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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연수원 전경 지방공무원 교육의 요람 지방행정연수원이 전북혁신도시에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다.
▲ 지방행정연수원 전경 지방공무원 교육의 요람 지방행정연수원이 전북혁신도시에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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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순을 넘어서니 봄의 심연 속으로 신록이 깊어간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이 고속도로 위에 흩어지는 연무에 갇혀 실루엣처럼 신비롭다. 햇빛에 밀려 안개가 걷혀가는 사이 도로변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초목들이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인다.

멀리 혹은 가까이에 펼쳐지는 산야에는 짙은 녹색의 상록수들 사이로 여린 잎을 피워 생기발랄한 연둣빛 활엽수들이 한데 어울려 물감을 풀어놓은 듯 아름답고 잔잔하다. 차창을 스크린처럼 비켜가는 느티와 벚나무, 메타세콰이어…, 여러 수종의 가로수 사이로 함초롬히 막 꽃을 피워내는 오동나무, 등나무의 보랏빛 꽃망울이 단발의 소녀처럼 단아하고 곱다. 온 산에 번지기 시작하는 아카시아의 은은한 향이 아침바람을 타고 와 코끝을 간지럽힌다.

산적해 있는 업무를 뒤로 한 채 지난 4월 14일부터 전북혁신도시에 위치한 지방행정연수원에서 6주 동안 '5급 승진자 과정' 교육을 받고 있다. 공무원의 꽃이라는 사무관 교육이다. 광주 집에서 연수원까지는 승용차로 1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그동안 수원에 자리하고 있던 연수원이 지난해 여름 미래형 첨단교육환경을 갖추고 완주군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표지석 연수원 정문에 들어서면 좌측에 상징적인 표지석이 있다.
▲ 표지석 연수원 정문에 들어서면 좌측에 상징적인 표지석이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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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는 국립대전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변산반도에서 2박 3일간의 힐링캠프와 더불어 전문지식교육과 의식교육을 적당히 안배하여 짜임새 있게 진행되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부제를 달고 수행된 힐링캠프에서는 조국의 미래와 공직자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지게 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베이비부머의 퇴직으로 많은 인력을 양성해야 하기에 교육생이 많은 것이 다소 흠이긴 했다.

대부분 연령이 많은 탓에 토론시간에는 아직도 사고의 보수화와 변화의 두려움으로 민감한 부문을 입 밖에 내려하지 않고 보신주의로 안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전문과목으로 강의되는 피상적 지식들이 공직생활 25년 이상을 넘긴 교육생들에게 정보로 전달되어 현장에서 실무와 접목시키기에는 우리는 너무 정형화 되어 있고 익숙한 것에 숙달되어 있었다.

내게도 공직생활 25년을 돌이켜보면 참 힘겹고 긴 시간이었다.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철도청에 입사하여 입대하기 전 1년과 전역 후 1년을 근무하고 그만둔 후 고향에서 잠깐 농사를 짓다가 다시 시작한 직장생활이다. 그 당시에는 국민에게 봉사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는 사명감이나 일하는 즐거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이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 공무원 시험이었다.

지방행정이라는 조장행정을 해 오면서 보람이나 재미, 사명감이 전혀 없었다면 어찌 버텨냈을까마는, 그동안 땅개처럼 기면서 한 계급 한 계급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갈등과 좌절과 분노를 삭이며 살아왔던가. 워커홀릭(workaholic)도 아닌데 보고서를 작성하고 정책을 입안하는데 완벽을 쾌하고자 했던 고민과 번뇌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는 사이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언제나 청춘이지 싶었던 내 귀밑머리는 속절없이 희어졌다.

내가 살아온 날들이 잘 산 것인가. 열심히는 살았으되, 한편으로는 조직에 편승해서 그냥 세월에 밀려 온 것은 아닌가. 오직 한 직장에 몸담은 채 육신이나 영혼이 가자는 대로 가지 못하고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다. 지금까지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나도 해보지 못하고 따분하고 후회스런 인생을 살아왔다. 삶은 늘 빈약하고 궁핍했으며, 우리에 갇힌 거위처럼 활동영역은 좁고 한정되어 한 번도 날개를 펴고 비상을 꿈꿔보지 못한 채 지금까지 왔다. 그렇지만 지금도 숙달된 밥벌이, 길들여진 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나이에 비례하여 열정과 신선함은 퇴색된 채 반은 졸고 반은 쉬면서 연수를 받았지만, 내 사념의 끈을 놓지 않은 한 가지 생각은 남은 8년여의 공직생활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였다. 우리는 대부분 젊어서는 돈을 벌기 위해서 젊음을 쓰고, 나이 들어서는 젊음을 되찾기 위해 돈을 쓰는 바보같은 짓을 하고 살고 있다. 지금도 그것을 되풀이하는 생활의 반복 속에서 세월에 쓸려가는 듯하다.

올해는 계절이 유난히 서둘러 봄꽃들이 일찍 자리를 떴다. 평년 같으면 한참 도심에서 꽃을 피울 철쭉과 이팝이 흙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 떠나고 있다. 5월 중순인데도 날씨는 벌써 여름으로 치닫는다. 봄의 끝자락보다 덧없는 것은 없다. 그러나 봄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단명한 아쉬움에 있다. 인생도 꽃과 같아 그 단명함 때문에 허무하다. 지는 꽃이 추하다는 것은 그 꽃이 아름다웠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울 때 마음껏 사랑하는 것이 사는 법이다. 결국 오늘이 마지막인 듯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몇 해 전 세상을 뜬 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은 그의 저서 <마지막 편지>에서 "삶은 지금이며, 생명의 출렁임이며, 거친 호흡이며, 구름처럼 불완전한 끊임없는 변이이다. 그래서 흥미롭다"고 했다.

계절의 여왕 5월의 신록이 생명력으로 넘친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이제 1주일 후면 현장에 복귀해야 한다. 교육이 끝나고 돌아가면 저 나무들의 무성한 신록처럼 내 자신에게 충실해야겠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그 짜릿한 살아있음을 만끽하련다. 머리만 아프게 살지 않고 가슴과 몸도 많이 사용하고 아프게 하면서 살아가련다.


#지방행정연수원#전북혁신도시#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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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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