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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경마장 OUT' 용산 주민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일 오후 청와대 부근인 종로구 청운효자주민센터앞에서 '화상경마도박장 강제·기습·폭력 개장 시도 규탄 및 반대 주민 서명 청와대 전달 기자회견'이 열리는 가운데 '도박경마장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 '도박 경마장 OUT' 용산 주민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일 오후 청와대 부근인 종로구 청운효자주민센터앞에서 '화상경마도박장 강제·기습·폭력 개장 시도 규탄 및 반대 주민 서명 청와대 전달 기자회견'이 열리는 가운데 '도박경마장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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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산 지역 주민이다. 17일 퇴근길에 보니 집집이 우편함에 마사회에서 발행하는 신문이 '호외'라는 이름을 달고 꽂혀 있다.

낮에 인근 성심여중·고 학생들이 국회를 방문하여 용산 화상경마장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데 대한 발 빠른 대응인 듯하다. 더구나 국회 앞에서 "경마팬을 도박꾼으로 매도하지 말라"며 1인 시위까지 했다니, 가히 점입가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 주민으로서 이 사태에 분노한다. 경마는 도박이 아니라 스포츠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므로 축구를 즐기려면 축구장에 가고 야구를 즐기려면 야구장에 가듯이 경마를 즐기려면 경마장에 가는 게 맞다. 마사회가 경마팬의 사례로 내세우는 영국 여왕이 경마를 관람하는 곳도 실제 경마장이지 화상경마장이 아니다.

물론 직접 경기장에 갈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경기를 관람한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축구를 보거나 야구를 보면서 돈을 걸고 승률을 맞추지는 않는다. 지하 7층, 지상 18층 규모의 거대한 건물 실내에 빼곡히 앉아 돈을 걸고 TV로 경기를 보는 건 스포츠 애호가의 태도는 아니다.

화상경마장은 선수와 말의 뜨거운 호흡을 느끼며 고된 훈련의 결실을 응원하는 곳이 아니라 승률 높은 경주마에게 배팅하는 곳일 뿐이다. 법적으로도 카지노, 경륜, 복권 등과 함께 사행산업으로 분류되어 있다.

주거 밀집 지역에 들어서는 화상경마장

화상경마장을 스포츠라느니 건전한 레저라느니 하는 것은 '화상경마장'을 '경마'로 교묘하게 바꿔치기하여 그 본질을 가리고 여론을 호도하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 주민이 문제 삼는 것은 경마가 아니라 화상경마장이다. 우리는 도박장을 이웃하고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용산 화상경마장이 들어선 곳은 주거 밀집 지역이고, 인근에 가장 가까운 학교인 성심여중·고는 화상경마장으로부터 235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학교정화법에서 학교 환경 위생 정화 구역은 200m로 규정되어 있다. 마사회는 235m 떨어져 있으므로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200m란 규정의 본질은 '마을의 등불'인 학교와 '나라의 미래'인 학생들을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하자는 것이다. 마사회의 주장은 법의 취지를 곡해하고 있다.

더구나 마사회가 발행한 신문에는 성심여중·고에서 도보 이동 시 횡단보도를 2번 건너 화상경마장 건물에 도달하는 데 474m가 걸린다며 친절하게 최단거리 안내도까지 제시하고 있다. 마사회는 유해 환경으로부터 교육권을 수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를 도보 길 찾기 문제로 전락시켜 버렸다.

마사회의 주장대로라면 바로 옆집에 러브호텔이 들어섰다 한들 직선거리로 연결되지 않고 멀리 골목을 에돌아가야 한다면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 성심여중·고 바로 옆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창을 열면 정면으로 화상경마장 건물이 손에 잡힐 듯 보이고 그 앞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과 소음이 여과 없이 전달되어 온다. 이게 우리 아이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마사회는 화상경마장 앞길이 학생 통학로가 아니며 실질적인 통행량이 적다고 강변한다. 경마꾼들이 몰려나오는 시간은 학생들이 방과 후 수업이나 야간 자습 등을 하고 하교하는 시간인데, 화상경마장이 위치한 도로로는 2개 노선이, 그리고 그 아래쪽 원효로 길로는 5개 노선의 시내버스가 다닌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화상경마장 앞길보다는 원효로 길로 통학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데, 문제는 화상경마장에서 쏟아져 나온 '고객' 역시 주로 원효로 쪽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통학로 침해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더구나 통행량이 적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화상경마장은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전자상가로 둘러싸여 있고, 바로 옆에는 롯데시네마가 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용산역이 있으며, 용산역을 중심으로 백화점과 마트, 농협 매장 등 주민들의 문화 공간과 편의 시설이 밀집되어 있다. 또한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이것이야말로 마사회가 화상경마장을 이 지역으로 끌어들인 이유 아니던가.

마사회는 학생들이 수업하는 금요일은 영업을 쉬겠다며 오늘 하루 휴장했다. 지난주에 학교에서 방과후 활동을 마치고 귀가하던 학생들이 술에 취한 채 깨진 술병을 들고 활보하던 경마꾼과 마주쳐 기겁을 한 일로 인해 성심여중 교감선생님이 깊은 우려를 표명한 것을 의식한 조처로 보인다. 그러나 학교는 이제 곧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마사회가 금요일 휴장으로 인해 영업 손실을 입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주말 내내 아이들의 외출을 금해야 할지도

'학교 앞 도박장?' 엄마들이 뿔났다 용산 주민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일 오후 청와대 부근인 종로구 청운효자주민센터앞에서 '화상경마도박장 강제·기습·폭력 개장 시도 규탄 및 반대 주민 서명 청와대 전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학교 앞 도박장?' 엄마들이 뿔났다 용산 주민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일 오후 청와대 부근인 종로구 청운효자주민센터앞에서 '화상경마도박장 강제·기습·폭력 개장 시도 규탄 및 반대 주민 서명 청와대 전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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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학교에 방학이 어디 있는가. 방과 후 수업과 자율학습, 동아리 활동 등으로 학생들은 방학에도 학교에 나온다. 이것은 비단 금요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지역 주민들은 주말 내내 아이들의 외출을 금해야 할지 모른다. 아이들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주말 극장 나들이나 늦은 오후의 장보기 같은 일상적 활동이 원천적으로 위협당하게 되었고, 당연히 집값 하락과 같은 경제적 손실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도박장이 몰고 온 평지풍파는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하락시키고 교육권과 주거권을 결정적으로 훼손하고 있다.

마사회는 그동안 지역 주민을 상대로 화상경마장을 기정사실로 하며 밀어붙이는 '어쩔 테냐' 전략을 써왔다. 주민 동의도 거치지 않고 4년 동안 몰래 건물을 지어 용도 변경이란 꼼수를 통해 화상경마장 이전을 기정사실화하려 들었다.

이미 건물을 다 지었으니 어쩔 테냐는 것이다. 이어 지역 주민과 협상을 진행하던 중 약속을 어기고 기습 개장을 단행하였다. 이미 개장했는데 어쩔 테냐는 것이다. 이제는 시범 운영을 통해 문제없음을 입증하겠단다. 이것 역시 운영 정상화로 화상경마장을 안착시키고 나면 '이제 와서 어쩔 테냐'로 기정사실로 하려 들 것임은 그동안 경험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더구나 화상경마장으로 인한 지역의 슬럼화는 이미 다른 지역에서 충분히 확인되었다. 화상경마장이 들어선 지역 치고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와 길거리에 수북한 담배꽁초, 그리고 술 취한 도박꾼들의 모습에서 벗어난 지역은 없다. 마사회는 시범 운영을 이야기하기 전에 왜 다른 지역의 화상경마장에서는 모범적인 운영 사례를 만들어내지 못했는지부터 해명해야 한다. 

마사회는 이제 여론 공작에 주력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화상경마장 찬성 집회로 맞불을 놓고, 한편으로는 주민과의 상생을 도모한다며 일부 층을 주민 편의 시설로 개방하겠단다.

마사회가 자발적인 지역 주민이 아니라 외부에서 동원한 인력에 마사회 직원까지 사복을 입혀 찬성 집회라고 앉혀 놓고, 지루한 시간을 때울 길 없어 어린 학생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볼썽사나운 여흥을 펼치는 것은 지역 주민들을 우롱하고 모욕하는 처사이다.

버스를 대절하여 실어온 화상경마장 고객으로 지역 주민과의 충돌을 조장하며 주민들을 위협하는 것이나, 이들 화상경마장 출입자들이 당당하게 "도박할 권리" 운운하는 것은 공기업 마사회의 양식을 의심케 한다. 찬반 집회의 본질이 지역 주민과 마사회의 대립이라는 실상을 취재하지 않은 채 '지역 내 찬반양론 팽팽' 같은 거짓 기사를 써대는 언론 역시 다를 바 없다.

마사회 건물의 지역 개방은 더더욱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도박꾼이 친근한 이웃 아저씨로 인식되면 문화 교실을 이용하던 어린 학생들이 자라 자연스레 마권을 사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마사회 총매출의 2/3가 화상경마장에서 나온다. 공기업이 도박으로 돈을 벌어들이며 세금 내서 지역 경제에 도움 준다고 광고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어디 있는가. 한때는 화투판의 <타짜> 영화가 화제가 되더니 요새는 내기 바둑 영화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단다. 화투든 바둑이든 일단 도박이 되면 인간성의 바닥을 보여주게 된다. 다음에는 화상경마도 다뤄봄 직하지 않은가.


#화상경마장#용산화상경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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