삽시간에 '좋아요' 건수가 250여 건을 넘어섰습니다. 댓글도 무려 190여 개나 달렸구요. 온통 축하한다는 내용 일색입니다. 그 중 재미있는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빠가 365일 늦게 들어온 게 주효했던 거 같습니다.ㅋ 난, 절대 아빠처럼 되지 말아야지 굳은 결심을 하고…."

나는 아들 녀석이 고3 졸업할 때까지 진학상담 한 번 한 적 없습니다. 학교생활은 어떤지 상냥하게 물어본 적도 없습니다. 늘 직장일 때문이란 핑계로 술이나 마시고 한밤중에 귀가 한 기억밖에 나질 않습니다.

시골마을의 인재육성 정책, 그 혜택이 내게 올 줄이야

"아빠, 나 ○○○대학교 사회과학 계열에 합격했어."
"그래. 축하한다."

지난해 12월초, 평소 내게 전화를 잘 하지 않던 아들 녀석이 대학에 합격했음을 알려왔습니다. 이어서 걸려온 아내의 전화. "아들한테 들었지? ○○○대학교라잖아". 그 대학이 뭐 대수라고 호들갑이냐는 투의 내 말에 아내는 "오늘은 제발 술 마시지 말고 일찍 들어와서 이야기 좀 하자"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런 저녁 미팅.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 들어간 내게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아내는 아들의 대학 입학 건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없었습니다.

"아드님이 ○○○대학에 들어갔다구요? 진짜 효자네. 축하해요."
"네, 고맙습니다."

우연히 만난 마을 어느 아주머님 한 분의 축하인사.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시골학교 출신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했으니) 축하한다는 것 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뭐가 효자라는 건지. 큰아이도 이제 대학 3학년에 올라갑니다. 작은아이 역시 사립대학에 합격을 한 겁니다. 주거비용, 학자금 등을 다 더하면 연간 큰 부담이 되는 금액입니다.

"당신 애 아빠 맞지? 그런데 그렇게 관심이 없냐? 화천군 향토인재 양성 조례 알아? 몰라?"
"들어보긴 했는데, 그건 왜?"
"그러니 당신하고는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거야."

화천군에서는 지역인재 육성을 위해 '화천군 향토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회 설치 및 운영조례'를 제정 운영 중입니다. 이를 위한 장학금 조성액도 40여억 원에 이릅니다. 금액의 대부분은 산천어축제 종료 후 기관, 사회단체에서 기부한 금액과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조례내용 중 '특별장학금'이란 조항이 있습니다. 입학 전년도 국내 주요 대학평가 기관에서 발표하는 대학평가순위에서 1위~5위에 해당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입니다. 단서 조항도 있습니다. 입학할 때 300만 원을 지급하고, 이후 학기 평균점수가 3.0 이하일 경우 장학금 지급은 중단된다는 내용입니다.

인재육성을 위한 제도이다 보니 조건도 붙였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지역에 위치한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겁니다. 아내는 그 기쁨을 같이 나와 함께하고 싶었는데 난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갔던 겁니다.

사교육비도 들지 않았는데 대학에 들어간 이유, 이렇습니다

정갑철 화천군수로부터 표창장을 받는 아이. 제 아들입니다.
 정갑철 화천군수로부터 표창장을 받는 아이. 제 아들입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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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어떻게 됐대? 또 △△△는?"
"글쎄 뭐, 한 애는 지방의 어느 대학교에 갔고, 또 한 아이는 재수를 하기로 했다나봐."

아내에게 이 질문을 했던 이유는 아들이 어렸을 때 가슴 아픈 추억 때문입니다.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 내 주위 동료직원들은 하나둘 인근 도시로 이사를 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고들 했습니다.

시골과는 다르게 도시의 학교는 질적인 면이나 교육여건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담임선생님의 '아이가 참 총명하다'라는 말을 들은 아내는 기쁨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곤 했습니다. "도시로 나간 또래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게 해 주려면 우리도 나가야 하는데"라는 아내의 넋두리에 "그 속물근성 좀 버려라"라는 말로 일갈했던 기억도 납니다. 솔직히 나야 왜 나가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빚을 낼 상황도 못되는 형편. 아이를 볼 때마다 그것이 늘 아내의 가슴 깊은 곳에 응어리로 자리했었던 모양입니다.

"아이의 사교육비 어떻게 감당하셨어요?"

아이의 대학 합격이 확정된 후 도시의 어느 지인이 내게 물었던 말입니다. 사실 아이가 고3이 될 때까지 사교육비는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화천군에서 운영하는 학습관 때문입니다. 지역인재 육성을 위해 군에서 직영하는 학습관. 시험을 통해 입교를 한 아이들은 일주일에 딱 한 번. 일요일 오후에나 귀가를 합니다. 학습관에 입교한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면 집으로 가는 대신 학습관으로 들어가 밤늦은 시간까지 별도의 수업을 받습니다.

과거 입학 시즌만 되면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도심지로 빠져 나가는 아이들. 인구감소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학습관을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2009년 문을 연 이래 4년제 대학 전원합격, 서울의 주요대학 진학 등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입시철이면 감소하던 지역인구는 오히려 조금씩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외지의 아이들이 학습관 입고를 위해 전입을 오기 때문입니다.

"그만 좀 촐싹 거려라". 상을 받을 때마다 "아들 파이팅!"이라고 환호하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내게 아내가 내 옆구리를 쿡 찌릅니다. "(상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과 학부모 입장도 생각해라"는 의미인 듯했습니다.

멋진 녀석들... 부디 지역을 위해 훌륭한 역할을 해 주기 바란다.
 멋진 녀석들... 부디 지역을 위해 훌륭한 역할을 해 주기 바란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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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신문방송학과를 지망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졸업 후 기자가 되고 싶다는 말도 했구요. 세태에 영합하지 않고 세상을 밝게 만드는 멋진 기자가 되길 희망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화천군, #향토인재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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