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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어축제 첫해였을 거야. 밤 11시쯤 축제장 입구 쪽 눈을 쓸고 있는데, 젊은 커플 두 사람이 '방을 못 잡아 그러는데 어디 잠잘 곳이 없는지' 묻는 거야. 참 딱하더라구. 별수 있나. 아내에게 통보할 새도 없이 집으로 데려갔지."

 

5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한 저녁식사 자리. 20대 젊은 사람을 비롯해 50대 지긋한 나이의 남성들도 있다. 정겨운 대화가 오가는 것으로 보아 직장 동료들인 듯하다. 이런 자리에 술이 없다는 것이 낯설다. 금주를 선언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일까!

 

이젠 명절에 그를 찾을 수 있겠다

 

정갑철 화천군수는 3선 군수다. 다시 말해서 정확히 40일이 지나면 그는 재야로 돌아간다. 지사출마를 종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70살의 나이에 추하게 보일 일 있냐"며 "젊은 도정을 위해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 미덕이 아니냐"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농사를 짓는 게 목표란다.

 

화천군 강변마을에 농사를 지을 만큼의 땅도 샀단다. 언덕 위에 집도 짓고 있다. 어느 날 지인들이 찾아오면 차 한 잔 나눔에 별로 불편함이 없는 넓이란다.

 

금년 추석엔 막걸리 한 병 들고 그를 찾아 갈 생각이다. 아련한 아쉬움 때문이다. 그가 군수로 있던 12년 세월 동안 명절이나 어느 특별한 날에 그를 찾고 싶었다. 단 한 번도 그러질 못했다. 남들의 오해가 싫었다. 또 괜한 부담을 안기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설레기 시작한다. 그리울 때 스스럼없이 찾아가고, 고민이 생겼을 때 넋두리를 늘어놓을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원했던 자리, 진급이 뭔 대수냐

 

나는 4년 6개월 동안 화천군청 홍보계장을 지냈다. 강원도 최장수라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좀 체로 정갑철 군수는 나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홍보계장은 그냥 거쳐 가는 자리였다. 길어야 2년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4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놓아주질 않는 거다.

 

"제가 홍보담당 4년 6개월이 넘었습니다. 보도자료 제작 건수도 3000건이 넘습니다."

"그래서?"

"이젠 좀 다른 부서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우연히 군수와 점심을 겸상한 자리. 늘 그랬던 것처럼 옆집 아저씨에게 말하듯 상담을 했다.

 

"어느 부서에 가고 싶냐?"

"관광과가 지금까지 해 오던 홍보의 연속성도 가져갈 수 있고, 적성에 맞을 것 같습니다."

"진짜야?"

"네!"

 

관광과는 모두가 기피하는 부서 중 하나였다. 사업이 많기도 하거니와 남들 다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더 바쁜 부서이기 때문이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해설사 역할도 한다.

 

후회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위사람들로부터 '너 바보 아니냐'라는 말도 들었다. 경리담당이나 기획담당 또는 행정담당을 부탁했으면 진급도 빠를 텐데 '아이큐가 의심스럽다'는 말도 들었다.

 

진급에 욕심이 있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바쁜 부서에서 관광객들과 어울려 때론 막걸리도 한잔 기울이고 싶었던 욕망이 더 강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가 겸손했으니까 관광과가 아닌 소위 끝발있는 부서로 보내 줄지 모른다'라는 생각을 안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은근히 속물근성이 꿈틀댔다.

 

얼마 후 관광정책과 관광기획 담당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2011년 일이다. 후에 안 일이지만, 군수는 인사담당을 불러서 '이 놈 꼭 관광과로 보내야 한다'라고 두 번이나 부탁했단다. 헐~

 

삼겹살에 공기 밥, 영 어색하다

 

"내가 알고 있던 화천이 아닌 것 같아요. 딴 세상에 온 것 같기도 하고"

 

꼭 그의 업적을 말하자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길 그가 화천발전을 10년 정도 앞당겨 놓았다는데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역에 없는 산천어를 들여와 축제를 만들고 마치 산천어가 사는 동네처럼 탈바꿈 시켜 놓았다. 청정지역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그로인한 지역경제 유발효과는 연간 1500억 원이 넘는다.

 

3만 명이 넘는 군인이 사는 동네. 그들이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이젠 그 패턴이 화천을 찾는 관광객으로 넘어갔다. 낙후지역이 싫다고 떠났던 사람들이 머쓱하게 다시 돌아오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전국 농촌 또는 산촌마을 인구가 감소한다지만, 화천의 인구는 소폭으로 증가한다.

 

"직원들에게 밥 사면 선거법에 문제가 걸릴까?"

 

선관위에 확인했더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단다. 그냥 밥만 얻어먹느니, 부서별로 군수가 역임한 민선3기~5기 동안의 성과보고회를 갖기로 했다.

 

사업의 연속성이 필요하다는 어느 공무원의 아이디어다. 틀에 박힌 업무보고 자리가 아닌 그간 추진한 사업의 발전방안 토의가 이루어진다. 이후 해당부서 전 직원이 참석하는 만찬자리. 술이 없다. 군수가 말한 대로 순전히 밥만 먹는다. 주물럭, 오리구이, 삼겹살 등은 소주 안주로 딱이다. 모두들 그것을 반찬삼아 오리지 밥만 먹는다.

 

"세월호 참사. 모두 다 아픈 가슴으로 산다. 우리가 흥청망청 술을 마시는 건 도리가 아니다. 아쉽지만, 그들과 아픔을 같이하자"

 

민선 3선 군수 퇴임에 즈음해 마련한 직원들과의 마지막 만찬이다. 멋지지 아니한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정갑철#화천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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