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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 군사력 사용 승인을 보도하는 영국 BBC 갈무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 군사력 사용 승인을 보도하는 영국 BBC 갈무리.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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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서 공식적으로 군사력 동원에 나서면서 무력 충돌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러시아 크렘린궁이 1일(현지시각) 공식 성명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력 사용 승인을 요청했다고 밝혔고, 러시아 상원은 즉각 비상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결의했다고 BBC등 외신 등이 보도했다.

러시아 헌법 제102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외에서 군사력을 사용하려면 상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로써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명령이 내려지면 곧바로 우크라이나에서 군사 공격에 나설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비상상황과 러시아 주민과 교포, 크림 자치공화국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군에 대한 위협을 고려해 우크라이나의 사태가 안정될 때까지 군사력 사용에 관한 신청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러시아의 군사 개입에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시위대가 서로 충돌을 일으켜 수백 명이 다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푸틴, 군사력 사용 전격 신청... 속내는?

앞서 반정부 시위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하고 권력을 장악한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러시아가 6천 명의 병력을 우크라이나 동남부 크림 자치공화국으로 이동시켰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과도정부의 크림반도 파견관 세르게이 쿠니친은 "13대의 러시아 항공기가 각각 150명의 병력을 태우고 크림반도 심페로폴 인근 그바르데이스코예 공항에 착륙했다"며 "러시아군 전투헬기도 무단으로 국경을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과도정부의 의장 겸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고 있는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는 러시아의 병력 이동을 사실상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으로 규정하며, 즉각 크림반도에서 철수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러시아 흑해함대의 군사 훈련은 우크라이나와의 상호협정에 따른 것"이라며 미국 존 케리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도 "우크라이나 주권을 침해하는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크림 자치공화국의 지원 요청이 있을 경우 이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만일의 가능성을 열어뒀고, 결국 하루 만에 푸틴 대통령이 군사력 사용 카드를 꺼내 들면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친러 성향의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 자치공화국 총리는 "크림 자치공화국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푸틴 대통령이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혀 러시아의 군사 개입을 위한 명분을 만들어줬다.

'경고' 던졌으나... 고민 깊어지는 미국

푸틴 대통령의 전격적인 군사력 사용 신청과 러시아 상원의 만장일치 결의는 전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에 강력한 '경고'를 던진 뒤 이뤄진 것이라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국제사회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떤 군사적 개입도 대가(cost)를 치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며 "러시아가 군사 개입을 한다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의 단일성을 침해하고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과 유럽 국가 정상들이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러시아 소치에서 오는 6월 열릴 예정인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불참하게 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독일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외무장관은 역시 성명을 통해 "최근 몇 시간 동안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에서 전개된 상황이 매우 우려된다"며 "러시아 정부는 크림반도로 군사력을 이동시킨 의도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처럼 사태가 빠르게 악화되자 미국 국무부는 우크라이나가 '잠재적 불안정' 상태라고 밝히며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 지역의 자국민에게 불필요한 여행을 취소하고 당장 떠날 것을 당부했다.

유엔 안보리의 긴급회의 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지시를 받고 정확한 사태 파악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로버트 써리 특사도 이날 크림 자치공화국에 들어가지 못했다.

혼돈의 우크라이나, 제2의 조지아 될까

우크라이나의 투르치노프 대통령 권한대행은 "러시아가 크림반도에서 '압하지야 사태' 재현을 시도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갈등을 일으킨 뒤 영토를 합병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의 자치공화국이던 친러 성향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가 분리 움직임을 보이자 조지아 중앙정부가 무력 진압에 나섰고, 러시아는 조지아를 공격했다. 

러시아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불과 5일 만에 조지아를 제압하며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의 분리 독립을 도왔고, 지금은 국가로 승인을 받은 두 공화국에 자국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하지만 친서방 성향의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것일 뿐 동계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하며 국가 이미지 개선에 힘쓰고 있는 러시아가 미국, 유럽과의 무력 충돌까지 감수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푸틴 대통령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브는 현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군사력 사용 승인이 즉각적인 군사 개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는 이번 사태가 좋은 계획으로 이어져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미국도 고민스럽긴 마찬가지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단 경고를 던지긴 했지만 아직 시리아 내전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이 또 다른 소용돌이에 개입할 여력이 없다는 분석도 있다.

오히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사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러시아를 비난하면서도, 러시아가 군사 개입에 나설 경우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인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의 경고는 푸틴 대통령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치 않다"며 "이는 러시아가 미국과 영국에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약속한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의 명백한 위반(clear violation)"이라고 강조하며 미국의 더욱 단호한 조치를 촉구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러시아 양국 간의 오래된 긴장관계가 되살아나면서 '신 냉전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미국#크림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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