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한껏 웅크렸던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피어나는 봄이 다가왔다. 한국 가요계에도 봄을 맞아 많은 가수들이 컴백을 앞두고 있는데, 그들의 면면이 여간 화려한 게 아니다.
걸 그룹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소녀시대와 발표하는 싱글마다 대박을 터트리고 있는 2NE1, 그리고 특유의 몽환적인 감성의 밴드인 넬까지, 감히 3월의 가요계를 '별들의 잔치'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소녀시대가 컴백과 함께 '엠카'에서 1위를 기록하며 3월 가요차트 1위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더더욱 증폭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 가요차트에는 맨 꼭대기에서 벌어지는 경쟁보다 더 중요한, 어쩌면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작년에 이어 다시 차트 바닥에서부터 상승세를 타고 있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의 가요차트 재진입 말이다.
2013년 봄, 한국 가요계는 전례 없던 사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바로 2012년 3월 말에 발표되어 큰 인기를 모았던 곡 '벚꽃 엔딩'이 각종 음원사이트 순위권 차트에 재진입한 것이었다.
수많은 기존 가수들과 신인 가수들이 공존하는 최근의 한국 가요계에서 웬만한 노래로는 10위권 진입도 힘들며 설사 이름을 올린다 해도 몇 주 안에 신곡들에 묻혀 가시권 밖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2012년 당시에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와 그들의 대중성 있는 음악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버스커버스커의 음악이 2013년 봄 차트에까지 재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한 이는 몇 되지 않았다.
버스커버스커가 예능 출연과 같이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단순히 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음악은 2013년 한국 가요계의 봄을 만개하는 벚꽃처럼 화사하게 수놓았다. 버스커버스커의 음원차트 재진입은 세간에 큰 화제가 되어 여러 번 기사화 되었으며, '버스커버스커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재밌는 점은 작년과 똑같은 일이 다시 한 번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3월 2일 일간 차트 25위를 기록한 '벚꽃 엔딩'은 3월 8일 기준으로 멜론 차트에서 19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3년 4월 2주차에 '벚꽃 엔딩'이 2위를 기록했던 과거에 비춰 보았을 때, '벚꽃 엔딩'은 날이 따뜻해지고 벚꽃축제가 열리는 4월 즈음에 차트의 정점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버스커버스커의 차트 재진입이 갖는 의의는 크다. 음악, 특히나 대중가요 중에 '명곡'이라고 꼽을 수 있는 노래들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지속성, 즉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대중에게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성질이다. 고 유재하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가 발표된 지 27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많은 후배 음악인들이 리메이크와 헌정앨범을 내는 것도, 고 김광석의 앨범을 지금 세대의 청소년들이 들으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 모두 위 음반들의 정서와 가사들이 20여년이 넘는 세월에 구속되지 않고 대중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은 최근 가요계에서 쉽사리 볼 수 없었던 '명곡'의 성질을 갖고 있는 노래다. 최근 가요계에서 발표되는 신곡들은 기계음을 기반으로 하고 '유통기한'이 짧은 천편일률적인 음악들이 많았다. 그리고 금방 떴다가 금방 사라지는 가요들 속에서는 대중들과 오랫동안 공유할 수 있는 정서나 감정이 들어있지 않았다.
'벚꽃 엔딩'은 이렇게 단편적인 현대 가요들 속에 피어난 아날로그 감성이라 할 수 있다. 봄을 맞은 청춘들의 설렘과 기대감은 시대에 구속받지 않는 감정이고, '벚꽃 엔딩'의 가사와 멜로디에는 그런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쩌면 시간에 구속받지 않는 '벚꽃 엔딩'의 성공은 천편일률적이었던 가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줄 수도 있다.
겨울이 가고 봄이 되어 벚꽃 철이 다가오면 카페 등 도심에서 흘러나오는 '벚꽃 엔딩'을 듣자면, 크리스마스가 오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머라이어 캐리의 명곡인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의 느낌이 나기도 한다. 버스커버스커의 곡이 세대를 아우르는 명곡이 될 수 있을 것 인지, 올 봄 음악차트의 귀추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