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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진(背水陣) '물을 등지고 진을 친다', 어떤 일에 결사적인 각오로 임할 때 사용된다. 병법서나 전쟁사에서 간혹 볼 수 있는 단어다. 객관적으로 전력이 약한 사람(단체, 나라)이 월등히 우월한 상대를 만났을 때, 배수진을 쳤었다. 뒤에는 물, 앞에는 강적. 죽을힘을 다해 싸울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대승'.

"배수진은 옛날 책에서만 존재하는 거야. 실제 생활에선 써 먹을 수 없는 거라고."

주위의 누군가가 코웃음 치며 치부할지 모른다. 이 책을 보여 줘라. 이 시대의 배수진을 모아 둔 책이다. 결코 이길 수 없는 강자의 콧등을 납작하게 만든 약자들이 여기 펼쳐져 있다. 제목도 의미심장한 <다윗과 골리앗>.

 <다윗과 골리앗> 책표지.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 책표지.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 21세기북스
곳곳의 약자들을 핀셋처럼 골라 독자들에게 소개한 이는 말콤 글래드웰이다.

출판계의 '아웃라이어', 내놓는 책마다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다. <티핑 포인트>에선 폭발적인 성장점, <블링크>에선 찰나의 판단력, <아웃라이어>에선 성공의 비결을 설명해 온 그가 이번에 주목한 것은 '약자'이다.

흥미로운 것은 성경 인물 '다윗'이 책에 계속 언급되고, 제목에까지 떡하니 나와 있다는 점이다. 다윗은 이미 강자를 쓰러뜨린 약자의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엘라 계곡에서 거인과 양치기를 본다면 당신의 눈은 칼과 방패, 그리고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남자에게 끌릴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아름다움과 가치 중 수많은 것들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더 많은 힘과 목적의식을 가진 양치기로부터 나온다. (324쪽)

이 책에 소개된 양치기중, 한 미국 대학생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그녀는 학급 최상위 성적으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브라운 대학교와 메릴랜드 대학교를 갈등하다가, 브라운 대학교를 선택, 합격한다. 그녀와 가족들은 장밋빛 미래를 낙관했다.

브라운 대는 아이비리그 가운데 하나로, 뛰어난 학생들과 교수들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미국 대학 순위에서 톱10안에 들어 있다. 순위가 훨씬 떨어지는 메릴랜드 대신 여기를 선택한 것은 꽤 잘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그녀는 불행해졌다. 그 학교에는 최고의 학생들만 있던 것이다. 어려운 과목에서도 최고 학점을 손쉽게 따내는 수재들이 그녀 주위에 가득했다. 고등학교까지 주목을 받았지만, 이제 그녀는 그런 명석한 학생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녀는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고 말았다.

그녀의 경우를 '큰 물고기-작은 연못 효과'라 부를 수도 있겠다. 엘리트 교육 기관일수록 학생들은 자신의 학업 능력에 대해 더 나쁘게 여긴다는 말이다. 사실 이 두 용어는 작가가 만든 말은 아니다. 각각 사회학자 새뮤얼 스투퍼, 심리학자 허버트 마시가 지어낸 말이다. 전공 서적에만 묻혀 있던 전문 용어들을 구체적 사례와 함께 생생하게 건져 낸 작가의 역량을 볼 수 있다.

"와! 다른 학생들은 그 과목을 마스터했어요. 시작할 때는 나와 똑같이 감을 못 잡던 학생들조차 말이에요.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없는 것 같아요." (99쪽)

가장 경쟁이 치열한 연못의 작은 물고기였던 그녀의 외침이었다. 눈치 챘는가?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일류대가 강자의 필수 조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외에도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이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강력한 터키군에 맞섰던 유목민 베두인족 부대, 상대의 허를 찔렀던 농구 초보감독의 작전, 어눌한 난독증 환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대성공, 약한 북아일랜드 주민들을 강력하게 진압했던 영국군의 실수에 이르기까지…. 실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약자들, 그리고 난감해하는 강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강자에 대해선 어떤 평가를 하고 있을까?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의 강함으로 인해 안일해지고, 소극적이 된다고. 신체 조건과 힘, 갑옷을 의지했던 골리앗이 좋은 예시가 되겠다. 자신이 그토록 자랑했던 강점이 약점이 된 것이다.

터키군이 그랬듯, 많은 군인과 무기와 자원을 가진 건 분명 강점이다. 그러나 기동성이 떨어지고 방어적 태세를 취하게 만든다. (39쪽)

말콤 글래드웰은 전작 <아웃 라이어>에선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을 다루었다. 그들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1만 시간을 땀 흘려 노력했는데, 실패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탁월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실패자와 약자라 불리는 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씁쓸함을 느낄지 모른다.

그런 그들에게 <다윗과 골리앗>은 안성맞춤이다. 무력감이 아닌 자신감을 준다. 절망이 아닌 희망을 준다. 대부분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거짓 희망'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희망. 역사적 사건과 객관적인 데이터에서 추출된 약자의 '기술'은 "나도 한번 해 볼 수 있겠는데."라며 구체적 행동으로 그들을 이끌 것이다.

인생의 코너에 몰려, 이미 게임은 끝났고 승부는 다 결정되었다고 진작 인생의 수건을 던져버린 수많은 약자들, 그들을 향해 말콤 글래드웰은 이렇게 응원한다.

자신이 약자(underdog)라는 사실은 때때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 약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문을 열어 기회를 만들어내고, 자신을 가르치고 일깨우며, 그런 처지가 아니었다면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20쪽)

취업을 걱정하는 지잡대('지방 잡대학'의 은어) 학생들, 부모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극히 평범한 아이들, 깔창을 신어도 여전히 작은 루저들. 아직도 우물쭈물하고 승자들을 바라만 볼 것인가!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약자가 이길 수 있는 분명한 길이 존재한다! 배수진을 치든, 학익진을 치든 무언가 수를 써라! 이 시대 다윗들, 판을 새로 짜라!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 실었습니다. http://blog.naver.com/clearoad



다윗과 골리앗 -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

말콤 글래드웰 지음, 선대인 옮김, 21세기북스(2014)


#말콤 글래드웰#다윗과 골리앗#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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