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철컥' 하고 문을 열었다.

"다녀오셨습니까?"

합창을 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마치 김 빠진 콜라 같다. 평소처럼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만든 장난감 가지고 큰 소리로 자랑하던 아이들 목소리가 아니다. 순간 싸늘한 방 안의 분위기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음, 푸닥거리 한판 했구먼!'

아내 눈치를 보며 옷을 갈아입었다. 스윽 하고 거실을 둘러보고 상황 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조심조심 장난감을 만지며 엄마 눈치를 보고 있다.

"시험 어땠어?"... "40점 맞았어요!"

공부하는 서동이 서동이는 축구나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아직은 아이의 재능을 기다리고 지켜봐야 할 때가 아닐까.
▲ 공부하는 서동이 서동이는 축구나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아직은 아이의 재능을 기다리고 지켜봐야 할 때가 아닐까.
ⓒ 김승한

관련사진보기

나는 순간적으로 거실 안의 모든 것을 곁눈질로 훑어봤다. 거실 책상에 놓여 있는 첫째 아들 수학 공책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것도 있고, 단칼에 잘라 버릴 듯한 날카로운 색연필 자국도 보인다. 물론 동그라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빨간 색연필로 스윽 그어버린 칼날같은 자국이다.

'바로 이것이구나!'

그제야 원인파악을 한 나는 첫째 아들 서동이에게 물었다.

"서동아, 오늘 시험 봤어? 어땠어?"
"40점 맞았어요, 제 짝꿍은요 15점 맞았고요, OO는 20점 맞았어요!"

나름 시험을 잘 보았다고 생각하는 우리 아들 그리고 이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아내. 나는 서동이에게 말했다.

"어이고, 40점이나 맞았어? 잘했다 우리 아들, 담에는 더 잘하자 알았지?"

책상 앞에 앉아 첫째 아들 시험지를 훑어봤다. 우리 어릴 때는 단순한 계산 문제가 시험에 나왔었는데 제법 어려운 듯하다. 아래로 계속 읽어나가는데…. '어라, 이거 만만치 않네?'

35년 전 초등학교 다닐 때 그래도 산수는 제법 하던 나였지만, 아들 수학 시험 문제는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문제의 난이도는 높지 않았다. 그러나 질문하는 방법이 예사롭지 않다. 중·고등학교 시험지에나 나올 법한 서술방법과 예시문, 문제 자체를 이해하려면 초등학교 1학년생 치고 상당한 수준이 요구되는 것 같았다. 어떤 문제는 답이 여러 개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내가 봐도 헷갈리는 문제가 있다.

서동이도 '고통의 시절'에 접어들었습니다

 서동이의 독후감 감상문 기록지
 서동이의 독후감 감상문 기록지
ⓒ 김승한

관련사진보기

나도 머리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닌지라 아들 녀석의 상황이 이해됐다. 참 어려운 문제였겠구나!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풀 수 있을까?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면 한글을 거의 떼어가는 수준이라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도 못할 수준의 아이들이 적지 않을 텐데, 벌써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근데 그 와중에도 100점을 맞은 학생이 있다니 그 아이는 영재인 걸까.

나와 아내는 맞벌이 부부다. 아침에 아이들을 유치원과 학교에 데려다 주면, 아이들은 이후 돌봄 교실과 방과후교실을 번갈아 다니다가 태권도장을 끝으로 집에 온다. 씻기고 밥 먹이고, 책가방 꺼내 알림장 체크해 숙제는 있는지, 오늘 특이사항이 있었는지 등을 살펴보고 독후감 일기를 시킨다.

그리고 천자문 하나씩 알려준다. 아이들은 받아쓰기, 그림 그리기, 줄넘기 숙제, 기타 과제물 등을 모두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각은 오후 9시를 넘기기 일쑤다. 난 고등학교 3학년 때도 이렇게 공부 안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초등학교 때부터 온몸의 에너지를 공부에 다 쏟아 붓는가 보다. 따라하는 아이도 힘들고, 일일이 확인하고 시키는 부모도 힘들다. 어릴 적 학교 다니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던 내 학창시절은 고통스럽게 지나갔다. 이제 서동이도 그 시절이 시작되나 보다.

과부하 걸린 아들... 내일은 힘차게 등교하길

다리 절고 있는 서동이 축구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발목이 심하게 부었다. 공부는 몰라도 축구라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나간다. 학업의 스트레스를 축구로 풀고 있나보다.
▲ 다리 절고 있는 서동이 축구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발목이 심하게 부었다. 공부는 몰라도 축구라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나간다. 학업의 스트레스를 축구로 풀고 있나보다.
ⓒ 김승한

관련사진보기

뉴스를 보다가 베란다에 나갔다 들어오는 서동이를 보니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서동아, 다리 아파? 왜 그래?"
"축구 했어요!"

참나…. 가지가지 한다. 시험보고 혼나고, 축구해서 다리 절고….

축구를 얼마나 심하게 했는지 발목이 부었다. 거기다 시험까지 엉망으로 봤다. 좋아하는 축구만이라도 실컷 하고 왔으면 엄마에게 이렇게 혼나지는 않았을 텐데….

저녁을 먹이고 나서 아이가 너무 졸려 하기에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만져봤다. 이마가 뜨겁다. 열이 있는 걸로 봐서 몸살이라도 걸린 듯하다. 안쓰러운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얼른 양치하고 아빠랑 자자."

이렇게 말했더니 아들은 싫다며 고개를 푹 숙인다. 화장실에 업고 들어가 강제로 양치질을 시키고 함께 자리에 누웠는데 아들은 바로 잠들어 버렸다. 초등학교 입학 두 달 만에 두뇌와 신체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렸나 보다.

아들은 올해 2월까지 유치원 다닐 때도 한글 받아쓰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초등학생이다. 실수와 애교도 하나하나 받아주고, 밥 먹여주고 엄마 아빠한테 데려다 주는 시기는 지났다. 이제 많은 것을 스스로 해야 하는 때가 됐다.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한번 거쳐야 할 시기지만, 어릴 적 너무 힘들게 학교를 다녔던 나는 걱정이 앞선다. 하루하루 서동이 앞에 놓여있는 삶의 계단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너무 무겁게만 다가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새벽에 아내가 서동이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나니 열이 좀 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좀 괜찮을까?

내일도 밝게 웃으며 커다란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서동이를 보고 싶다. 서동이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사회, 초등학교에서 무겁고 복잡한 교육과정의 스트레스보다 친구를 사귀고 자연을 느끼고 사람간의 사랑과 정을 배워가는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초등학교 1학년#과부하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