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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 공즉시색…, '공'이란 한 글자, 심오한 뭔가가 있을 것 같고,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결코 쉽지 않은 말입니다. 공(空)을 풀어 말하자면 비유비무(非有非無,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님)로서의 무자성(無自性)입니다.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지 도대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 뭔지 헷갈립니다. 저는 어려서 들었던 이야기 속에서 처음으로 공이라는 것을 생각해 봤습니다.

할머니가 얼음과자를 통해서 체험한 '공'

옛날에 손자라면 끔뻑하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시골에 살던 할머니는 한여름에 서울엘 가게 되었습니다. 서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할머니는 시골에서는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얼음과자(아이스께끼)를 한여름에 맛보게 되었습니다. 시원하고 달달한 게 참 맛있었습니다. 이 무더운 여름에 얼음과자를 먹으며 좋아할 손자 모습이 영 떠나지 않았습니다. 시골로 내려가던 날, 할머니는 얼음과자를 사 보따리에 꽁꽁 챙겼습니다.

할머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꽁꽁 싸맸던 보따리를 부랴부랴 풀었습니다. 하지만 보따리를 풀고 보니 얼음과자는 보이지 않고 오줌을 싼듯한 흔적만 남았습니다. "이 놈이 오줌을 싸놓고 어디로 갔냐"며 보따리 구석구석을 다 찾아봤지만 어디에서도 얼음과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요즘 눈높이로 보면 참 어리석기 그지없는 이야기 같지만 '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단면이라 생각됩니다.

할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얼음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게 되었습니다. 보따리에 분명 쌌으니 있는 것이지만 보따리를 풀었을 때는 보이지 않았으니 없는 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을 조금 풀어 이야기하면 얼음은 온도(인연)에 따라 있는 것이 되기도 하고 없는 것이 되기도 하니 공한 것이 되는 겁니다.

얼음이 녹은 물 또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물은 얼음만 되는 게 아니라 수증기가 되어 구름이 되기도 하고, 좀 더 본질적으로 들어가 보면 두 개의 수소와 하나의 산소가 공유결합이라는 관계(인연)를 맺을 때에만 존재하는 상일뿐이니 이 또한 본질적으로는 공한 존재가 되는 겁니다.

얼음과 물만 공한 게 아닙니다. 시간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습니다. 100년쯤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하루정도는 별 것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일생인 하루살이 입장에서 보면 하루는 일생의 전부이니 결코 가벼이 생각 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시간 또한 어떤 스케일로 보느냐에 따라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공이 되는 겁니다. 

공을 깨닫는 27가지 길 <공>

<공>┃지은이 용타┃펴낸곳 민족사┃2014.1.27┃1만 원
 <공>┃지은이 용타┃펴낸곳 민족사┃2014.1.27┃1만 원
ⓒ 민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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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은이 용타, 펴낸곳 민족사)은 불교의 근본 가르침과 선불교, 현대 심리학, 상담학 등을 받아들여 동사섭을 창시한 용타 스님이 공을 깨닫는 길로 내놓은 27가지 길을 가리키고 있는 나침반이자 50년 수행의 결정체입니다.

공을 궤변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공을 새긴다는 것은 여유와 지혜를 가져다주는 밑바탕이자 보고입니다. 여유가 없는 삶은 당황하게 되고, 집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유 있는 삶(생각)은 당황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할머니가 얼음이 온도에 따라 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아셨다면 얼음이 녹지 않을 방법을 강구하셨을 겁니다. 얼음이 녹지 않는 방법을 강구 할 수 없었다면 얼음과자를 아예 사지도 않았을 겁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연自然이므로 공空하다.
아버지의 정자 하나와 어머니의 난자 하나가 있다. 이 정자와 난자는 '나'일까, 자연일까? 그것을 '나'라고 이를 자는 없을 것이다.
그 정자와 남자가 합쳐져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하나의 수정란이 되었다. 이 수정란은 '나'일까, 자연일까? 물론 자연이다.
이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하여 3개월 성장했다. 5개월이 된 태아는 '나'일까, 자연일까? 역시 자연이다.
태아가 태 속에서 10개월 되어 고고의 일성을 울리며 태어났다. 이 신생아는 '나'일까, 자연일까? 물론 자연이다.
3세가 되고 8세가 되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이 아이는 '나'일까, 자연일까? 이때부터는 '나'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이 아이의 어느 구석을 봐도 99.99%가 자연이다. (후략) -<공> 74쪽 '자연고공' 중에서-

50년 동사섭으로 수행한 이고득락 결정체

용타 스님이 창시한 동사섭(同事攝), 용타 스님이 중생들과 더불어 고락을 같이하며 불도를 닦아가고자 실천하고 있는 수련프로그램을 요즘말로 풀어 표현해 보자면 '불도를 닦기 위한 눈높이 동고동락' 쯤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눈높이에서 함께하는 교육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눈높이에서 동고동락하며 공을 공부해 나가는 교재이기도한 이 책은 마음 평수를 넓혀주고, 집착으로부터 시작되는 고를 멸하게 해주는 문자사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책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부닥뜨리게 되는 근본적 27가지 공, 연기고공, 방하현공, 무한고공, 무상공, 성주괴공, 생멸고공, 불가득공, 진상고공, 가합고공, 분석고공, 억분일공, 입자고공, 파동고공, 몽환고공, 몽중고공, 성기고공, 자성고공, 자체고공, 자연고공, 의근고공, 심조고공, 염체고공, 파근고공, 파운현공, 미시고공, 원시고공, 영시고공을 주문을 외듯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새길 수 있도록 스마트 폰보다도 작은 포켓북이 함께 제공되고 있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수시로 꺼내 읽을 수 있도록 책이 돼 있어, <공>을 통해서 만나는 27가지 길은 아무런 걸림 없이 공을 깨우칠 수 있는 공한 독서가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공>┃지은이 용타┃펴낸곳 민족사┃2014.1.27┃1만 원



空 : 공을 깨닫는 27가지 길

용타 스님 지음, 민족사(2014)


태그:#공, #용타 스님, #민족사, #동사섭, #공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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