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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렐월드 러브스토리> 겉표지
<패럴렐월드 러브스토리>겉표지 ⓒ 재인
살다보면 두려운 일들이 참 많다. 한 여름밤에 더울 때는 방에 있는 선풍기가 망가질까봐 두렵기도 하다.

선풍기가 망가지는 것은 사소한 일이다. 병원에서 진찰을 끝낸 의사가 무슨 말을 할지 두렵고, 외출한 가족이 밤 늦도록 연락 없이 귀가하지 않아도 두렵다.

이 '두려움'이란 감정은 일상적인 생각의 흐름을 도둑고양이처럼 망쳐버린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이런 것들보다 더 두려운 것은 바로 기억에 관한 것이다. 건망증처럼 가끔씩 깜박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에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기억을 통채로 잃어버린다고 상상해보자. 기억을 잃는 것은 과거를 잃는 것이고, 과거를 잃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

히가시노 게이고는 자신의 1995년 작품 <패럴렐월드 러브스토리>에서 바로 이 '기억'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다카시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종의 '버추얼 리얼리티'를 연구하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갑자기 자신의 기억에 혼란이 오고있다.

자신의 옆에는 함께 동거하고 있는 마유코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절친'이면서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도모히코의 연인이었다. 친구의 연인이 어떻게 자신의 동거녀가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술 더떠서 도모히코와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회사의 말에 의하면 도모히코는 미국 본사로 발령을 받아서 LA로 떠났다고 한다. 회사에서 거의 매일 같이 점심을 먹을 정도로 가깝게 지냈던 도모히코가 왜 자신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미국으로 떠났는지도 기억에 없다.

주인공이 알콜성 치매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 이런 증상은 단순히 치매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다카시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버추얼 리얼리티. 즉 가상현실을 다루는 것이다. 가상현실은 기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주인공도 가상현실을 연구하다가 스스로 가상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 것은 아닐까? 아니면 회사에서 다카시의 기억을 조작한 것은 아닐까?

작가가 보여주는 가상현실의 세계

1958년 생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종종 공학이나 과학과 관련된 전문적인 용어나 지식들이 나열된다. <패럴렐월드 러브스토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전문용어들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런 부분은 그냥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기억이다. 어떤 조직에서, 특정인의 특정한 기억을 잃게 만든다거나 또는 다르게 조작한다면 뭔가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다지 좋은 의도에 있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기억'에 관한 작품들은 많다. 영화 <메멘토>에서 주인공은 10분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기억상실증 환자다. 소설 <내가 잠들기 전에>의 주인공은 전날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지 못한다. 이 작품들에서 주인공은 모두 불의의 사고로 인한 충격으로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 경우다.

반면에 <패럴렐월드 러브스토리>에서는 그런 사고와는 관계없이 타인에 의해서 기억이 조작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왜 기억을 잃어버렸는지 알아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 보다도, 타인에 의해서 자신의 기억이 조작된다는 것이 더욱 끔찍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패럴렐월드 러브스토리>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김난주 옮김. 재인 펴냄.



패럴렐 월드 러브 스토리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재인(2014)


#패럴렐월드 러브스토리#히가시노 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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