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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줄기를 감은 새삼
▲ 새삼 줄기를 감은 새삼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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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길어진 초여름 주말 오후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다. 누가 충청도 청양 촌놈 아니랄까 봐 별 것 없어 보이는 풀섶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자전거를 세우고 풀섶으로 들어갔다. 신록의 계절답게 풀섶에는 온갖 식물들이 얽히고 설켜 각자 자신의 제국을 번성 시키고 있다. 쑥부쟁이, 애기똥풀, 씀바귀, 질경이, 엉겅퀴…. 누가 지었는지 풀들의 생김새가 자기이름 그대로다. 그들은 각자 대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지구의 기운을 맘 것 뽑아 내어 땅 위로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풀 섶을 살피던 중 모양새가 노란색 나일론 줄 같은 제국의 방해꾼이 눈에 포착된다.
'새삼'이다.

이 녀석은 메꽃과의 한해살이풀로 땅에서 태어났지만 태어나자 마자 곧 뿌리를 끊어 내고 잎도 없이 다른 식물의 줄기를 감고 기생하며 살아간다. 이 녀석을 보니 칠갑산 언저리 고향마을에서 어머니와 콩밭 매던 시절이 생각난다. 콩밭 풀들은 누가 돌보지 않아도 왜 그렇게 빨리 자라는지 여름철 '콩밭 매는 아낙네'의 치맛자락은 얼룩얼룩 초록빛 풀물이 마를새 없다. 콩밭을 매다 보면 가끔 풀들 사이로 콩 줄기를 감고 버티는 노란색 '새삼'이 발견되곤 한다. 다른 잡풀들과 달리 '새삼'은 뜯어내도 잘 죽지 않는다. 끊어내도 그 줄기 자체가 다시 다른 식물을 감고 살아난다. 유일하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은 기생할 식물이 없는 도로에 말려 죽이는 수밖에 없다. 이 새삼이란 놈은 한마디로 근본 없이 남의 살을 뜯어먹고 살며 잘 죽지도 않는 얄미운 놈이다. 분명 대지에서 싹을 틔워 태어났지만 그 근본을 버리고 남의 살을 뜯어 먹기로 작정하고 뿌리를 스스로 없애버렸다. 줄기를 옮겨 다니며 남의 피를 빨아 제 몸 살을 찌우고 꽃을 피워 자손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씨앗들은 '토사자'라 부르며 약재로도 쓰인다 한다. 살아서는 남의 피나 빨아 먹고 사는 천덕꾸러기지만 약재로라도 쓰인다 하니 그나마 죽어서 남을 위해 한가지를 하는 셈이다.

 새삼2
 새삼2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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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삼스레 이 나라에 '새삼'스러운 사람들이 많음을 본다. 세월호 참사 후 드러난 우리사회의 민낯에는 남의 노력을 빼앗아 먹고 자기 배만 살찌우려는 수많은 새삼 같은 자들이 있었음을 보았다. 요즘 온 나라를 들끓게 하고 결국 자진사퇴로 물러난 총리후보라는 사람의 발언들은 참으로 가관이다. 그 동안 선열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온 이 나라 이 땅의 역사인데 뜬금없이 일제 식민지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말을 했다니 참으로 근본도 모르는 '새삼'스러운 말이다. 또 몇몇 장관후보자라는 사람들은 제자의 논문을 가로챘다는 의혹부터 논문표절의혹까지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제 노력 없이 남의 노력을 빨아 먹고 사는 '새삼'같은 인물이다. 참말로 '새삼'스럽다.

이제부터 '새삼스럽다'는 말이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 노력은 하지 않고 남의 노력 등쳐먹고 사는 근본 없는 사람들은 모두 '새삼스러운'자들이다. 요즘 SNS상에는 부쩍 친일파와 친일부역자들의 이야기가 많다. 나라가 어려울 때 제 몸하나 살리자고 이 땅 민중을 팔아 연명했던 '새삼'스런자들의 이야기다. 친일 당사자들은 이미 죽었겠지만 그들의 자손들은 아직도 새삼처럼 죽지 않고 사회 곳곳에 숨어 여전히 피를 빨아 연명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라도 친일청산의 문제를 바로 보아야 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다른 말이 아니다. 새삼 죽이듯 말라 죽을 때까지 친일 문제를 찾아 내어 청산해야 한다. 때만 되면 반복되는 일본의 역사왜곡의 근저에는 이 나라에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새삼'스런 친일 잔존 세력에 대해 믿는 구석이 있어서는 아닐까? 신록의 계절 풍요를 뽐내는 풀섶제국, 다른 풀을 칭칭 감은 제국의 방해꾼 '새삼'을 보며 지금 이 나라를 생각해보니 참으로 세상이 '새삼'스럽다.

새삼스럽다의 본뜻[국어사전]: 형용사
1.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느껴지는 감정이 갑자기 새로운 데가 있다.
2. 하지 않던 일을 이제 와서 하는 것이 보기에 두드러진 데가 있다.

아래> 새삼: 메꽃과의 한해살이풀, 크기 300~500cm
다른 식물의 영양을 빨아먹는 덩굴성 기생식물이다. 붉은빛을 띠는 줄기는 굵은 철사 같고, 물기가 많다. 줄기가 다른 식물에 달라붙어 영양분을 빨아들이기 시작하면 스스로 뿌리를 잘라낸다. 잎은 퇴화되어 비늘 모양으로 남아 있고, 열매는 '토사자'라 해서 약으로 쓴다.< 네이버 지식백과>


#새삼#새삼스런#친일청산#친일파#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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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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