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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삼매경에 빠지다

이즈음 한창 온 산하에는 봄꽃들이 다투어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 복사꽃, 배꽃…. 그새 활짝 핀 꽃잎들이 눈송이처럼 지기도 한다.

지난 며칠 동안 전주, 구례, 여수, 김천 등 남도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한 후배가 책을 한질 보내왔다. 그는 20년 전 나의 데뷔작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를 발간할 때 만난 출판사 병아리 사원 양진호씨였는데, 이제는 어엿한 출판사(인문서원) 대표로 첫 작품집을 펴냈다.

 <정도전> 표지
<정도전> 표지 ⓒ 인문서원
그 작품집은 <정도전 1, 2, 3> 세 권으로, 나는 꼬박 사흘 동안 여독도 풀 겸 창밖의 봄꽃을 바라보면서 오랜만에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정도전… 나는 이제까지 조선건국의 개국공신으로만 알았던 그분을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고려 말 조선 초의 격동기 역사에 탐닉할 수 있었다.

작가 임종일씨는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매혹되어 이를 작품화 하고자 1990년부터 자료수집과 현장답사, 그리고 각종 학술논문 500여 편, 관련서적 300여 권을 섭렵하였다고 한다. 그 집념과 노고에 경의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작가는 한 문장을 쓰기 위해 한 권의 책을 독파하기도 하고, 천리 길도 마다 않고 현장을 답사한다. 더욱이 정보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이 시대는 그렇게 공부하지 않고는 좋은 책을 펴낼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이성계가 정도전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이씨 조선을 건국치 못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건국했을지라도 조선을 반석 위에 올려놓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정도전은 이성계와 더불어 역성 혁명(쿠데타)으로 조선을 건국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태조 이성계의 아들 정안군(이방원)의 칼에 비명횡사, 그의 이상 - 민본(民本)정치와 요동정벌 등을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비운의 혁명가였다.

재물을 탐하지 말라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다시 한 번 더 읽고자 밑줄 그은 부분을 몇 곳 옮겨 본다.

정도전이 첫 벼슬살이를 할 때 아버지(정운경)가 당부한 말이다.
"선비가 작록을 받았을 때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는 귀해지는 것을 탐하지 말고, 둘째는 재물을 탐하지 말 것이다." -1권 175쪽

고려 우왕 9년(1383) 가을 어느 날 정도전은 북방 함경도 함주로 갔다. 함주에서 30리 떨어진 바닷가 노송이 우거진 군진 한가운데 원수기가 펄럭였다. 도전은 숨을 가다듬었다. 이제 이성계를 만난다. 뜻이 맞는다면 이그러진 천하를 바로 세울 것이요, 그가 허명이나 날리는 무장에 지나지 않는다면 한바탕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돌아서면 그만이었다. … 아장(예전 군중에 쓰인 장막)을 밀치며 추레한 나그네가 들어섰다. 순간 이성계는 등골이 오싹했다.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운명이 성큼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언뜻 보면 풍상에 지친 초라한 행색의 나그네일 뿐인데 눈빛이 너무나 형형(반짝이다)하고 무서운 사내였던 것이다.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이성계였다.   
"뉘시온 지?"
"전에 성균관사예를 지낸 정도전이라 합니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이성계의 나이 49세, 정도전의 나이 42세. 두 사람의 만남이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2권 186~187쪽

한번은 태조가 개국공신들에게 연회를 베풀 때였다. 태조는 정도전에게 술잔을 건네며 말하였다.
"경이 아니고서야 내가 어찌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소. 참으로 경은 나의 장자방이오!"
-3권 169쪽

정도전은 새 도읍지로 한양을 적극 추천했다. 그가 한양을 꼽은 것은 도읍지로서 지리적인 조건도 갖추었지만 도참설이 이씨 왕조의 발흥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 우선 한양은 나라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사방으로 통하는 구간의 거리도 균형을 이루었다. 그런가 하면 북쪽의 화산(삼각산)은 산세가 뛰어나고, 남동쪽으로는 한강이 옷의 띠처럼 둘러있어 조운(漕運, 뱃길)이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바다의 조수와 통했으니 지리적인 조건이 완벽했다. -3권 218쪽 

 조선시대 경복궁 근정전(정도전은 새 궁궐의 이름을 경복궁이라 정하고, 궁궐 안의 크고 작은 전문의 이름에 이르기까지 직접 지었다)./ 촬영 1895. Willam Henry Jackson
조선시대 경복궁 근정전(정도전은 새 궁궐의 이름을 경복궁이라 정하고, 궁궐 안의 크고 작은 전문의 이름에 이르기까지 직접 지었다)./ 촬영 1895. Willam Henry Jackson ⓒ 눈빛출판사 제공

정안군 방원이 칼을 빼든 채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이방원은 군사를 물리친 뒤에도 정도전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도전은 한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지난날 치악산 원천석의 서재에서 우연히 만났던 애송이 소년이 이제 권력의 화신이 되어 칼을 겨누고 있다. …
"명분이 무엇인가?"
도전의 목소리는 얼음장보다 더 차가웠고, 분에 겨운 눈빛은 매의 눈보다 더 매서웠다. 이방원은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마치 거대한 절벽을 마주 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

"대감, 저를 도와주신다면 오로지 대감과 더불어, 대감께서 하시자 하는 대로 다 하겠소이다! 요동을 정벌하자면 하고, 명나라를 치자면 치겠소이다! 그러니 저를 도와주십시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은 그대가 칼을 거두는 것…. 그대의 철없는 칼부림에 역성혁명의 뜻이 꺾이고, 만세에 물려줄 대업이 무너지지 않는가. 지금이라도 칼을 거두시게. 그것이 내가 바라는 바일세. 그렇지 않다면 나를 죽이시게." …

이방원은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문 밖에서 기다리던 이숙빈이 다가와 물었다.
"어찌하실 겁니까?"
이방원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어쩔 수 없네!"
이숙빈과 소근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방으로 들어가자 도전은 궁궐을 향해 숙배(肅拜 임금에게 절함)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잠깐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칼을 정도전에게 내리쳤다. 태조 7년(1398) 8월 26일 늦은 밤이었다. -3권 302~305쪽 축약

 조선시대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 해태상(정도전은 지금의 서울인 조선 새도읍지 한양의 밑그림을 그린 분이다).
조선시대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 해태상(정도전은 지금의 서울인 조선 새도읍지 한양의 밑그림을 그린 분이다). ⓒ 눈빛출판사 제공

나라가 아니었다

나는 사흘 만에 세 권의 책을 다 읽은 뒤 저자에게 전화로 몇 마디 물었다.

- 제1권 부제를 보면 '나라가 나라가 아니었다'고 붙였는데, 당시 고려 말은 어떤 상황이었나?
"고려 원종 때 몽고의 침입으로 초기에는 항쟁도 있었지만, 고려는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미 독립된 국가라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원나라의 43왕부가 있는데 그 중 서열 41위에 해당하는 왕부의 하나일 뿐이었죠. 그래서 충렬왕부터 충정왕까지 '충(忠)'자가 붙은 임금 시절은 왕실만 겨우 살아 있는 상태였고, 그 조차도 부패가 극심했어요.

심지어 왕이 몽고말은 해도 우리말을 잘 모르는 정도였으니까요. 나라의 정치는 권문세족과 원나라에 빌붙어 사는 부원(친원)세력이 마음대로 휘둘렀고, 사회제도와 생활습속까지 몽고를 따랐죠.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수난과 친일파들의 득세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어요. 백성들의 삶은 매우 피폐했고, 더구나 왜구들이 수시로 출몰하여 강토를 유린하는 데도 나라는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당시 사회 시스템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어요. 이미 국가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고 봅니다. 정말이지 나라는 나라가 아닌 껍데기뿐이었죠.

- 정도전은 새로운 나라 조선에서 무엇을 하려고 했나?
"민본정치, 민본국가 건설입니다. 곧 백성이 주인이 되고, 백성이 중심 되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요동 회복입니다. 요동은 고구려의 동명왕이 나라를 열었던 곳이지요."

- 정도전이 조선 건국 후 가장 먼저 토지개혁을 단행한 까닭은?
"본래 땅은 나라의 것으로 공전(公田)인데, 왕실이나 권력자, 양반들이 다 차지해 버려 사전(私田)이 되어 버렸지요. 백성들이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음을 당시 정도전은 한탄했지요. 그래서 정도전은 집권하자 본래 나라의 땅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자는 개혁을 단행했지요."  

- 정치가, 혁명가 정도전 외 또 다른 수식어는?
그는 철학가, 사상가, 경세가였지요. 게다가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고, 우리 역사에 없던 병법서를 저술해냈으니 병술가였고, 의학서를 썼으니 의술가였고, 고려사를 정리하고 중국역사에 능통했으니 역사가였고, 궁중 음악을 새롭게 만들었으니 음악가였고, 천문지리뿐만 아니라 풍수 비기(秘記, 일종의 예언)까지 능했습니다.

- 왜 이 시대에 정도전인가?
"600여 년 전의 고려 말과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이 비슷합니다.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와 이 사회를 변혁이랄까 개혁을 해야 하는데, 바로 정도전과 같은 유능하고 참신한 새로운 인물이 필요한 겁니다."


정도전 세트 - 전3권

임종일 지음, 인문서원(2014)


#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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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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