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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달(음)의 기운이 꽉차오른 정월대보름은 만물과 사람을 위한 온 소망을 기원하는 날이다.

충남 예산군 대술면 마전2리(이장 이영근)에서 맞은 보름 아침, 요즘엔 시골에서도 보기드문 동제가 열렸다. 산 아래 조용한 마을 중심에 뿌리를 박은 정자나무는 500년 풍상을 맞으며 그 유장한 세월의 나이테 속에 세상만사를 담고 수호신이 됐을 터이다.

 마을 안의 정자나무 아래서 주민들이 모두모여 목신제를 지내고 있다.
 마을 안의 정자나무 아래서 주민들이 모두모여 목신제를 지내고 있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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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부럼을 깨고 일어난 마을 어른들이 정자나무 앞에 제물을 진설한다. 네모반듯한 떡시루가 올라오고 잘생긴 돼지머리도 자리를 잡는다. 대추, 밤, 배 곶감, 사과도 빠지지 않았고 술과 포가 갖춰지자 정자나무 아래는 금새 푸짐해진다.

"나 어릴 적에 이 나무가 이만큼은 더 컸는데 새마을 운동때 나무 아래를 콘크리트로 포장한 뒤로 60년이 지나며 폭삭 늙어 버렸어."

박승균 전 대술농협 조합장은 사람 편리 위주의 개발여파 속에 노거수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다.

그는 마전2리 동제의 유래에 대해 "예전엔 산제당이 있어 해마다 당산제를 올렸는데 제를 올리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맥이 끊겼어. 그런데 마을에 교통사고 같은 우환이 자꾸만 생겨 목신제를 올리게 됐지"라고 설명했다.

동제의 여러 형태 중 목신제는 산신제와 달리 법도와 가림이 엄격하지 않고 남녀 구분없이 전체가 한데 어울려 무사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잔치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제물이 모두 차려지고 동민회장인 박찬종씨가 유사(제주)로 나서 첫번째 잔을 올린다. 그리고 박승균씨는 축문을 읽어내려간다.

"유세차~ 우리 마을 수호신께 정성들여 주가포를 올리고 올 한해도 무사안녕과 대풍이 이뤄지기를 비오나이다. ~ 흠향하옵소서~"

대부분 70대가 넘어 보이는 30여명의 주민들이 연이어 잔을 올리고 환한 얼굴로 덕담을 주고 받으며 기원은 이어진다. 어른들의 축원에는 자신들을 위한 복 보다 대처로 나간 자식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바람이 더 컸으리라.

마전2리 목신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마을엔 위하는 나무가 두 그루다. 이번엔 마을 어귀에 있는 노거수에 바칠 젯상준비가 다시 시작된다. 주민들에 따르면 마을 안에 있는 정자나무의 아들뻘이 되는 나무란다. 수령도 310년으로 젊다.

노거수 아래 정성을 들인 제물이 차려지고 이번엔 나무에서 가까이 살아 보살핌을 한 번 더 준다는 허인성씨가 가장 먼저 잔을 올린다. 기원축문은 생략하고 주민들은 똑같이 정성을 다해 절을 올리고 축원을 드린다. 그리고 저마다 소지를 태우며 오늘의 기원을 하늘로 보낸다. 모두 마음이 평안해져 맑은 표정이 된다. 갑오년 정월 마전2리는 행복하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마을동제#목신제#산신제#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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