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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의 능선 아래에 자리한 이백규 씨의 집과 농원. 집 마당과 밭에서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의 능선 아래에 자리한 이백규 씨의 집과 농원. 집 마당과 밭에서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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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잖아요, 어머니 품처럼. 경치 좋고 공기도 좋고요. 맑은 물도 사시사철 넘쳐나고. 생명의 산이에요. 지리산은…."

이백규(56·전남 구례군 마산면 광평리)씨가 탯자리를 떠나 낯설고 물 설은 지리산 자락에 둥지를 튼 이유다. 이씨는 4년 전 구례로 옮겨왔다.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는 내려와서 고민을 시작했다.

그는 구로공단에 다니던 시절, 전국의 산을 찾아 다녔다. 당시 산악회원과 함께 한 산행은 유일한 여가 생활이었다. 전국의 많은 산 가운데 지리산에 마음이 가장 끌렸다. 나이 50줄에 들어설 때쯤 지리산 자락에 눌러앉아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그때 굳혔다.

구로공단의 회사에서 나온 뒤 서울과 원주에서 식당과 카페를 운영하다가 남도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3개 도, 5개 군에 걸쳐있는 지리산에서도 구례를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덜 추운 데를 찾았어요. 상대적으로 따뜻한 곳을요. 산세가 거칠지 않으면서 교통도 편한 곳을 선택했고요. 땅값도 저렴한 곳을 찾았죠. 구례가 맞춤이더라고요."

이백규 씨의 나물밭. 하우스 안에 나물보다도 풀이 더 많이 올라와 있다.
 이백규 씨의 나물밭. 하우스 안에 나물보다도 풀이 더 많이 올라와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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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규 씨가 조성해 놓은 설봉농원의 감나무밭. 그 사이에 고구마가 심어져 있다.
 이백규 씨가 조성해 놓은 설봉농원의 감나무밭. 그 사이에 고구마가 심어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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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구례읍내에 있는 한 아파트에 봇짐을 풀었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한 직후인 2010년 4월이었다. 생활 터전을 차분히 찾아볼 생각으로 부인(김선례·50)과 함께 구례 일대를 샅샅이 훑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귀농·귀촌대학에도 들어갔다. 농사에 대비해 친환경농업대학에도 부지런히 나다녔다. 그러다가 만난 게 지금의 자리였다. 당초 생각보다 땅이 많이 넓었지만 괜찮았다.

구입한 땅에는 풀이 지천이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예초기를 빌려 풀을 벴다. 농기계도 빌려서 땅을 일궜다. 주변 사람들이 '농사지을 수 없는 땅'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온종일 햇볕이 고스란히 드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이백규 씨가 조성한 설봉농장의 사과밭. 그 앞으로 백합이 예쁘게 피어있다.
 이백규 씨가 조성한 설봉농장의 사과밭. 그 앞으로 백합이 예쁘게 피어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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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부부는 날이 새면 아파트에서 나가 땅을 골랐다.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쉬엄쉬엄 일을 했다. 땅이 만들어진 자리에다 배추 씨앗을 뿌렸다. 소꿉놀이 같은 농사의 시작이었다. 이듬해 가을엔 한쪽에 집도 지었다. 구례로 내려온 지 1년 반 만이었다.

지금은 7600㎡에 감, 매실 등 과수에서부터 감자, 고구마, 고추, 쌈채를 가꾸고 있다. 복합농인 셈이다. 부부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하기 위해서다. 한두 작물만 가꾸면 몸이 편할 수 있지만, 값이 폭락하면 일정한 수입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도 고려했다.

"그동안은 농장을 꾸미는 데 치중했어요. 이제부터 본격적인 농사라고 봐야죠. 근데 허리 휠 정도로 일할 생각은 없어요. 덜 먹고 덜 쓰고 살려고요. 사실 돈 쓸 일도 많지 않고요. 좋은 환경에서 스트레스 덜 받고 사는 걸로 족합니다. 여유도 만끽하고요. 느리게 사는 게 진짜 행복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죠."

이씨의 말에서 넉넉함과 여유가 묻어난다.

이백규 씨가 감나무의 열매를 솎아내고 있다. 이 씨는 쉬엄쉬엄 즐겁게 일한다고 했다.
 이백규 씨가 감나무의 열매를 솎아내고 있다. 이 씨는 쉬엄쉬엄 즐겁게 일한다고 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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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농장의 감자 수확. 이씨 부부는 며칠 전 감자를 캤다.
 설봉농장의 감자 수확. 이씨 부부는 며칠 전 감자를 캤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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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이후 몇 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풀과의 씨름이었다. 풀을 베고 나서 뒤돌아보면 또 자라고 있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고개만 들면 보이는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의 능선이 피로를 잊게 해주었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았어요. 일일이 풀을 뽑아가며 농사를 짓는데요. 이게 보람이죠. 거기서 얻은 농산물로 내가 먹을 식탁을 차리는 것도 뿌듯하고요. 지인들과 나눌 수 있는 것도 기쁨이고요."

이씨의 말이다.

이백규 씨가 농원에서 지리산 자락을 바라보고 있다. 일의 피로를 풀어주는 풍경이다.
 이백규 씨가 농원에서 지리산 자락을 바라보고 있다. 일의 피로를 풀어주는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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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런 일상을 사진과 함께 인터넷 카페(설봉의 지리산방)에 올리고 있다. 귀농을 전후해서 시작해 평균 이틀에 한 번 꼴로 써 왔다. 이 귀농일기는 카페 회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공감을 얻었다. 수확 때면 찾아와 일손을 거들어주는 회원까지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농산물 직거래가 이뤄졌다. 며칠 전 캔 감자 130상자도 이렇게 해서 다 팔았다. 소비자들도 품질에 만족했다. 수확하기 전부터 '언제쯤 보내줄 수 있냐'는 문의 댓글까지 달렸다. 이씨 부부도 흡족했다. 카페 회원들은 판로 걱정 없이 농사지을 수 있는 힘이었다.

이씨는 앞으로 농산물 가공에 팔을 걷을 생각이다. 대봉으로는 곶감을 만들고 매실로 효소도 담글 계획이다. 콩으로 메주를 빚고 갖가지 산나물로 장아찌도 담글 예정이다.

김선례 씨가 막간을 이용해 고추밭에서 이파리를 솎아내고 있다. 남편보다도 농촌생활에 더 적극적이다.
 김선례 씨가 막간을 이용해 고추밭에서 이파리를 솎아내고 있다. 남편보다도 농촌생활에 더 적극적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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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규 씨와 김선례 씨는 지리산국립공원 시민대학에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이는 지리산 자락에서 사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이백규 씨와 김선례 씨는 지리산국립공원 시민대학에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이는 지리산 자락에서 사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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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부부는 요즘 농사만 짓는 게 아니다.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개설한 국립공원시민대학에 다니고 있다. 자원활동가로 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리산으로 인해 받은 위안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서다.

구례군 귀농귀촌협의회 총무로도 활동하고 있다. 귀농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건강한 사람들이 많이 내려오면 좋겠어요. 시골생활이라고 해서 큰 부담 가질 필요는 없고요. 제가 해보니까 도시생활의 연장이더라고요. 도시에서 열심히 산 사람은 시골에 내려와서도 잘 살 수 있어요."

이씨의 경험칙이다.

예비 귀농인들에게 희망 메시지를 던진 그는 부인과 함께 용달차를 타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국립공원시민대학에 가야 한다면서. 이들이 탄 용달차가 구부러진 골목길을 익숙하게 빠져나간다.

지리산 자락에 새로 둥지를 마련한 이백규·김선례씨 부부. 지리산 기슭에서 농사 지으며 사는 걸 행복으로 여기고 있다.
 지리산 자락에 새로 둥지를 마련한 이백규·김선례씨 부부. 지리산 기슭에서 농사 지으며 사는 걸 행복으로 여기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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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백규, #김선례, #설봉농장, #귀농,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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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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