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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계곡'에 다녀온 이후로, 사막에서의 지루한 사흘이 흘렀다. 볼리비아 국경을 눈앞에 두고 산티아고에 두고 온 노트북 때문에 고립된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가혹한 생활을 해야 했다. 산페드로 아타카마 마을에 단 하나 있는 ATM기는 어느 날부터 현금이 없다며 카드를 뱉어내기 일쑤였고, 관광객 때문에 생겨난 마을임에도 이곳에서 신용카드란 그저 사치품 중 하나일 뿐이었다.

ATM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가까운 마을인 칼라마로 가면 되지만, 칼라마로 가는 차비가 없는 상황. 노트북을 택배로 받기 위해 필요한 최소비용을 제외하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돈은 하루 만 원에 불과했다.

  입구에서 어슬렁 거리다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던 아타카마 마을의 어느 펍
입구에서 어슬렁 거리다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던 아타카마 마을의 어느 펍 ⓒ 김동주

도대체 닭고기가 맞는지 의심이 드는 정체불명의 고기 덩어리로 하루의 유일한 단백질을 채우고 아침과 저녁은 말라 비틀어진 지 오래인 씨리얼로 떼웠다. 식수만은 아낄 수 없는 사막의 숙소에서, 큰 맘 먹고 산 6캔 들이 맥주가 모조리 빈 깡통으로 발견된 삼 일째의 아침에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감추지 못한 채 온갖 욕설을 허공에 뱉어냈다. 아, 인간의 존엄성이란 게 결국 빈 맥주캔 앞에 무너진단 말인가. (사자마자 하나씩 먹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비극이 벌어졌던 아타카마의 숙소와 불쌍한 우리에게 요리를 해줬던 칠레 여행자
비극이 벌어졌던 아타카마의 숙소와 불쌍한 우리에게 요리를 해줬던 칠레 여행자 ⓒ 김동주

급기야 불안했던 우리는 사막임에도 냉장고가 아닌 방안에 물통을 보관한 채 날마다 조금씩 줄어가는 물을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택배가 도착하리라 예상되던 5일 째, 우리는 마지막 현금으로 우체국이 있는 마을, 칼라마(Calama)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택배가 왔으리란 확신은 없다. 그저 예상일이 그즈음이라 예상했을 뿐.

전화도 인터넷도 안 돼 확인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토니가 제 역할을 했길 바라면서 인당수로 떠나는 배에 오르는 심청의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칼라마의 우체국에서 우리는 마침내 일주일 만에 노트북을 손에 넣었다. "걱정말게나 친구. 그것이 여행이니까"라고 적힌 토니의 쪽지와 함께.

지난 4개월간의 여행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노트북을 손에 넣은 우리는 곧장 칠레를 떠나 볼리비아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좀처럼 우리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현실. 볼리비아로 떠나는 버스는 수, 목, 일, 월요일 오전 6시에만 있다. 그날이 목요일이니 다음 버스는 무려 삼일 뒤인 일요일 아침에나 있다.

여행객이라고는 우리 둘 뿐인 이 곳에서 도대체 뭘 해야 하나. 고민 끝에 도착한 관광안내소에서 우리는 뜻밖의 정보를 얻었다. 아타카마에서 바로 볼리비아 사막으로 넘어가는 여행자 투어가 있다는 것. 그리고 바로 이곳 칼라마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구리광산이 있다는 것. 광산도 관광지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어떤 것이든 '세계에서 가장' 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여행자의 본능이 아닌가.

당신이 모르는 구리광산의 비밀

  칼라마의 광장에 세워진 광부의 초상. 알고보니 칼라마는 광산도시였다
칼라마의 광장에 세워진 광부의 초상. 알고보니 칼라마는 광산도시였다 ⓒ 김동주

칠레 제1의 산업도시인 칼라마(Calama)에서는 매일 선착순 10명에게 세계에서 가장 큰 구리광산 추키카마타(Chuquicamata)를 소개하는 투어를 제공한다. 이런 도시에 광산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반신반의하며 찾아간 투어센터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결국 누군가는 돈을 내고 투어에 참여한 셈이다.

또 한 번 놀란 것은 이 무료(혹은 유료) 투어는 생각보다 매우 짜임새가 있다는 점이다. 버스에 함께 탑승한 가이드는 남미에서는 매우 드물게 아주 유창하고 명확한 영어를 사용했으며 모든 여행객이 들을 수 있도록 스페인어와 영어로 두 번씩 모든 설명을 반복했다. 이는 어쩌면 구리광산에 대한 칠레의 애착일지도 모르겠다.

  1920년에 세워진 추키카마타. 그 시작은 화려했지만...
1920년에 세워진 추키카마타. 그 시작은 화려했지만... ⓒ 김동주

버스로 30분을 달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과거 추키카마타 마을회관 건물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설명이 시작된다. '추키카마타'라는 이름은 구리광산을 이르면서, 동시에 광부들이 기거하는 마을의 이름이다. 광산의 엄청난 규모가 미처 드러나기 전인 1920년대, 사람들은 칼라마보다 광산에서 가까운 추키카마타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계속해서 파다 보니 점점 커지는 광산을 따라 추키카마타 마을도 점점 팽창했고, 급기야 광산이 마을의 코앞까지 다가오자 안전과 시설문제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터를 옮겨 지금의 칼라마를 형성했다.

결국 사람들이 떠나가버린 추키카마타는 광산만 남은 채 유령마을이 되었지만 광산은 아직도 그 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구리광산 추키카마타의 전경.
세계에서 가장 큰 구리광산 추키카마타의 전경. ⓒ 김동주

잠시 후 마주친 추키카마타 광산의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나선형으로 파내려간 도로가 이어지는 그 규모는 가로만 5km가 넘어, 최정상에서 찍어도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깊이도 무려 1km나 된다. 추키카마타 광산에서 발굴한 구리를 트럭이 싣고 다시 입구로 올라오는 데만 꼬박 1시간이 걸린다.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든 구리의 수요 때문에 지금은 칠레의 수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는 않지만, 칠레의 구리 생산량은 세계 구리 생산의 1/3에 달한다고 한다. '사막을 팠더니 구리가 나오더라'라는 거짓말 같은 현실은 칠레에게 행운의 여신 같은 존재가 되었다.

  더이상 사용되지 않는 다는 몬스터 트럭은 추키카마타의 명물이 되었다.
더이상 사용되지 않는 다는 몬스터 트럭은 추키카마타의 명물이 되었다. ⓒ 김동주

멀리서 보면 거의 점으로 보이던 일명 '몬스터 트럭'은 가까이서 보니 그 높이가 어마어마했다. 광산의 규모가 점점 커지자 효율성을 위해 컨베이어 벨트가 광물의 운송을 담당한 이래로 몬스터 트럭은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의 명물이 되었다. 바퀴 지름만 2m가 넘고, 사다리가 없으면 올라탈 수 없는 이 거대한 트럭의 타이어 하나는 2000만 원에 달한다고 하니, 광산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트럭을 유지하는 비용도 점점 커졌을 법하다.

한편,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유령마을로 변한 추키카마타의 한 켠에는 눈길을 끄는 기이한 모양의 피노키오 조형물이 있다. 과거 노동자들의 자녀를 위한 놀이공간이었지만 오랜 세월 버려져 오싹한 느낌마저 드는 그 피노키오의 모습은, 이곳에 살았던 노동자들의 삶을 엿보게 해준다. 수년간 노동자로 살면서도 자기의 구역이 아닌 이웃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그들은 광산과 지나치게 가깝게 살았던 탓에 진폐증으로 죽어갔다.

이름조차 새겨지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대충 만들어진 수천 개의 묘지는 '황량하다'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삭막하다. 이곳을 방문했던 체 게바라는 그 모습을 보고 노동자를 위한 혁명운동을 시작했다고 하니 결국, 추키카마타 광산은 칠레에게는 행운인지 모르나, 노동자들에게는 지옥이었을 수도 있다.

  배트맨의 악당 '조커' 를 떠올리게 만드는 버려진 피노키오와 죽어간 노동자들의 묘지
배트맨의 악당 '조커' 를 떠올리게 만드는 버려진 피노키오와 죽어간 노동자들의 묘지 ⓒ 김동주

돌아오는 길, 창밖의 먼지와 폐기물 찌꺼기뿐인 거리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던 것은 돌아가야만 하는 여행자의 괜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지칠 줄 모르는 사막의 햇볕은 교묘하게 내 마음을 비춘다. 차라리 흐렸다면 덜 아팠을까?

간략여행정보

칼라마는 칠레의 북쪽 국경을 넘기 위한 마지막 교통 집결지다. 국경을 접한 볼리비아로 가는 모든 버스는 칼라마에서 출발하며, 동쪽으로는 아타카마 사막의 관문인 산페드로 아타카마가 유일한 마을이다.

광부의 도시인 칼라마의 유일한 관광자원은 추키카마타 광산으로, 칼라마 시내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매일 선착순 10명에게 추키카마타 광산 무료 가이드 투어를 제공한다. 남미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이지만, 가이드의 설명과 프로그램은 무척 훌륭하며 어차피 볼리비아로 넘어가야만 한다면 한 번 들를 만한 가치가 있다. 모든 설명은 영어와 스페인어로 가이드가 직접 진행하며 투어 도중에는 집결지에서 제공하는 안전모와 형광조끼를 착용해야 한다.




#추키카마타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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