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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대교  노록도 정상에서 쵤영한 보길대교
보길대교 노록도 정상에서 쵤영한 보길대교 ⓒ 이재언

우리나라 4400여 개의 섬 중 제주도, 울릉도, 독도 빼고 많이 알려진 섬은 어디일까. 아마도 완도, 보길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로 많은 역사적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다.

가는 길은 해남 땅끝에서 여객선을 타고 노화도 산양진항으로 가는 길과 완도 화흥포에서 노화도 동천항에 닿는 길이 있다. 해남과 완도에서 보길도 청별항까지 배를 타고 갔던 시절에 비하면 30분 단축됐다.

지금은 인근 노화도와 지난 2008년 연결된 보길대교(620m)인 연도교가 놓여 있다. 이제 보길도를 가려면 노화도를 관통한 뒤 보길대교를 건너가야 한다. 보길대교가 들어섬에 따라 시간과 뱃삯이 크게 줄었고 두 섬 역시 유·무형의 천문학적 이익을 거두고 있다.

청각말리기  예송리 마을에서
청각말리기 예송리 마을에서 ⓒ 이재언

창각 말리는 주민들  예송리 마을에서
창각 말리는 주민들 예송리 마을에서 ⓒ 이재언

천연기념물 '예송리 상록수림'

보길도 관문인 청별항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보길대교에서 왼쪽으로 가면 동쪽 예송리와 오른쪽은 윤선도 유적지와 뾰족산이 있는 보옥마을로 가는 길이 나온다. 먼저 자갈밭으로 유명한 예송리로 방향을 잡았다. 전망대에 잠시 들러본다.

전망대 왼쪽부터 기섬, 당사도, 소도, 복생도, 예작도 등이 차례로 보인다. 울창한 상록숲을 끼고 반달모양으로 길게 펼쳐진 예송리 해수욕장엔 검푸른 조약돌이 눈길을 끈다. 모래없이 작은 자갈이 1.4㎞ 펼쳐져 있다. 산책로 옆은 상록수림이다. 천연기념물 제40호에 어울리는 멋과 품위를 지녔고, 천연기념물 제338호 감탕나무도 있다. 이곳에서 맞는 일출은 완도 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예송리 상록수림은 길이 740m, 폭 30m의 반달모양으로 300년 전 동남풍을 막기 위해 조성됐다. 숲 속엔 생태탐방로가 만들어져 있다. 예송리는 한 해 2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송시열 암각문  탁본을 많이 하여 색이 바랜 모습
송시열 암각문 탁본을 많이 하여 색이 바랜 모습 ⓒ 이재언

윤선도의 정적 송시열 '암각시문' 볼만

"여든셋 늙은몸이/푸른바다 한가운데 떠 있구나/한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일까/세번이나 쫓겨난 이도 힘들었을 터/대궐에 계신 님을 속절없이 우러르며/다만 남녘바다의 순풍만 믿을 수밖에/담비 갖옷 내리신 옛 은혜 있으니/감격하여 외로운 충정으로 흐느끼네" (우암 송시열의 '암각시문')

예송리에서 월송리, 중리를 지나면 통리해변이 펼쳐져 있다. 중리와 통리는 작은 해안절벽을 사이에 두고 있다. 중통리 해안에는 통리 해수욕장과 중리 해수욕장이 있다.

해안 길을 따라서 가다 보면 동쪽 끝자락에 선백도라는 곳이 나온다. 돌을 깔아놓은 산책로 끝 지점이다. 바위에 철제로 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송시열의 암각시문을 설명하고 있다. 바위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면 주변은 온통 바위 덩어리. 앞에는 밧줄로 테두리 쳐진 곳이 있는데 바로 '글씐바위'다.

무수히 탁본을 떠 간 터라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온통 먹칠로 뒤덮여 있다. 윤선도의 정적이던 송시열 역시 당쟁에 밀려 83세의 나이에 제주로 유배를 가다 풍랑을 만나 이곳 선백리로 잠시 피신했다. 우암이 '글씐바위'에 쓴 시는 다음과 같다.

"83세의 늙은 이 몸이/ 거칠고 먼 바닷길을 가노라"로 시작되는 한시를 남겼다.

윤선도의 세연정  고산 유적지
윤선도의 세연정 고산 유적지 ⓒ 이재언

 풀매는 아낙네들  부용리 마을에서
풀매는 아낙네들 부용리 마을에서 ⓒ 이재언

고산 윤선도가 조성한 세연정

다시 서쪽 해안 길을 따라 고산 윤선도 유적지 부용리를 향한다.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제주도를 찾아가다 태풍을 피하기 위해 들른 보길도는 오히려 그의 발길을 10여 년간 묶어 놓게 된다. 세상을 등지고자 제주도로 향하던 고산이 도중에 심한 풍랑을 만나 잠시 보길도의 황원포에 상륙했다 이곳의 풍광에 매료돼 아예 눌러앉은 것.

윤선도는 이곳을 10여 년간 18번이나 찾으며 세연정, 낙서재 등 건물 25동을 짓고 전원생활을 즐겼다. 그의 작품 '어부사시사'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천문과 지리에 통달했던 고산 윤선도가 이 섬을 택해 말년을 보냈다.

고산이 남긴 문화유산은 세연정을 비롯해 곡수당과 낙서재, 동천석실, 어부사시사 등 많다. 그가 연못을 파고 정자를 세워 시를 읊고 자연을 노래한 '세연정'은 담양의 소쇄원과 더불어 조선 시대 최고의 정원으로 손꼽힌다.

정자리 복기 시설 로뎀의 집  양지바른 곳에서 채소를 다듬고 있다.
정자리 복기 시설 로뎀의 집 양지바른 곳에서 채소를 다듬고 있다. ⓒ 이재언

정자리 로뎀의 집  원장과 복지사
정자리 로뎀의 집 원장과 복지사 ⓒ 이재언

완도 복지시설 '로뎀의 집'

윤선도가 이곳에 정자를 지었다 해서 붙여진 정자리에는 로뎀의 집이라는 노인 복지관이 있다. 원장인 임영기 목사가 보길도를 처음 찾은 것은 1985년. 스물일곱 청년 전도사로 정자교회에 부임해 30년 가까이 살았다. 이곳의 노인복지 필요성을 절감하고 2001년 폐교가 된 옛 초등학교 부지를 매입해 복지사업을 펼쳐 나갔다.

'사랑의 한글학교'라는 이름으로 노인들을 위한 문화교육을 펼쳤으며 노인주간보호센터와 노인대학 운영에 발 벗고 나섰다. 2007년부터 임 원장이 직접 벽돌을 구워가며 건축한 '로뎀하우스'를 지었고 어르신 15명을 모시고 살고 있다.

필자가 찾아간 날 마을 노인들이 모여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었다. 한 주민은 "문화 공간이 없는 이곳에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여가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자랑했다. 임 원장은 폐교 운동장에서 일꾼을 사서 굴착기로 땅을 파고 있었다.

국내 최초로 물레방아를 돌려 곡식을 찧는 옛 모습을 재현하겠다는 포부다. 그는 정자리 마을주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보길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휴식과 사회봉사를 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보옥리 바다의 멸치잡이  앞에는 뽀쪽산이 보인다.
보옥리 바다의 멸치잡이 앞에는 뽀쪽산이 보인다. ⓒ 이재언

'깻돌' 많은 공룡알 해변

정자마을 지나고 선창마을을 지나면 마지막 동네 보옥마을에 닿는다. 보길도를 서쪽으로 돌아가면 가장 마지막에 있는 마을로 보길도 서쪽 끝자락이다. 아직 순환도로가 완전히 뚫리지 않아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길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적자봉을 거치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산길을 통해 갈 수는 있다.

이곳에 해안도로가 만들어진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마을에 들어서서 멸치가게를 지나면 제법 넓은 공터에 그물을 깔아놓은 건조대가 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하천이 있고 그 옆으로 해변 가는 길이 있다. 마을의 좁은 고샅길을 지나야 해변이 보이는 탓에 관광객들은 발길을 되돌리기 십상이지만 해변은 독특하다.

이곳 마을에 왔다가 볼거리 없다고 되돌아간다면 후회한다. 공룡알 해변이 있기 때문이다. 바닷가에는 공룡알처럼 큰 돌들이 흩어져 있다. 큰 것은 배구공만 하고 모양은 동글동글하다. 이곳 사람들은 '깻돌'이라 한다. 몇몇 돌들은 진짜 공룡알을 같았지만 그런 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해변 뒤로는 무성한 숲 공원이 있다. 벤치를 설치해두어 편하게 바다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해변 서쪽 끝, 보옥마을 바로 앞에는 보죽산(195m)이 있다. 산이 뾰족하게 생겼다고 해서 뾰족산이라고도 불린다는데, 산이 제법 가파르다. 뾰족하게 생긴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는 낭떠러지가 있는 산이다. 산에 올라 바다를 둘러보면 가지런하게 떠 있는 양식장과 그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통통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옥리는 밤이면 제주도와 추자도 불빛이 훤히 보이는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 앞 뾰족산(甫竹山) 해변에 용이 기거하다가 큰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였다고 하여 보옥리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보옥이라는 이름의 어원은 보리수나무라고 한다. 보옥리는 순 우리말로 '뽀래기'나 '뽀리기'로 불렸는데 보리수나무라는 뜻.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보옥이란 이름이 붙었단다.

멸치마을 보옥리에서  보옥리 주민
멸치마을 보옥리에서 보옥리 주민 ⓒ 이재언

보옥마을 입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오던 길로 십여 분 걸으면 해안도로변에 일몰이 아름답다는 '망끝 전망대'가 나온다. 서쪽 해안을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망끝'은 그 옛날 고기잡이를 나간 남자들이 무사히 돌아오는지 근심어린 눈으로 지켜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망대라고 하지만 표지석 하나만 덜렁 세워져 있는 전망대다. 그러나 끝을 볼 수 있다는 전망대에 서면 남도해안이 한눈에 환하게 들어온다. 보옥리를 돌아 나오는 길엔 갈 땐 미처 보지 못했던 네 개의 조그만 섬이 올망졸망 떠 있다. 섬의 이름은 오른쪽에서부터 상도, 미역섬, 욕매도, 갈도. 이 네 개의 섬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물드는 황혼도 놓치기 아까운 비경이다.

전복 폐사율 높아 대책 시급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와 예송리 자갈밭 해수욕장 덕택에 유명 명소가 됐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근처 섬 중 제일 가난했다. '보길도 큰 아기는 쌀 서말 먹기도 힘들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난했다. 경지면적이 적어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고구마와 보리가 주식이었다.

2000년 초반께부터 전복 양식을 시작했고 이제야 정상궤도에 올라있다. 하지만 문제는 전복폐사율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집단폐사 원인은 연작(連作)과 밀식에서 비롯됐다. 몇 개월씩 비워뒀다 양식해야 함에도 소득을 올릴 욕심으로 같은 장소에서 몇 년씩 양식하고 있다.

전복 먹이의 찌꺼기가 양식장 바닥에 쌓여 오염을 부추긴다. 연작으로 인한 폐해가 늘 수밖에 없다. 좁은 공간에 전복 수를 늘리는 밀식(密植)양식도 문제다. 전복이 크지 못한다. 많은 전복양식장, 미역과 다시마·김 양식장 때문에 조류 흐름도 막아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 보길도 개요
보길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에 딸린 섬으로 동경 126°37′, 북위 34°07′에 위치하며 면적 32.994㎢, 해안선 길이 41㎞, 최고점 43.3m 적자봉, 인구는 1189가구 2834명 (2010년)이다.

지명유래
영암의 한 부자가 선친의 묘자리를 잡기 위해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을 모시고 두루 살핀 뒤 '十用十一口, 甫吉'이라는 글을 남기고 갔는데 이는 이 섬에 명당자리 11곳이 있는데 10곳은 사용되고 나머지 1곳도 이미 정해졌다는 뜻이고 이와 관련하여 보길도로 칭하였다고 한다.

☛ 보길도 가는 길
해남 땅끝, 완도 화흥포에서 → 노화도 수시 운행.


#보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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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연구원으로 2019년까지 10년간 활동, 2021년 10월 광운대학교 해양섬정보연구소 소장, 무인항공기 드론으로 섬을 촬영중이며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재정 후원으로 전국의 유인 도서 총 447개를 세 번 순회 ‘한국의 섬’ 시리즈 13권을 집필했음, 네이버 지식백과에 이 내용이 들어있음, 지금은 '북한의 섬' 책 2권을 집필중

이 기자의 최신기사책 '북한의 섬'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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