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폴 길딩<대붕괴> 표지, 두레
 폴 길딩<대붕괴> 표지, 두레
ⓒ 두레

관련사진보기

화창한 봄날. 싱그러운 꽃냄새를 맡으며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 햇살은 좋고 공기는 맑다.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워 보이는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책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대붕괴가 임박했다. 그 날을 대비하라.'

세기말 예언서에나 나올 법한 우중충한 경고가 사뭇 진지하다. 세계는 평화롭고 날씨는 좋은데, 대체 언제 지구가 멸망한단 말인가. 책 <대붕괴>의 저자 폴 길딩은 단호하다. 호주의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그의 메시지는 이렇다.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위기는 소비에 기반을 둔 시스템의 위기이며, 이러한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는 이상 대붕괴는 필연적이다."

길딩의 주장대로 이미 지구는 꽉 차 있다. 우리가 만든 물건들로, 화학물질로, 쓰레기들로 가득하다. 인간의 욕망으로 가득 찬 지구는 그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인구는 점차 늘어나고 물질을 소비하고픈 욕구는 갈수록 증가하는데 반해 지구의 자원은 한정돼 있다.

현재와 같은 물질 소비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우리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지구는 하나가 아니라 열댓 개라도 모자란다. 경제가 성장을 멈추고 전 지구적 '대붕괴'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가 말하는 '대붕괴'란 환경오염, 기후변화, 자원고갈, 식량난 등이 야기하는 전 세계 정치, 경제, 군사, 안보, 사회 전반의 붕괴 위기를 의미한다.

대붕괴의 징조는 이미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징조들은 먼 미래,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과 몽골의 모래바람과 함께 중금속을 가득 싣고 온 미세먼지는 서울 하늘을 뿌옇게 뒤덮었다.

수온 상승과 무차별 남획의 영향으로 동해의 명태는 오래 전부터 씨가 말랐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자 국내 식료품 가격도 요동치고 있다. 물가 불안정과 식량부족, 종 다양성 위기와 기후변화는 일부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며 전 세계적으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위기의 근본 원인이 인간이 배출하는 오염 물질 탓도, 지구온난화 탓도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성장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소비주의적 경제시스템이 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 안에 내재된 착취적 본성을 지적하며 그 필연적 몰락을 예견한 바 있다. 마르크스의 예상은 어느 정도 빗나갔지만 소비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밖에 없는 체계는 곧 붕괴되고 마리라는 그의 통찰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을 지탱하는 재화의 생산과 소비의 과정을 알고 나면 우리는 불편한 진실에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정확히는 선진국의 중산층이) 누리는 물질의 풍요는 커다란 희생을 대가로 한다. SPA브랜드, 커피, 향신료, 플라스틱 제품 등은 제3세계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한 결과물이다. 저렴한 육류를 공급하는 대규모 기업형 축산은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의 30% 이상을 소모하면서 동시에 지구환경을 위협하는 대량의 메탄가스를 방출한다.

싼 값에 대량으로 생산되는 재화들은 소비를 부추기고, 소비를 할수록 인간의 욕망은 더욱 커져간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채우기 위한 전 지구적 착취는 반복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과 불평등, 빈곤의 문제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다. 유한한 자원을 끊임없이 소비하게 만드는 이런 시스템은 결국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대붕괴의 위기는 극복할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길딩은 인류가 그 동안 보여준 뛰어난 생존 역량과 위기 극복 능력을 신뢰한다. 우선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기준으로 '1도 전쟁'을 제시한다. 저자는 지구의 연평균 기온을 산업 혁명 당시보다 1도 차 이내로 낮추기 위해 준전시태세에 해당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노력은 탄소 배출을 억제하고 온실 가스를 수거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비주의적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개선까지도 포함하는 과정이다. 경제의 목표는 더 이상 '성장'이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삶의 질'에 맞춰져야 한다.

성장이 멈추는 것은 필연이기 때문에 이에 대비해야 한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실업률을 낮추고, 줄어든 근로 시간은 가족과 공동체를 위한 여가 시간으로 활용한다. 소비는 줄이고 전 지구적 차원의 재분배를 통해 불평등과 빈곤을 해결해야 한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소비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과 관계하고 나눔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책의 경고처럼 대붕괴의 위기는 우려가 아니라 현실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 길딩의 지적처럼 정부와 기업의 역할은 한정적이다. 결국 소비중심의 기형적 경제구조를 바꾸는 것은 소비자인 우리 몫인 것이다. 성장만을 추구하며 지구 환경에 무관심한 정부와 기업에 압력을 행사하고 이들의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 소비자가 아닌 주체적 향유자가 돼야 한다.


대붕괴 - 기후 위기는 세계 경제와 우리 삶을 어떻게 파멸시키나?

폴 길딩 지음, 홍수원 옮김, 두레(2014)


태그:#환경, #경제, #지속가능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