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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새정치연합 첫 지도부연석회의에 참석해 환하게 웃고 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새정치연합 첫 지도부연석회의에 참석해 환하게 웃고 있다. ⓒ 남소연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과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통합신당 창당을 발표했다. 안철수 신당이 창당발기인대회를 열어 당명을 정하고, 안철수 의원을 대표로 선출한 것이 지난 2월 17일이니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킨 지 불과 13일 만에 신당 창당을 포기한 것이다.

도대체 그 13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안철수 신당은 100년 정당을 만들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버리고 민주당과의 합당을 결정한 것일까?

나는 앞의 기사에서 신당 합당이 참으로 놀랍고, 잘한 일이라며 그 정치사적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관련기사: '통합신당' 창당 합의, 참 잘한 일이지만... ) 그러나 잘한 일은 잘한 일이지만, 왜 안철수 신당 추진이 좌절했는지냉정히 살펴봐야 한다. 그것이 한국 정치 발전에 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 창준위 발족과 지지율 하락, 그 함수관계

그동안 안철수 신당의 추진 동력은 여론조사의 높은 지지율이었다. 그것 때문에 언론이 안철수 신당을 비중 있게 보도하고, 그로 인해 국민의 주목도 받아왔다. 그런데 지난 2월 17일 안철수 신당이 '새정치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킨 후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는 참혹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여론조사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 ±3.1% (한국갤럽만 ±2.8%)
여론조사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 ±3.1% (한국갤럽만 ±2.8%) ⓒ 한국갤럽

위의 여론조사 결과는 안철수 신당이 창당을 포기하게 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신당을 창당하면 민주당을 압도하고 새누리당과 자웅을 겨룰 것으로 기대했는데, 창준위 발족 후 여론조사 결과는 새누리당은 고사하고 심지어는 민주당에도 못 미치는 지지율이 나왔다.

정당 지지율이 이 모양이니 지방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영입하는 작업이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지지율도 낮고, 미래도 불투명한 정당인 새정치연합 후보로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안철수 의원을 위해 자신을 던져 장렬히 전사하겠다는 것인데, 그럴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창당 포기와 민주당과의 합당 외에는 길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는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지난해 4월 노원병 보궐선거에서 안철수 후보가 당선되고 신당 창당이 예상된 후 거의 일 년 동안의 여론조사에서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은 대단했다. 새누리당과 자웅을 겨뤘고, 민주당을 압도했다. 심지어 새누리당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인 조사도 있었다.

도대체 왜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이 이렇게 급락한 것일까? 도대체 안철수 의원과 안철수 신당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지지율이 이렇게 최악 수준으로 급락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 잘못도 없었다. 단지 창당을 추진한 것이 잘못이었을 뿐이다. 여론조사라는 신기루를 진짜로 착각하고 창당을 추진한 것, 바로 그것 때문에 지지율이 급락했다. 그 결과 안철수 신당이라는 사상누각이 붕괴하고 만 것이다.

창당을 본격화할수록 지지율 하락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 급락의 이유는 여론조사 방식의 변화 때문이었다. 그것은 역으로 말하면 그동안 안철수 신당이 높은 지지율을 보인 것은 여론조사의 방식 때문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안철수 신당이 실제 창당으로 나아가는 바람에 안철수 신당이 높은 지지율을 얻은 조건이 사라졌고, 그 결과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이 급락했다. 

<한국갤럽>은 안철수 신당에 우호적이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지막까지 안철수 신당에 유리한 여론조사 방식을 고수했다. 2월 17일∼20일에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정당지지율이 새누리당 39%, 새정치연합 26%, 민주당 12%를 보였다. 이 정도만 해도 안철수 신당이 창당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불과 4일 뒤에 조사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는 위의 표에서 본 것처럼 확연히 달라졌다. 새누리당 40%, 새정치연합 18%, 민주당 15%였다. 어떻게 4일 만에 이렇게 정당지지율이 달라질 수 있나? 어떻게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지지율 격차가 14%p에서 3%p로 불과 4일 만에 바뀔 수 있는가?

달라진 것은 여론조사 방식이었다. 앞의 조사방식은 먼저 새정치연합을 빼고 현재 지지하는 정당을 물은 후에 다시 새정치연합을 포함하여 "만약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연합을 창당한다면 어느 정당을 지지하겠습니까?"하고 물었다. 반면, 뒤의 조사방식은 새정치연합을 기존 정당에 포함시켜 한 번에 지지정당을 물어본 것이다.

두 가지의 조사방식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안철수 신당이 다르게 취급되는 것이다. 앞의 조사방식에서 안철수 신당은 기존의 낡은 정치를 극복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전제되어 있다. 반면, 뒤의 조사방식에서 안철수 신당은 이미 기존 정당의 하나로 전제되어 조사된다. 조사방식의 변화로 안철수 신당의 '새정치 프리미엄'이 사라지는 것이다.

올해 1월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앞의 방식이었는데, 2월 들어 뒤의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했고, 그 결과 모든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이 급락했다. 마지막까지 안철수 신당에 유리한 조사방식을 고수한 곳이 <한국갤럽>이었는데, 2월 17일 안철수 신당이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중앙선관위에 정식 등록한 이후에는 조사방식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안철수 신당이 2월 17일 당명을 '새정치연합'으로 결정한 것도 여론조사 급락에 크게 작용했다. 왜냐하면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사용되어온 '안철수 신당'이라는 통칭은 국민들에게 '안철수 신당'과 안철수 의원을 동일시하게 만들었던 반면, '새정치연합'이라는 명칭은 '새정치연합'과 안철수 의원과의 동일시를 어렵게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안철수 신당은 창당을 본격화하면 할수록 정당지지율은 오히려 떨어지는 구조적인 딜레마에 빠져있었다. 신당 창당으로 나아갈수록 안철수 신당이 높은 지지율을 얻은 조건은 사라지고, 신당의 지지율은 급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구조적 딜레마 때문에 안철수 신당은 창준위 발족 13일 만에 전격적으로 신당을 포기하고, 민주당과의 합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안철수 신당의 구조적 딜레마에 대해 이미 지적한 바 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관련기사: 한 달만에 반토막... 안철수 신당 지지율 왜 다른가

창당 본격화→지지율 하락... '안철수 신당' 딜레마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정치의 치명적 위험성

안철수 신당의 좌절은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정치가 얼마나 치명적으로 위험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경제가 시장원리에 따라야 하는 것처럼, 정치 역시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그럴듯한 논리로 '여론이 지배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 얼마나 정치발전에 해악을 끼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일 뿐 그것이 시민 주권의 기능을 대신할 수 없으며, 그 해석에 있어서도 신중해야 함을 이번 사건은 교훈으로 남긴다.

정치학자 벤저민 긴스버그가 강조했듯 여론조사는 유권자의 판단을 돕는 '소극적 지식'이어야지, 여론조사가 정치와 선거 과정을 압도하거나 지배하게 되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여론조사가 공직 후보 결정 과정을 지배하고 마치 시민의 의견을 집약한 것처럼 해석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 언젠가부터 여론조사가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되면서, 특히 민주진영은 무정형의 여론시장을 향해 지지를 확대하고 인기를 얻으려는 쉬운 길만을 추구했다. 정당과 정치인이 '정치 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주가처럼 여론조사 결과에 떠다니면서 정당 조직은 그 내부로부터 무너졌고, 그 지지기반은 포말처럼 분해되고 말았다. 서민은 소비자가 되고, 권력은 여론동원능력을 가진 사람이 지배하는 정치가 되고 말았다.

정치학자 베르나르 마냉은 '정당 민주주의'와 대비된 개념으로 '청중 민주주의(Audience Democracy)'라는 말을 사용했다. 청중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는 주권자가 아니라, 후보의 이미지나 그들이 제기한 쟁점에 반응하는 수동적 청중이다. 이번 안철수 신당의 좌절은 '청중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야당이 정권교체로 나아가기 위해 믿을 것은 정당을 강화하고, 정당 일체감을 갖는 유권자를 늘려가는 것밖에 길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새누리당과 보수 세력이 서러운 야당생활 10년 동안 갖가지 위기를 겪으면서도 얼마나 자신의 정당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정당 일체감을 갖는 유권자들을 늘려왔는지 민주당과 민주진보 세력은 배워야 한다. 그 힘든 과정 없이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 얄팍한 여론정치로 정권교체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안철수#안철수 신당#민주당#통합신당#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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