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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안전'이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의회 시의원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받아 공개한 '재난 위험시설 현황' 자료에 따르면, 안전 진단에서 가장 낮은 등급인 'D'를 받은 중고등학교가 11개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아한 점은 11개 학교 중 10개 교가 사립학교라는 것이다.
현행 법률상 사립학교 토지와 건물 등에 대한 소유권은 학교법인에 있다. 그러니까 현행 법 상으로만 따지면 사립학교 건물과 토지, 시설물 등은 사유재산이다. 학생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도 사학법인의 의무로 되어 있는데, 사립학교법 등에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정부가 지원할 수 있다는 근거 조항이 담겨 있다.
그런데 현실은 좀 다르다. 사립학교 운영비의 99%를 국민혈세와 학생등록금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단 1% 정도만 사학법인에서 부담하고 있다. 운영비뿐 아니라 학교 건물 건축비 등 시설비도 사정은 비슷하다. 법적으로는 사학법인이 교육환경을 갖추어야하지만 실제 시설비의 대부분을 혈세로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명목상으로는 시설비의 20%~30% 정도를 사학법인에서 부담하면, 나머지를 혈세로 지원하여 학교 공사를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마저도 부담하지 않는 사학들이 많다. 아이러니한 것은 혈세로 짓는 건물이지만, 소유권과 사용권 등 일체의 권한은 오로지 사학법인에 있다는 점이다.
학교 건물 안전등급 'D'를 받은 학교들
올해 초 강원도 영월 석정여중고와 서울 진명여고를 사고 판 것에 대해 법원이 '처벌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잇따라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이지만 현실이다. 이렇게 법적으로나, 사학운영자들의 인식에서나 사립학교는 철저히 사유재산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런데 사학법인의 사유재산이라면서도 건축비나 보수비 등은 대부분 혈세로 지원되는 현실이다. 교육청은 돈을 지원하지만 계약당사자는 사학이기 때문에 누구랑, 어떻게 계약을 맺든 간여할 수 없다. 사립학교의 공사 비리나 리베이트는 이런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
학교 건물 안전등급 'D'를 받은 학교, 즉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된 학교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먼저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충암학원의 충암중과 충암고가 있다. 이 학교는 설립자이자 전 이사장 이아무개씨가 수차례 형사처벌 받는 등 구설수에 올랐다. 전임 교장과 행정실장도 횡령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교육청의 파면 등 중징계 요구에는 콧방귀를 뀌며 징계를 안 하거나 감경했다. 이 학교는 얼마 전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가 서울이 위험하다며 찾아가서 사진 찍은 바로 그곳이다.
이런 학교에 국민 혈세로 수십 억 원을 지원하는 것은 무책임한 사학 운영자들의 배만 불리게 된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충암학원이 교육환경 구비와 개선이라는 법인의 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현재 이 학교 건물에는 학생들의 통로, 재난 시에는 대피로로 사용되어야 하는 계단이 벽돌과 시멘트로 막혀서 다닐 수 없게 되어 있다. 또 다른 계단은 학생들이 다니는 것이 아니라 급식을 위한 음식물 통로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학생과 교사들이 이용해야 하는 1층 중앙 현관을 재단 사무실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야겠지만, 사고는 예고 없이 일어나는 법. 이 학교에 불의의 사고가 일어난다면 대형사고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비슷한 예는 또 있다. 학교 안전 검사에서 D등급을 받은 학교 중에는 왕희학원의 대신중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학교도 족벌운영, 사학비리 등에 있어서 충암고와 거의 쌍둥이다. 이 학교 김아무개 전 이사장은 설립자의 아들인데, 감사에서 "법인회계 공금횡령, 수익용 기본재산 임대료 미징수, 법인 이사회 운영 위법, 시설공사 관련 위법" 등의 사학비리가 적발되어 측근 이사와 감사 등 4명과 함께 임원승인 취소를 당했다.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된 학교 중 가장 이해 안 되는 곳이 고려중앙학원 산하의 고대부중이다. 이 학교는 고려대학교를 운영하는 법인에 소속되어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재정적으로 가장 넉넉한 사학법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그런 사학법인에 속한 학교가 안전 등급 D를 받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건, 지난달 20일 충암고를 방문해 '서울이 위험하다'면서 상대인 박원순 후보를 공격하던 정몽준 후보가 한때 고려중앙학원 재단 이사로 재직했다는 점이다. 충암고의 노후시설을 이유로 서울교육감도 아닌 서울시장을 비난하던 정 후보. 그러나 정작 자신이 재직했던 재단 소속 학교의 부실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자신이 이사로 있던,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튼튼한 재정을 가진 사학법인에 속한 학교가 재난위험시설로 방치된 것에 대해서 정몽준 후보는 해명해야 한다. 그리고 충암고를 찾아가서 노후 시설을 둘러보고도 정작 충암학교가 왜 그토록 위험하게 방치되어 있는지, 특히 학생들의 대피로인 계단과 중앙현관이 왜 막혀 있는지 따지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한다.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된 학교들의 공통점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된 학교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고대부중을 제외한 나머지 학교들은 대부분 '영세 부실사학'이라는 점이다.
서울시의회 김형태 교육위원이 공개한 2013년 사립학교 재정 현황 분석에 따르면,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된 학교들은 작게는 24억(고명정산고)에서 많게는 44억(충암고)까지 수십 억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그런데 이중 고대부중을 제외한 9개 학교는 법정부담금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 중 7개 학교는 아예 법정전입금 부담액이 '0원'이었다. 한마디로 부실영세사학들로,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든 학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학교들이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무상급식이 아니라 바로 부실영세사학들의 무책임과 탐욕이라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소한의 법적 의무도 다하지 않으면서 사유재산권과 자율성만 강조하는 사학들이, 그리고 이런 사학의 무책임과 탐욕에 눈 감으면서 무상급식을 탓하고 있는 보수언론과 보수세력들이 과연 안전, 특히 학교 안전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심각하게 되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