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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2014 설 계기 2차 이산가족상봉 행사에서 북측 김휘영(84, 남) 오빠에게 받은 선물을 김종규(남측) 가족들이 풀어보고 있다.
 24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2014 설 계기 2차 이산가족상봉 행사에서 북측 김휘영(84, 남) 오빠에게 받은 선물을 김종규(남측) 가족들이 풀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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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이 흘러 헤어진 남편, 부인, 자식을 만난다. 고작 100여 가족이, 그것도 단 몇 시간 동안. 이제 기약 없는 이별을 하고 나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재회는 거의 불가능하다. 아니, 불가능할 것이다. 몇 년 만에 열린 이산가족 상봉에 나 역시도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의 '야만성'을 동시에 본다.

우리는 과연 선진국인가. 일인당 산술평균 국민소득이 높다고 모두 다 선진국이 아니다. 세상에는 일인당 국민소득이 수만 달러에 달하는 나라들이 있지만 우리는 그런 나라들을 모두 다 선진국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비록 국민소득이 수만 달러에 달한다 할지라도 어떤 나라들은 소득의 불균형으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심하며 경제적 양극화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커져만 간다. 그리고 국민 개개인의 문화 수준은 높은 산술평균 소득과는 거리가 멀다. 선진국이란 필히 문화적 소양도 갖추어야 한다.

우리는 과연 문화 선진국인가. 지척에 가족을 두고도 얼굴 한 번 못 보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생사를 확인하고 편지라도 주고받거나 또는 제3국에서 숨을 죽이며 몰래 만나다가 발각이라도 되는 날엔 국가보안법에 걸려 감옥에 갈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모습 속에서 우리의 '야만성'을 본다. 과연 우리는 문화 선진국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애를 마치 우리 민족만이 갖고 있는 미덕 중의 하나인 양 '선전'을 하며 서양의 개인주의를 비웃기도 한다.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다. 온갖 민족이 모여 있는 미국에 살면서 경험한 바로는 정반대이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것을 경제에 매달리며 '나' 하나에만 집착하는 천박한 개인주의에 빠져 있다. '나'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공리주의를 비롯한 철학적 기반을 갖춘 서양의 개인주의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 증거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 언론에서 흔히 접하는 가정이나 가족의 파괴현상이다. 우리는 착각 속에 이산가족 상봉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표출한다. 그리고 일부는 이를 성사시킨 정부에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가족의 만남을 국가가 가로막고 있다니... 잔인한 '비극'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힘없이 돌아서는 상봉의 마지막 장면에선 더 이상의 소망도 품을 수 없는 절망감 마저 느껴진다. 이 만남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북에 가서 이산가족 상봉을 하고 돌아온 해외동포들은 더 이상 자신들을 이산가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보고싶으면 언제든지 가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은 한낱 정치적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는 수백 년이 흘러도 다 만날 수가 없다. 피를 나눈 가족이 만나거나 함께 살려고 하는 원초적 본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절대선'이며 우리가 '하늘로부터 받은 권리'이지, 국가나 정부의 자비와 재량에 의존해 목매어 기다리다 '아니면 할 수 없고'라는 체념 속에 포기하여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정과 사랑보다 더 강력하고 위대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 근원은 가족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자매와 헤어져 만날 수도, 얘기를 나눌 수도, 생사조차 알 길 없는 세월을 살아가게 된다고 상상해보라. 나는 그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그들을 만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갈 것이다. 그 불가능한 몸부림은 마침내 시퍼렇게 멍울진 '한 맺힘'이 되어 살아도 살아 있음이 아닌 지옥과도 같은 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미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서 '혹시나 저세상에서라도 만날 수 있을까' 피눈물 흘리며 이생의 삶을 마감할 것이다.

 2014 설 계기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 셋째날인 25일 북한 고성 금강산 면회소에서 열린 작별상봉행사에서 남측의 딸 남궁봉자씨가 북측의 아버지 남궁렬(86)씨를 떠나보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4 설 계기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 셋째날인 25일 북한 고성 금강산 면회소에서 열린 작별상봉행사에서 남측의 딸 남궁봉자씨가 북측의 아버지 남궁렬(86)씨를 떠나보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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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세상천지에 이같이 잔인한 비극은 없다. 그런데 피붙이, 형제자매, 부모를 생이별 시켜놓은 채, 남북 두 나라가 너무나도 태연하게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끊긴 인연의 끈을 방치하고 있는 두 나라에 어떤 천벌이 내려질까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 이 비극은, 이 죄악은 그 어떤 번드르르한 말로도, 그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헤어지게 된 사랑하는 가족을 국가의 허락 없이는 만날 수 없다거나, 함께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인류에 대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이며 가장 근본적인 인권의 유린이다. 북한의 인권을 비판하는 남한도 이것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다. 이산가족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 또한 엄청난 인권유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민영화'가 필요한 곳은 철도나 의료가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

해외여행에 제한이 없고(북한여행 제외)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한국정부에 제안한다. "북에 가족이 있는 남한 주민들은 원하면 누구나 북한에 가서 헤어진 가족을 만나도 좋다"고 선언할 것을. 그러면 북한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남한은 그러한 선언을 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안보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일찍이 경험했다. 6·15공동선언 이후 수십만의 남한 주민들이 북을 방문했는데 그들 때문에 남한의 안보가 위태로워졌는가?

주민들의 해외여행이 제한되어 있는 북한에게도 제안한다. "북에 헤어진 가족이 있는 남한 주민들은 누구나 북한을 방문해 가족과 상봉할 것을 허락한다"고 선언할 것을. 북한도 이를 마다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2년 사이에 6번이나 북한을 여행한 나는 평양의 호텔에서 해외동포들의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거의 매번 목격했다. 뿐만 아니라 나의 북한 여행기(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읽고 메일을 보내온 한 재유럽 동포가 나의 조언으로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과 만나기도 했다. 그 할아버지는 올 봄이나 여름에 다시 북한으로 가서 가족을 만날 예정이란다.

해외동포들은 미국 뉴욕에 있는 북한대표부나 혹은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 또는 주변 국가에 있는 북한대사관에 본인의 인적사항(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의 주소, 본적, 가족관계 등)을 알린 후, 기다리고 있다가 가족을 찾았다는 연락이 오면 비자를 신청해 방북을 하면 된다. 이렇듯 북한은 해외동포의 경우 누구나 북한을 방문해 헤어진 가족과의 상봉을 허락하고 있지 않는가.

이산가족의 전면적 상봉 그리고 나아가 주민들의 자유로운 왕래는 통일의 초석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동포로서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회복하게 된다. 동포애가 결여된 통일 시도는 "대박"이 아닌, 그야말로 "쪽박"이 될 것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운 남한이 먼저 선언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여타 나라를 여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국가는 해외여행 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 자국국민을 보호하는 역할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나머지는 관광회사나 여행사가 맡아 하면 된다.

문득 '민영화'라는 말이 떠오른다. 정작 '민영화'가 필요한 곳은 공공성을 내포하고 있는 철도나 의료 같은 분야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그리고 인간이 하늘로부터 자연스럽게 부여받은, 국가가 간섭해서는 안 되는 바로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분야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의 민영화'를 어서 빨리 추진하기 바란다.


#이산가족#이산가족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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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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