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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디자인 상품 코너에는 프랑스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상품들 기획, 판매하고 있었다.
▲ 베아슈베 백화점 내의 디자인 상품들 백화점 디자인 상품 코너에는 프랑스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상품들 기획, 판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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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백화점조차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파리 곳곳에는 프랭탕 백화점(Magasins du Printemps)과 라파예트 백화점(Galeries Lafayette) 등 이미 프랑스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백화점들이 즐비하다.

그 중 파리 시청 옆에 위치한 베아슈베 백화점(Bazar de l'Hotel de Ville)은 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장소였다.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와 가까울 뿐만 아니라 일반 백화점과는 달리 인테리어 소품을 비롯한 생활용품을 중점적으로 파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관광객에게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닌 파리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 한적하게 물건을 구경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5층으로 이루어진 백화점은 1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층에서 생활용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서점에 가득 쌓인 책부터 프랑스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본 따 만든 디자인소품에 이르기까지 일반 기념품 가게보다 훨씬 다양하고 예쁜 아이템들이 많아 아이쇼핑을 하기에는 적격인 장소였다.

베아슈베 백화점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푸드 코트라고 할 수 있다. 일반 백화점과는 달리 이곳의 푸드 코트는 건물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덕분에 파리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푸드 코트의 메뉴들은 샐러드에서부터 각종 케이크, 빵, 스파게티, 피자 등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들이다. 덕분에 파리 시민들에게는 꽤나 인기가 있다. 음식의 가격은 일반 레스토랑의 절반 값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층 호텔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풍경 덕분에 백화점 푸드 코트임에도 최고급 호텔에 뒤지지 않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와인의 나라답게 파리의 백화점 푸드 코트에서는 와인도 음료수처럼 저렴한 가격으로 마실 수 있었다.
▲ 푸드 코트에서 파는 와인 와인의 나라답게 파리의 백화점 푸드 코트에서는 와인도 음료수처럼 저렴한 가격으로 마실 수 있었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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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꼭대기에 위치한 푸드 코트의 한쪽 창문 너머로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친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음식을 분위기 있는 장소에서 먹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 베아슈베 백화점 푸드 코트의 전경 백화점 꼭대기에 위치한 푸드 코트의 한쪽 창문 너머로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친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음식을 분위기 있는 장소에서 먹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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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가 '원조' 아이스크림 가게야?

백화점 푸드 코트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우리는 생루이 섬(Île Saint-Louis)으로 향했다. 시테 섬(Île de la Cité)의 동쪽에 인접해 있는 이곳은 17~18세기 파리의 예술가와 귀족들이 살았던 저택이 아직 남아있는 곳으로 지금도 연예인이나 파리의 거부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아기자기한 카페들과 레스토랑이 밀집되어 있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 중 하나는 베르티옹 아이스크림(Maison Berthillon)이다. 이곳은 1954년 창업주 베르티옹(Monsieur Berthillon)이 설립해서 현재 4대째 가업으로 계승되고 있는 정통 이탈리안 젤라또 가게다. 영국 왕실에 아이스크림을 납품할 정도로 그 맛을 인정 받았다. 웬만한 관광 안내 서적에는 다 언급되어 있고 한국 블로그에도 '생루이 섬 여행기'라고 조금만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처음에는 아이스크림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싶어서 사 먹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센 강을 지나 생루이 섬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너도 나도 아이스크림콘을 '쪽쪽' 빨면서 길거리를 횡보하고 있었다. 그 광경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생루이 섬으로 들어가면 곳곳에서 베르티옹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을 만날 수 있다. 원조 베르티옹 아이스크림 가게는 밝은 갈색 간판이니 헷갈리지 않도록 유념할 것.
▲ 베르티옹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 생루이 섬으로 들어가면 곳곳에서 베르티옹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을 만날 수 있다. 원조 베르티옹 아이스크림 가게는 밝은 갈색 간판이니 헷갈리지 않도록 유념할 것.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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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먹어 보자."

생루이 섬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긴 줄의 행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저 곳에서 아이스크림을 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베르티옹 아이스크림' 간판이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도 베르티옹, 저기에도 베르티옹이 있는 것이 아닌가! 건물 나란히 '베르티옹'이란 간판을 내걸고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어서 어디가 원조인지 알 수가 없었다.

줄의 길이도 비슷했고 메뉴도 비슷하고 심지어 가격도 같다. 잠깐 망설이다가 줄이 조금 더 긴 쪽을 선택했다. 줄이 더 긴 곳의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이었다.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것이 없다'는 표현이 적절할는지 모르겠다. 한껏 기대를 하고 먹어서 그랬을까? 관광책자에 빠지지 않고 맛집으로 등장하는 곳 치고는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또 먹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시원하지만 비싼 아이스크림이란 꼬리표만 머리에 남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2% 부족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여행자다운 포스를 풍기며 생루이 섬을 유유히 걷고 있었다. 100미터 정도 걸었을까? 왼쪽으로 나와 있는 골목 한 켠에 긴 줄의 행렬이 보인다. 줄의 길이로 봐서는 저 곳도 맛집의 한 곳이겠거니 하고 지나치려는 순간 간판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 때 깨달았다. 이럴수가! 저곳이 원조 베르티옹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관광책에서 봤던 베르티옹 간판은 밝은 갈색이었는데 우리는 엄한 곳에서 원조 베르티옹이 맞는지 아닌지를 논하고 있었다. 마치 신당동 떡볶이 골목에 처음 들어왔다가 어디가 어디인지 몰라서 그냥 사람들이 많이 몰린 곳으로 가버린 격이었다. 누구에게 속은 것도 아니었는데 괜히 억울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자신을 탓할 수밖에...

영화 <매트릭스>를 보는 듯한 화장실 풍경

아이스크림도 먹었겠다, 생루이 섬도 산책했겠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아랍 문화원(Arab World Institute)으로 향했다. 아랍 문화원은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인 장 누벨의 작품이다. 그는 서울 리움 미술관의 뮤지엄(MUSIEM) 2를 설계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966년 국립예술원 입학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한 후 1972년 졸업도 하기 전에 건축 사무소를 설립했다. 1976년 프랑스의 건축운동 '마르스(Mars) 1976'을 주도하고, 1980년에는 파리의 건축 비엔날레 예술 부분의 기획을 맡는 등 1980년대에 이미 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불렸던 사람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의 작품. 아랍과 유럽 문화의 관계,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표현해 극찬을 받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 파리 아랍 문화원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의 작품. 아랍과 유럽 문화의 관계,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표현해 극찬을 받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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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누벨은 건축을 "공간을 구성하는 기술일 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생산하는 작업"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작품은 빛을 투과 시키는 현대적인 재료를 이용해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아랍 문화원은 아랍과 유럽 문화의 관계,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표현해 극찬을 받은 그의 대표작이다.

건물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가장 뚜렷한 특징은 건물의 천장고가 아주 낮다는 것이었다. 공공건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어쩌면 일반 주택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울 정도로 천장의 높이가 낮았다. 어림짐작으로 2m 10cm 정도 될까 말까 한 높이였다. 남편이 조금만 점프를 해도 머리가 닿을 만큼 낮아서 로비가 다소 답답해 보였다. 그렇게 낮은 천장고 옆에 있는 투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으로 올라가면 무료 전망대 및 건물의 내부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이 건물이 유명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벽면의 디자인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소재로 사용한 벽면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구멍 하나하나가 조리개로 되어 있다. 이 조리개는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양을 조절한다. 건물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채광과 온도 조절을 한다. 9층 전망대는 노트르 담 성당(Notre Dame de Paris)을 비롯해 생루이 섬 근처의 풍경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나는 전망대보다도 특별히 9층의 화장실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화장실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소재를 사용한 화장실 벽면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 속의 세계가 연상된다. 똑같은 규격의 조리개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과 스테인리스로 이루어진 바닥·벽·천장으로 인해 내가 마치 가상현실 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벽면의 조리개는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양을 조절해 준다고 한다.
▲ 아랍 문화원 내부 벽면의 조리개는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양을 조절해 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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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의 벽면 역시 수많은 조리개로 이루어져 있다. 똑같은 규격의 조리개 사이로 햇살이 들어온다.
▲ 아랍 문화원 화장실 화장실의 벽면 역시 수많은 조리개로 이루어져 있다. 똑같은 규격의 조리개 사이로 햇살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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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루이 섬 근처에서 보냈던 파리의 시간. 비록 원조 '베르티옹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베아슈베 백화점 푸드코너의 음식은 파리 풍경의 맛이 더해져 어떤 레스토랑의 음식보다 맛있었다. '돈 값'을 제대로 했던 곳이다.

아랍문화원의 전망대는 파리의 역사적인 건축물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가치를 지닌 곳이었다. 파리의 특별한 곳을 방문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베아슈베 백화점과 아랍 문화원을 추천한다. 일반 관광지와는 다른 파리만의 특별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베아슈베 백화점, 베르티옹 아이스크림, 아랍 문화원에 관한 자세한 정보

* 베아슈베 백화점(BHV)
찾아가는 법 메트로 1호선 Hotel de Ville역에서 걸어서 2분. 파리 시청 옆에 위치
주소: 52-64 Rue de Rivoli, 75004 Paris
전화 09-77-40-14-00
운영시간 월,화,목, 금요일 9:20~19:30, 수요일 9:30~21:00, 토요일 9:30~20:00, 일요일 휴무
홈페이지: www.bhv.fr

* 베르티옹 아이스크림 (Maison Berthillon)
찻아가는 법 메트로 4호선 Cite역, 7호선 Pont Marie역 하차
주소: 31 Rue Saint-Louis en Iile, 75004 Paris
전화: 33-1-43-54-31-61
운영시간: 수~일요일: 10:00~20:00, 월요일, 화요일은 휴무
홈페이지: www.berthillon.fr

* 아랍 문화원(Arab World Institute)
찻아가는 법: 메트로 Jussieu, Cardinal-Lemoine, Sully-Morland 에서 하차
주소: 1, rue des Fosses-Saint-Bernard(시테 섬, 생루이 섬 근처) Place Mohammed V
운영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18:00, 월요일은 휴무
홈페이지: www.imarabe.org



태그:#파리, #베아슈베 백화점, #베르티옹 아이스크림, #아랍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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