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강 : 26일 오후 2시 12분]1월 8일(수)기상해 아침을 먹은 뒤 출발하였다. 이후 고산증 적응을 위하는 날이 아니면 이런 형태로 아침을 보냈다. 몬조(2835m)에서 점심을 먹고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입산 신고를 마쳤다.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은 네팔에 속하는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것으로, 최고봉은 8848m인 에베레스트산이며 이외에도 여러 개의 높은 봉우리와 산악빙하, 빙하의 침식으로 인한 깊은 계곡들이 웅대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공원에는 탕보체(Thyangboche)와 같이 신성한 지역이 많으며, 높은 고도에 사는 다른 주민들과 비교했을 때 독특한 생활 방식을 갖고 있는 셰르파의 고향이기도 하므로 네팔에서 종교적 및 문화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몬조에서 출발하여 많은 고봉의 설산을 보면서 남체 바자르에 오후 4시에 도착하였다. 그러나몬조 도착 전 30~40분 전에 엉치부분과 우측 다리가 묵직하고 시큰거려서 큰 걱정을 하였다. 다행히 오후에는 조금 풀렸다.
남체 바자르에 오면서 우물물에서, 남체 마을 냇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네들을 볼 수가 있었다.
우물물에 있는 여인네를 카메라 렌즈에 담으려고 하니 몹시 싫어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셀파에게 물어보니 티베트 난민으로써 외부에 노출되는 꺼린다고 한다. 그런데 티베트를 포함한 소수민족들의 독립운동을 일정하게 찬성하지만 독립운동이 민중과 민족의 이익을 아니라 소수 귀족이익을 위한 봉건식 독립운동을 외세에 의존하는 방식은 찬성할 수 없다. 더군다나 소련연방 해체로 이 지역이 다른 미제의 세계패권을 위한 군사 전진기지가 된다는 것은 세계정의나 소수민족의 이익을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소수민족들이 자신의 삶과 터전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분단되고, 그러면서 자신의 언어, 습관, 풍습 등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는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의지도 문제 삼아야지만 동시에 근대성의 배타성에 그 근거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소수민족들이 자신들을 삶을 지키고 발전할 수 있도록 자치를 최대한 보장해야 할 것이다.
남체 바자르는 주말인 토요일마다 시장이 열리는 곳이다. 주로 티벳을 포함한 소수민족들이 수천 년 이상을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서 교환할 물건들을 가지고 이 높은 고지대(3440m)로 몰려들어 물건뿐만 아니라 세상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돌아갔으리라.
근대민족국가는 국민·주권·영토를 바탕으로 타자인 타민족과 자연과 함께 하는 국가 형태가 아니라 타민족과 자연을 배제·약탈·지배하면서 형성·발전해왔다.
근대의 최고의 창조물인 도구적 이성은 자신의 본능을 억제하면서 존재하기에 자기분열적이고, 동시에 타자(타인과 자연)를 배제·억압하면서 자본주의 교환가치의 극대화에 기여해왔다.
<파우스트>에서 이미 늙은 주인공인 파우스트가 영혼을 악마에 판 댓가로 자신의 욕망을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통해서 채우고, 근대 기획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댐을 기획하면서 자연 지배와 파괴의 슬픈 역사를 이미 예고했다. 화폐를 창조하여 자본주의에서 삶은 모든 가치가 교환가치가 되도록 강요하는 모습을 이미 경고하고 있다. 근대기획의 성과물들을 부인하고 싶지 않지만 부정적 결과들은 바꾸어 나아가야할 것이다.
인접한 비교적 강한 근대민족국가의 탄생 과정에서 소수민족인 티벳은 네팔·중국 등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소수민족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큰 민족국가에 분열되면서 강제 편입된 대표적인 예는 투르크족를 포함한 산악 소수 부족들이 있다.
그리고 근대의 국가의 제국주의 형태로 소수부족을 강제 병합한 사례가 많다. 영국의 스콜트랜드. 일본의 오키나와 병합, 아메리카의 인디언 문화 말살, 호주의 어보리진. 뉴질랜드의 마오리족문화의 말살, 미국의 하와이와 알래스카민족의 병합, 아프리카가 식민지가 종결되면서 국경선이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에 따라 반듯하게 그어져 있는데 이는 그 곳에 사는 부족이나 민족의 삶과 터전과는 무관하게 그어져서 지금도 분쟁을 안고 있다.
네팔을 포함한 제3세계 민중들이 자본의 비인간성이 일정하게 배제된 상태에서 삶을 질을 향상할 수 있는 방법과 전략이 없을까? 관광은 기본적으로 외부적 요인이고, 부르주아적(?) 삶에 기생하는 방식이기에 한계가 있다.
관광 산업은 네팔 국민들의 필요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생산보다는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를 확산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관광 산업은 네팔의 산업발전이 내생적 발전이 아니라 외생적 요인에 의하기에 그리스나 로마처럼 타국의 경기변동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는 네팔 산업발전이 유기적으로 발전하는데 큰 장애 요인일 뿐만 아니라 매우 불안정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하는데 장애가 된다. 네팔은 우리나라의 20~30대의 상황을 그린 <88만원 세대>에서처럼 세계 자본의 탄압 국면이 아니라 배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필자가 자본의 탄압을 옹호하고자 함은 추호도 아니다.
여기처럼 가축의 인분으로 난방용으로 사용하고, 재생에너지인 태양판으로 에너지를 얻은 생태적인 삶의 방식은 전근대적 방식과 최첨단 방식의 공존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내부적인 발전 요인 노사관계를 일정하게 극복하고 최첨단 산업시설로 생태적 삶이 가능할까? <오래된 미래>처럼 유기적이고 행복한 삶이 서양의 문명의 이기·생각·사상이 들어오면서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평하하고 부끄러하면서 서양의 문명만을 모방하려고 하였다. 자신의 전통을 현대에 접목하면서 발전하는 방식은 없을까?
세계적인 생태도시인 쿠바의 아바다, 브라질의 꾸리찌바, 일본의 기타규수,독일의 프라이부르크처럼 가능하게 하려면 주민들의 의지와 더불어 정치적인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